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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2018 / Sanghwan A. Lee

요한복음 1.3 설교

모빌침례교회.jpg

“πάντα διʼ αὐτοῦ ἐγένετο, καὶ χωρὶς αὐτοῦ ἐγένετο οὐδὲ ἕν. ὃ γέγονεν, 모든 것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존재하게 되었고,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 중, 단 하나도 예수님 없이 존재하게 된 것은 없습니다.” ~개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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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2018 / Sanghwan A. Lee

1분 신학: “말씀하시는 성령님”

말씀하시는 성령님.jpg

Written by Sanghwan Lee

09/18/2018 / Sanghwan A. Lee

요한복음 Prologue 분석 (1, 2, 3, 4)

1. 분석 (1)

2. 분석 (2)

3. 분석 (3)

4. 분석 (4)

08/22/2018 / Sanghwan A. Lee

극적 아이러니(Dramatic Irony)

Christos Karakolis는 “The Logos-Concept and Dramatic Irony in the Johannine Prologue and Narrative”에서 요한복음의 Prologue가 독자들에게 끼치는 문학적 영향력에 대해서 논한다. 그의 논지를 간략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Prologue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독자들에게 명확히 설명해 줌으로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사건들—특히 예수님의 정체성을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들—을 공관복음을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해석하도록 유도한다.’ 예컨대 예수님의 정체성을 모르는 관계로 그 분을 오해하는 유대적 종교지도자들을 요한복음에서 만날 때, 독자들은 그들에게 분개하거나 적개심을 갖기 보다는 오히려 불쌍하고 측은하게 여기게 된다. 독자들은 Prologue를 통해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Karakolis는 이런 효과를 “극적 아이러니(Dramatic Irony)”로 표현한다.

Karakolis의 주장은 복음을 이미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행동강령까지 터치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정죄하기전에 먼저 불쌍하고 측은하게 여겨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참 좋은 예수님을 함께 알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이미 알고 있는 성도들이 취해야 할 바른 자세라고 생각된다.

08/20/2018 / Sanghwan A. Lee

가장 귀한 계보

“사도들이 우리를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복음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Οἱ ἀπόστολοι ἡμῖν εὐηγγελίσθησαν ἀπὸ τοῦ κυρ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Ἰησοῦς ὁ Χριστὸς ἀπὸ τοῦ θεοῦ ἐξεπέμφθη·” ~1 클레멘트 42.1
 
이 짧은 구절에는 (1) [예수님의] 사도들(Οἱ ἀπόστολοι), (2) 우리(ἡμῖν), (3) 예수님(Ἰησοῦς), (4) 하나님(θεοῦ)이 등장한다. 클레멘트가 넷을 등장시킨 이유는 그가 받은 복음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함이다. 그의 논증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클레멘트가 받은 복음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복음이 아니다.
둘째, 그 복음에는 확실한 기원이 있다.
셋째, 그 기원을 추적하면 다음과 같다:
i. 그 복음은 사도들이 클레멘트를 위해(이익의 여격)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ii.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
iii.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건네준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한 것이다.
iv. 그러므로 클레멘트가 받은 복음의 기원은 하나님이다. (참고로 본문에 등장하는 두 개의 동사가 모두 수동태[εὐηγγελίσθησαν, ἐξεπέμφθη]로 쓰였다. 복음의 신적 기원을 강조하는 장치로 보인다.)
 
결국 클레멘트의 논증에 따르면 그가 받은 복음은 ‘(1) 하나님→ (2) 예수님 → (3) 사도들 → (4) 속사도들’이라는 계보를 따르는 셈이다. 그렇다면 21세기의 우리가 따르는 “복음”의 기원은 어디인가? 1세의 역사 속에 등장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의 하나님까지 소급되는가? 아니면 최근에 하늘에서 뚝딱 떨어진 듣보잡 족발, 아니 족보를 따르고 있는가?
 
시시콜콜한 것들에 관해서는 족보, 족보, 족보를 따지면서 가장 중요한 신앙의 근간에 대한 계보를 무시한다면… 몹시 곤란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