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s
Skip to content
10/03/2017 / Sanghwan A. Lee

The Granville Sharp Rule & Korean Bibles

디도서 2:13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계시가 문법적으로 가장 확실히 나타나는 구절이다 (Wallace, Mounce). 소위 “그랜빌 샤프의 문법 규칙”에 따라 “관사+(단수, 일반, 인격) 명사+καὶ+(단수, 일반, 인격) 명사”의 구조, 곧 “관사+하나님+καὶ+구원자” 구조가 “예수 그리스도”와 동격 구조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Titus 2.13.jpg

그러므로 “…τοῦ μεγάλου θεοῦ καὶ σωτῆρος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딛 2:13)”는 “우리의 위대하신 하나님이시요 구원자, 곧 예수 그리스도” 혹은 “우리의 위대하신 하나님이시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번역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글 성경들은 본구절을 어떻게 번역했을까? 크게 세개의 번역 Group으로 나눠짐을 알 수 있다. 첫째, ‘예수님의 하나님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자 되심’을 동격 구조로 이해하고 번역한 성경 (개역개정, 바른성경, 한글개역, 한글 흠정역). 둘째, 하나님을 예수님으로 이해하지 않고 성부로 이해하여 (혹은 그렇게 이해되도록) 번역한 성경 (새번역, 표준새번역, 우리말성경, 쉬운성경, 현대어성경, 공동번역, 공동번역개정판). 셋째, 그랜빌 샤프의 문법 규칙에 따라 번역한 성경 (현대인 성경, 카톨릭 성경, 한글 KJV).

Group 1: 하나님 (θεοῦ) = 구주 예수 그리스도 (σωτῆρο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 (개역개정)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 (바른성경)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 (한글개역)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한글 흠정역)

Group 2: 하나님 (θεοῦ) = 성부 하나님, 구원자 (σωτῆρος) = 예수 그리스도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위대하신 하나님과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표준새번역)
위대하신 하나님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새번역)
위대하신 하나님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말성경)
우리의 크신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 (쉬운성경)
우리의 위대한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현대어성경)
위대하신 하느님과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공동번역)

위대하신 하느님과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공동번역개정판)

Group 3: 하나님 (θεοῦ), 구원자 (σωτῆρος) = 예수 그리스도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글 KJV)
위대하신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현대인의 성경)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카톨릭 성경)

보다시피 현대인 성경, 카톨릭 성경, 한글 KJV은 “그랜빌 샤프의 문법 규칙”에 따라 딛 2:13을 바르게 번역했다. 물론 이러한 관찰은 위에 언급한 세개의 번역이 총제적으로 가장 정확한 번역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번역된 성경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사본들의 배경은 물론 다른 구절들의 번역 상태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대인 성경, 카톨릭 성경, 한글 KJV의 우수성을 주장하기 위해 본글을 사용할 수 없다. 다만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계시가 문법적으로 가장 확실히 기록된 딛 2:13의 번역 만큼은 현대인 성경, 카톨릭 성경, 한글 KJV이 우수하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성도들이 원서를 여러 번역서들과 비교하며 함께 살펴볼 때, 가장 좋은 번역을 구절 by 구절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Advertisements
09/30/2017 / Sanghwan A. Lee

אֶהְיֶה אֲשֶׁר אֶהְיֶה

그레코-로만 시대에는 많은 신들이 있었다. 재미있는 부분은 단지 신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Give-and-Take의 시스템에 의해 구동되던 그레코-로만 사회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콩고물을 받을 수 있다고 믿던 신에게만 예배를 드렸다. “내가 당신에게 예배를 드릴테니 나에게 이러이러한 유익(e.g., 건강, 명예, 자녀)을 좀 주십시오”인 셈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기독교는 독특했다. 기독교가 제시하는 예배란 Give-and-Take의 시스템에 의해 구동되는 “협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단지 하나님이시라는 이유만으로 마땅히 드려져야만하는 “의무”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적인 유익을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분께서 하나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예배를 받으기에 합당하다는 것. 이것이 그레코-로만 시대에 만연했던 신관을 가르고 우리에게 주어진 독특한 기독교이다. “אֶהְיֶה אֲשֶׁר אֶהְיֶה”!

09/11/2017 / Sanghwan A. Lee

It is official now! I am a graduate of Dallas Theological Seminary! Yay!

 

졸업한지 이주 정도가 지났지만 반드시 인사를 드려야할 분들께 인사를 미루고 있었습니다. 졸업장을 아직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오늘 졸업장을 받았기 때문에 이자리를 빌어 공식적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Diploma.png

존경하는 이인기 장로님, 정말 감사합니다. 달라스 신학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졸업하는 마지막 날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장로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결코 오늘은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장로님께서 전해주신 큰 은혜로 말미암아 예전부터 오고싶어했던 학교에 와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마음껏요! 장로님과 장로님을 통해 저를 위로해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주어진 모든 과제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Highest Honors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장로님, 정말 감사합니다!

보고싶은 박재현 형님, 정말 감사합니다. 늘 앞에서 저를 끌어주시고, 뒤에서 밀어주시며, 옆에서 그늘이 되어주신 형님이 안계셨더라면 오늘은 결코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형님께서 저를 대신하여 감내하신 희생, 그리고 늘 보태주셨던 격려와 위로 덕분에 쉽지 않은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제 친구이자, 선배이자, 인생의 동역자이신 형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정유경 마눌님, 고마워요! 내가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줬던 당신의 희생이 없었다면 결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꺼에요. 앞으로 몇년 더 남은 공부, 끝까지 잘 도와주세요~ ㅋㅋ 열심히 공부해서 언이와 슬이에게 자랑스런 아빠가 될 수 있도록 할께요~

끝으로 아빠, 엄마, 주환아! “너같은 돌머리가 관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고 염려하셨지요? 저 잘~ 살아남았습니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조금 더 남았지만 지금처럼 기도해주시는 가족이 있다면 잘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사랑합니다, 우리 가족들!

09/02/2017 / Sanghwan A. Lee

기도부탁

며칠동안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잤습니다. 오늘 저녁에 있었던 왈라스 교수님과의 면담 때문이었습니다. 무척 존경하고 좋아하는 교수님을 그분의 댁에서 1:1 만나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서 논한다는 사실이 무척 버겁게 다가왔던가 봅니다. 여하튼 두시간 삼십분 간의 만남을 끝내고 집에 와서 무척 홀가분한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거운 기분으로 본글을 씁니다.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왈라스 교수님의 추천으로 이번에 논문—A Defense of the Petrine Authorship of 1 Peter from Linguistic Evidence—이 (1)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2) Novum Testamentum, (3)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저널 형식으로 보내지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  동안의 준비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합니다. 그동안 해야 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논문에서 풍기는 이반젤리컬한 관점을 지워야 합니다. 오직 프라이머리 소스(i.e., 문법, 그레코로만 시대의 링귀스틱 자료, 유니버설한 언어학 이론)로만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25,500 단어로 구성된 논문을 7,500 단어로 압축해야 합니다. 사실 25,500 단어도 압축하고 압축하여 나온 개수인데 어디를 압축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셋째, 독일어와 프랑스어 소스를 첨가해야 합니다. 부분은 논문에 첨가했다가 뺐던 소스를 다시 넣으면 되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는 않을 합니다.

넷째, 캐런 좁스, 스탠리 포터, 마크 챈시, 그레그 포베스, 토마스 슈라이너, 마크 듀비스, 램지 마이클스 등에게 논문이 보내지게 됩니다. 전문가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아 논문에 사용한 논증에 헛점이 없는지 재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과정이 두렵게 느껴지지만 왈라스 교수님께서 처음부터 다시 슈퍼바이즈 해주신다고 하니 한시름 놓입니다. 그러나 겨우 한시름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블로그 형제, 자매 여러분, 모든 과정이 진행될 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이반젤리컬 관점이 아닌 프라이머리 소스를 통해서도 베드로의 베드로서신 저자설을 변증할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이제 한동안 글도 블로그에 올릴 수 없을 합니다. 조만간 다시 뵙기를 소망하며 재차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샬롬!

08/29/2017 / Sanghwan A. Lee

폴리캅의 고백

서론: Τί γὰρ κακόν ἐστιν εἰπεῖν, Κύριος Καῖσαρ, καὶ ἐπιθῦσαι, καὶ τὰ τούτοις ἀκόλουθα, καὶ διασώζεσθαι; “시저가 ()시라 말한 그분께 향을 올려 드리고 당신의 생명을 보존한다고 해서 손해볼 것은 없지 않습니까?” 오직 예수님만이 ()시라 고백하는 폴리캅에게 던져진 질문이었다. 이방원의 하여가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있겠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년까지 누리리라.”

문제제기: 질문을 받은 폴리캅.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부분이 한군데 있다. 질문자가 사용한 διασώζεσθαι 태(態)이다. διασώζεσθαι διασῴζω(‘구원하다’) 현재부정사로 중간태 혹은 수동태일 있다. 문맥속에서 부정사의 태를 식별해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두개의 태가 자연스럽게 들어맞는다. 중간태로 취해도 해석이 가능하고, 수동태로 취해도 해석이 가능하다는 의미다—중간태로 취할 경우 자신을 구원하라 되고 수동태로 취할 경우구원을 받으라 된다. 사실 질문자가 어떤 의미로 διασώζεσθαι 사용했는지, 게다가 폴리캅은 어떤 의미로 διασώζεσθαι 받아 들였는지 우리는 없다. 질문자가 수동태로 사용했어도 폴리캅은 중간태로 이해했을 있고, 질문자가 중간태로 사용했어도 폴리캅은 수동태로 이해했을 있다. 그러나 관심은 질문자의 의도가 아니라 폴리캅이 어떤 의미로 διασώζεσθαι 이해했는지에 있다.

중간태: 만약 중간태로 이해했을 경우시저에게 예배를 드림으로 스스로 목숨을 구원하라 의미로 해석이 된다. 폴리캅의 목숨은 폴리캅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의미가 된다. 배교 행위가 자신의 생명을 조금 연장시킬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순간 폴리캅은 베드로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예수님을 번이나 부인함으로 자신의 생명을 조금 연장시켰던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말이다. 비록 배교로 얻은 연장된 삶을 사는 동안 놀라운 사역을 이루어 냈지만, 베드로는 십자가에 달리는 그 순간까지 배교로 인해 찾아온 아픔을 지우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비록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를 고치시고 싸매셨지만 그분을 번이나 부인했다는 사실은 베드로의 마음에서 순간도 떠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베드로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폴리캅. 그의 삶을 근거로 추정하건데 그가 διασώζεσθαι 중간태로 이해했다손 치더라고 라고 답했을 가능성은 무척 적게 느껴진다.

수동태: διασώζεσθαι 수동태로 이해했을 경우시저에게 예배를 드림으로 시저에 의해 목숨을 건짐받으라 의미로 해석이 된다. 이럴경우 폴리캅의 목숨은 시저에게 달려있게 된다. 배교 행위가 시저로 하여금 폴리캅의 생명을 연장시킬 있는 수단이 된다는 의미다. 그순간 폴리캅은 마태복음 10:28 떠올렸을 것이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시저는 폴리캅의 목숨을 능히 멸할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영혼까지 멸할 수는 없었다. 그의 몸과 영혼을 능히 멸하실 있는 분은 오직 , 천지의 대주재이신 하나님 뿐임을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역시 그의 삶을 근거로 추정하건데 그가 διασώζεσθαι 수동태로 이해했을 경우에도라고 답했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폴리캅의 선택: 폴리캅이 διασώζεσθαι 중간태로 이해했는지 수동태로 이해했는지 우리는 없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어떤 경우에서도아니요 것임을 짐작 있다. 우리의 예측대로 그는 최후의 순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86년간 예수님 섬겨왔습니다. 그동안 그분께서는  번도 내게 해를 끼치신 일이 없었지요. 헌데 내가 어찌 나의 왕이시요 나의 구세주이신 분을 어찌 부인할 있겠습니까?” 폴리캅의 표현을 한국적으로 나타낸다면 다음과 겠다: “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처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 예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그는 그 고백을 끝으로 예수님의 품에 안기게 된다.

Polycarp.jpg

우리의 자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폴리캅과 같은 믿음이 있나요? 예수님을 너무 사랑하기에 생명까지 던질 수 있는 믿음이 있나요? 본글의 결론은 여러분께서 오늘의 삶을 통해 직접 써보세요.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