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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2019 / Sanghwan A. Lee

아사셀에게 보내진 염소와 예수님

레위기 16장에 보대속죄일에 사용되는 “아사셀에게 보내지는 염소”가 등장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사셀 염소에게 자신의 죄를 전가하는 예식을 치른 후 염소를 진영 밖으로 추방했다. Mishnah Yoma 6.4에는 추방당하는 염소의 털을 뽑으며 다음과 같은 저주를 퍼붓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고 꺼져라! [우리의 죄를] 담당하고 사라져라!” 본기록에 따르면 아사셀에게 보내지는 염소는 학대와 저주 속에서 진영 밖으로 추방된다. 그리고 결국 광야에서 죽는다. 이러한 의식은 대속죄일의 속죄 예식에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순서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염소 의식을 통해 대속죄가 일어났다는 부분에는 구약의 학자들이 의견일치를 보이지만, 정확히 언제 대속죄가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1) 염소가 저주를 받을 때 이스라엘의 죄가 사해졌나? (2) 염소가 진영에서 추방을 당할 때 사해졌나? 아니면 (3) 염소가 광야에서 죽을 때 사해졌나? 이 부분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위의 과정 중 하나를 통해 대속죄가 일어났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즉, (1) 저주, (2) 추방, (3) 죽임 중 하나를 통해 대속죄가 일어났다는 의미다.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우리를 죄에서 구해주신 예수님께서는 위의 세 가지 과정을 모두 겪으셨다는 것이다. (1)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수염을 뽑히고 저주를 받았다. (2) 진영에서 추방당해 골고다로 보내지셨다. 그리고 (3)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아사셀의 염소가 당하는 (1) 저주, (2) 추방, (3) 죽임을 모두 겪으셨다는 말이다. 그 이유가 뭘까? 우리의 죄가 사하여 졌다는 사실을 완전히, 온전히, 반박의 여지가 없이 보여주기 위함은 아닐까? 성경은 예수님께서 저주를 받으시는 모습, 추방을 당하시는 모습, 그리고 돌아가시는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담고 있다. 너무 자세하고 정확하게 담고 있다. 왜? 우리에게 “너희의 모든 죄는 확실히 사해졌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 우리의 죄가 사하여 졌다는 사실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까? 더이상 죄와 사망과 마귀의 종이 아니라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예수님의 종이라는 사실만큼 심장이 떨리는 기쁨이 있을까? “예수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찬양합니다. 예배합니다.” 라고 고백하지 아니할 수 없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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