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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0/2018 / Sanghwan A. Lee

가장 귀한 계보

“사도들이 우리를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복음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Οἱ ἀπόστολοι ἡμῖν εὐηγγελίσθησαν ἀπὸ τοῦ κυρ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Ἰησοῦς ὁ Χριστὸς ἀπὸ τοῦ θεοῦ ἐξεπέμφθη·” ~1 클레멘트 42.1
 
이 짧은 구절에는 (1) [예수님의] 사도들(Οἱ ἀπόστολοι), (2) 우리(ἡμῖν), (3) 예수님(Ἰησοῦς), (4) 하나님(θεοῦ)이 등장한다. 클레멘트가 넷을 등장시킨 이유는 그가 받은 복음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함이다. 그의 논증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클레멘트가 받은 복음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복음이 아니다.
둘째, 그 복음에는 확실한 기원이 있다.
셋째, 그 기원을 추적하면 다음과 같다:
i. 그 복음은 사도들이 클레멘트를 위해(이익의 여격)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ii.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
iii.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건네준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한 것이다.
iv. 그러므로 클레멘트가 받은 복음의 기원은 하나님이다. (참고로 본문에 등장하는 두 개의 동사가 모두 수동태[εὐηγγελίσθησαν, ἐξεπέμφθη]로 쓰였다. 복음의 신적 기원을 강조하는 장치로 보인다.)
 
결국 클레멘트의 논증에 따르면 그가 받은 복음은 ‘(1) 하나님→ (2) 예수님 → (3) 사도들 → (4) 속사도들’이라는 계보를 따르는 셈이다. 그렇다면 21세기의 우리가 따르는 “복음”의 기원은 어디인가? 1세의 역사 속에 등장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의 하나님까지 소급되는가? 아니면 최근에 하늘에서 뚝딱 떨어진 듣보잡 족발, 아니 족보를 따르고 있는가?
 
시시콜콜한 것들에 관해서는 족보, 족보, 족보를 따지면서 가장 중요한 신앙의 근간에 대한 계보를 무시한다면… 몹시 곤란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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