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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2017 / Sanghwan A. Lee

나는 네가 핍박하고 있는 예수라.” 바울에게 들렸던 예수님의 음성이었다. 핍박을 당하고 있는 하나님으로 당신을 소개하신 예수님. 그것이 다메섹으로 올라가는 바울에게 필요했던 계시였기 때문이다. 상상할 수도 없는 충격을 받은 바울.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기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는 시간이었으리라.

성경에는 바울이 자신의 과거를 언급하는 부분이 4 등장한다.

내가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 22:4)”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많은 성도들을 옥에 가두며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모든 회당에서 여러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26:9-11)”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이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 1: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딤전 1:13)”

특이한 점은 딤전 1:13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사용된 동사의 애스팩트가 거의 임퍼펙티브라는 것이다. 예컨데 22:4 경우 일반과거형 동사를 현재형 분사로 수식하는 구조를 선택했다. 26:11 경우 개의 현재분사와 개의 미완료 동사가 사용됐다. 1:13 경우 역시 개의 미완료 동사가 나타난다. (물론 미완료 동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따라 뉘앙스는 달라질 있다 [e.g., ἐδίωκον, ἐπόρθουν]). 하지만 바울이 자신의 과거를 언급할 임퍼펙티브 애스팩트 동사를 주로 사용했다는 부분을 놓치면 안된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바울이 회심 전에 저질렀던 죄는 비록 오래 전의 사건이지만 바울은 그것들을 생생히 기억하며 기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던 예수님, 즉 그의 삶을 찢고 당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은 핍박받고 계셨던 하나님이셨기 때문인 듯하다.

물론 바울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다고 없다. 그는 은혜의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알았던 사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만행을 아무렇지도 않은듯 지우지 않았다. 잊으려고 애써 노력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과감히 밝히며 그러했던 자신을 완전히 변화시킨 복음의 능력을 자랑했다. 그에게 과거의 만행이 임퍼펙티브 애스팩트로 기억되고 있듯이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도 임퍼펙티브 애스팩트로 역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상상할 없는 죄인이었다. 바울처럼 과거의 만행들이 임퍼펙티브 애스팩트로 기억되어 진다. 그러나 바울처럼 담대하지는 않기 때문에 과거를 당당히 밝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은 바울이 만났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 이로인해 임퍼펙티브 애스팩트의 힘으로 수나미처럼 밀려오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나는 날마다 구원받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끊이지 않고 마르지 않는 은혜는 영원 속에서 터져나와 영원 속으로 회귀해 들어가는 임퍼펙티브 애스팩트이기 때문이다.

며칠간 본문을 묵상하며 떠오른 질문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과거 무엇일까? 은혜라는 지우개로 단번에 지워버릴 있는연필로 낙서정도 일까? 혹은 평생을 따라다니며 죄책감을 불어일으키는주홍글씨일까?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과거는 단지 뿐이다. 달고 다니면 악취를 풍기지만 거름으로 사용하면 귀한 열매를 맺게하는.”

바울에게도 똥이 있었다. 똥은 거름이 되어 죄인 중에 괴수인 바울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달음박질하게 했다. 푯대를 향하여 전력질주하게 했다. 기억 마다 뛰게 했고, 생각 마다 뛰게 했다. 바울은 똥을 자랑하지 않았다. 사랑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잊지 않았다. 오히려 죽어 마땅한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격하여 똥을 거름으로 사용했다. 전력질주를 위한 촉매제로 말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에게 똥이 있다. 혹자는 똥을 매일 달고 다니며 냄새에 시달린다. 혹자는 똥이 아예 없었던 것처럼 뻔뻔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똥을 없었던 것처럼 여기거나 훈장처럼 달고 다녀서는 안된다. 똥을 똥으로 인식하여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할 마땅한 태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똥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바른 태도인가?

그렇다. 거름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선한 싸움의 촉매제로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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