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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2018 / Sanghwan A. Lee

하나님의 자기 계시

신약 성경에 6 사용된 ἐξηγέομαι 문맥에 따라 ‘~ 관하여 말하다,’ ‘설명하다,’ ‘묘사하다정도로 이해된다. 1.18d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ἐξηγήσατο하셨다고 증거한다. 표현은 문맥 속에서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예수님께서 (1) 하나님에관하여 말씀하셨다’? (2) 하나님을설명하셨다’? 혹은 (3) 하나님을묘사하셨다’? 안타깝게도 (1)~(3) 해석은 문맥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번역이라고 판단된다.

우선 18a 보자. 18a 지금까지 하나님을(ἑώρακεν)”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증거한다. 그러나 18d 하나님을 ἐξηγήσατο하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증거한다. 18a 18d 비교하면 ἑώρακεν ἐξηγήσατο 연결되고 있음을 있다. 이럴경우 18d 예수님께서 하나님을보여주셨다 의미로 이해될 있다. , ἐξηγήσατο 단지 ‘~ 관하여 말하다,’ ‘설명하다,’ ‘묘사하다정도의 의미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ἑώρακεν 의해 의미가 확장되어 적게는눈에 보일 정도로 설명해 주시다,’ 많게는생생하고 확실하게 보여주시다정도로 이해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는 후자를 취한다. 18b c 예수님을 “μονογενὴς θεὸς ὁ ὢν εἰς τὸν κόλπον τοῦ πατρὸς” 설명하고, 또한 근접 문맥도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을 이야기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격 문맥까지 고려하면 더 큰 설득력을 얻을 수 있겠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만난다. 문맥 속에서 ἐξηγήσατο가 ‘보여주다’로 이해될 수 있다면 ‘보여주다’는 동사를 사용하지 않고 굳이 ἐξηγήσατο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에, 즉 신적 계시 사역까지 포함할 수 있는 단어가 ἐξηγήσατο였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요한은 ἐξηγήσατο를 통해 ‘공생애 기간동안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보여주는 계시의 작업’을 하실 예수님을 프롤로그에 담아내려 했다는 의미다. 공관복음과 비교해 볼 때 요한복음에 예수님의 표적과 담화가 큰 비중으로 나타난다는 분석은 이런 해석에 힘을 싣는다. (결국 요한의 의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한 도마의 고백에서 화룡점정을 찍는다 [요 20.28]). 그러므로 ἑώρακεν과 ἐξηγήσατο는 찰떡궁합이 되는 셈이다. 18절 처럼 말이다! 🙂

그렇다. 예수님은 단지 하나님에 관해 말씀만 하셨던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에 대해 설명만 하시거나 묘사만 하셨던 분도 아니시다. 이러한 사역은 구약의 선지자들도 감당했었다. 예수님은 달랐다. 그분은 하나님의 현현이셨다. 하나님의 자기계시셨다. 아담과 함께 에덴의 동산을 거니시던 쉐키나의 영광께서 인간의 옷을 입고 우리와 함께 땅을 걸어주시며 하나님을 설명하시고 보여주신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영광은 아버지로부터 오신 유일무이하신 ,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의 영광이라!”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듣는다. 하나님을 본다. 하나님을 만난다. 그분은 하나님의 현현이자 하나님의 자기계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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