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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7/2017 / Sanghwan A. Lee

동상이몽 (同相里夢)

요일 1:19a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ἐξ ἡμῶν ἐξῆλθαν ἀλλʼ οὐκ ἦσαν ἐξ ἡμῶν, “그들은 우리로부터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해있지는 않았습니다” (필자번역). 보다시피

(1) 전치사구 + (2) 동사 + (3) 접속사 + (4) 부정불변화사 + (5) 동사 + (6) 전치사구

구성된 문장이다.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해 본절을 다음과 같이 배치할 수도 있겠다.

(1) 전치사구 ………………………………………………………………… (6) 전치사구

(2) 동사……………………………………………………….. (5) 동사

(3) 접속사………………. (4) 부정불변화사

재미있는 부분은 같은 전치사구(ἐξ ἡμῶν) 문장의 시작과 끝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ἐξ ἡμῶν … ἐξ ἡμῶν.”

요일 1.29a.jpg

‘ἐξ ἡμῶν’ 기본적으로우리로 부터,’ ‘우리의정도로 해석된다. 문맥 속에서 엮어지는 동사에 맞춰 해석하면 된다. 그렇다면 본문 속에서는 어떻게 쓰였을까?

첫 번째 문장(ἐξ ἡμῶν ἐξῆλθαν) 경우나갔다(ἐξῆλθαν)’ 함께 엮어져그들은 우리로 부터 나갔다 해석된다. 다른말로 하자면 “그들은 한때 우리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이상은 아닙니다. 우리의 모임으로부터 나갔기 때문이지요.” 정도가 된다. 두 번째 문장(ἀλλʼ οὐκ ἦσαν ἐξ ἡμῶν) 경우그들은 아니었다(οὐκ ἦσαν)’ 함께 엮어져그러나 그들은 우리에게 속해있지 않았다 해석된다. 풀어 표현하자면 “그들은 우리의 물리적 모임에는 함께 참여했으나 모임의 본질적 근간인 신학적 부분에서는 이질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리의 신학적 관점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정도가 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부분은 같은 전치사구가 첫 번째 문장에서는 문자적인 의미 “[우리의 물리적 모임으로부터] 떠나다 사용된 반면 두 번째 문장에서는 신학적인 의미 “[같은 교리를 믿고 있는 공동체에] 속하지 않았다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 사도 요한은 같은 전치사구를 문장의 양쪽에 샌드위치 구조로 배열함으로 아주 충격적인 레토리컬 효과를 구축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요일 1:19a를 헬라어로 읽던 내게도 닭살이 크게 돋았건만 하물며 초대교회의 성도들이랴!

이를 통해 우리가 반추해 볼 수 있는 현상이 있다. 같은 교회당에 함께 모여 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 모두가 같은 교리를 믿고 따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같은 성가대 가운을 입고 있고, 같은 교구에 속해 있고, 같은 자리에 앉아 있고, 같은 성찬에 참여한다 할지라도 그들 중에는 사도들이 전수한 교리와는 이질적인 교리, 즉 요한의 말에 따라 “적그리스도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결국 그들은 잘못된 교리로 교회에 혼란 및 분란을 일으키고, 교회를 대적하며, 성도들 몇을 유린하여 교회를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요한은 자신이 경험한 역사적 사건을 본문의 문장 구조—“ἐξ ἡμῶν … ἐξ ἡμῶν”— 통해 레토리컬하게 알린 것은 물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려 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곱씹어 봐야할 하나의 현상이 있다. 몇몇의 교회들이 첫 번째 문장에 사용된 전치사구가 의미하는교회 안의 가시적이고 표피적인 통일과 질서 지키기 위해 두 번째 문장에 사용된 전치사구가 의미하는교회 안의 비가시적이고 본질적인 신학적 통일과 질서 희생시키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내가 목회를 하던 교회에서도 종종 발생했던 일이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행동이다. 교회는 물론 평화와 사랑의 모임이다. 그러나 평화와 사랑의 모임만은 아니다. 성령의 ,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영적 전쟁에 임해야 하는 전투 집단이기도 하다. 교회는 사도들이 물려준 정통 교리를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검을 들어야 한다. 심지어 같은 물리적 모임에 속해있는 형제와 자매처럼 보이는 이단들에게 검을 치켜 들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다 해도 말이다. (물론 검술은 예수님의 인격을 닮은 제련되고 성숙한 성품으로 펼쳐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사랑과 질서를 운운하며 치러야 마땅한 교리적 전쟁을 회피해야 한다는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을 반만 따르는 잘못된 관점이라는 말이다. 

동상이몽(同相里夢)이라는 성어가 있다. 같은 자리에 있지만 다른 꿈을 꾼다는 의미다. 교회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사방팔방에서 모이는 집단인지라 동상이몽적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 없다. 그러나 성경이 확실히 증거하는 본질적인 교리(i.e., 예수님의 특별성과 독특성[성육신, 부활, 승천, 재림, 심판; 하나님, 구원자, 주인], 삼위일체 )에서 만큼은 동상동몽(童想洞夢)의 통일성 보여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근간인 신학적 부분에서 동상이몽을 추구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나타날 경우 교회는 말씀의 검을 치켜 들고 싸워야 함이 마땅하다. 다시 말하지만, 교회에는 응당 분쟁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분쟁은 이단적 교리까지 포용하는 자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반드시 기억해야 것이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내가 동상이몽(同相里夢) 꾸고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결단코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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