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s
Skip to content
08/10/2017 / Sanghwan A. Lee

“우리가 눈으로 본 바요 또한 자세히 본 바라”

Ὃ ἦν ἀπʼ ἀρχῆς, ὃ ἀκηκόαμεν, ὃ ἑωράκαμεν τοῖς ὀφθαλμοῖς ἡμῶν, ὃ ἐθεασάμεθα καὶ αἱ χεῖρες ἡμῶν ἐψηλάφησαν περὶ τοῦ λόγου τῆς ζωῆς,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 1:1; 개역개정)

Introduction: 본문에는 특이한 부분이 한군데 있다. 한 구절에 “보다 의미의 단어가 번이나 쓰였다는 것이다: ὃ ἑωράκαμεν τοῖς ὀφθαλμοῖς ἡμῶν, ὃ ἐθεασάμεθα, “우리가 눈으로 바요 또한 자세히 바라” 첫 번째 쓰인 단어는 ὁράω이고, 두 번째 쓰인 단어는 θεάομαι이다. 이유가 뭘까?

Lexical Observation: 단순히 반복을 통한 강조의 장치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θεάομαι보다 뜻의 다른 단어들인 ὁράω, βλέπω, θεωρέω, ὄπτομαι등과 이음동의어로 취할경우 ὁράω 되받는 강조적 장치로 수도 있다. 이럴경우 현대인의 성경처럼우리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며 번역될 있다. 그러나 다른 가능성도 있다. 요한이 위에 열거한 단어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θεάομαι가 화용론 선상에서 나타낼 수 있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럴경우 ‘표피 너머에 있는 실체를 살펴본다 의미까지 확장될  있다. θεάομαι 문맥에 따라관찰하다,’ ‘집중하여 보다,’ ‘감추인 것을 보다등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제자들의보는 행위 강세가 놓이는 반면, 후자의 경우깨달음과 연결된 이해 강세가 놓인다. 현대인의 성경을 제외한 대부분의 한글 성경들은 둘의 차이를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1) “우리가 눈으로 것이요, 우리가 지켜본 것이요 (새번역)”

(2) “눈으로 보고 실제로 목격하고 (공동번역)”

(3) “눈으로 바요 자세히 보고 (개역개정)

(4) “눈으로 바요 주목하고 (개역한글)

본글은 후자를 취한다.

See and Observe.png

Voice Observation: θεάομαι의 —μαι 어미에 주목하자. 디포넌시를 인정하는 전통적 학파들은 단순히제자들이 집중하여 관찰하는 행동 묘사하기 위해 θεάομαι 쓰였다고 해석할 있다. 그러나 디포넌시를 인정하지 않는 새학파들은 θεάομαι 세만틱 값을 중간적 의미로 가지고 있는 중간동사로 취해 동작주와 동사 사이에 있는 참여의 정도에 초점을 맞출 있다. 전자의 경우집중하여 관찰하는 행위 강세가 놓이는 반면 후자의 경우동작주가 자신을 위해(e.g., 의심, 믿음) 주목해 보는 행위’에 강세가 놓일 수 있다. 후자를 취한다.

Verbal Aspect & Aktionsart: 완료상을 나타내는 과거형이 쓰였으나 동작으로 보는 시도는 문맥상 동작류에 맞지 않는다. 그보다는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공생애 과정동안 지켜보며 관찰하는 행위를 요약하여 묘사하는 동작류로 보는 것이 옳다. (물론 θεάομαι의 어휘소는 점 동작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본 문맥이 점 동작적 의미를 허용하지 않는다.)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오랜 기간 동안 주목하며 지켜본 행위를 동작류가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 옳다.

Conclusion: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육신 하신 로고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을 손으로도 만져봤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을 보았고, 또한 오랜 기간동안 주의깊게 관찰 살펴봤다.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병든자를 고치시는 예수님,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님,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 살아나신 후에 승천하신 예수님! 이러한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지켜본 (개역개정)” 제자들. 이러한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실제로 목격한 (공동번역)” 제자들. 이러한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자세히 본 (개역개정)” 제자들. 이러한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주목해선 본 (개역한글)” 제자들은 결국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이시니라!” (요일 1:2; 개역개정).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깨닫게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David Walls 말했다.

기독교는 상상에서 나온 소설이 아닙니다. 역사 속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들을 통해 계시된 종교입니다.”

아멘!

Advertisements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