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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0/2017 / Sanghwan A. Lee

바울의 유언적 회상인가 최후의 다짐인가?

완료형 동사상(aspect)으로 다시 바라보는 딤후 4:6-7

현재 헬라어 문법 연구 동향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동사의 형태는 완료형이다. 전통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완료형의 동사적 (aspect) 새로운 학파에 의해비록 적은 수이며 대다수의 문법 학자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지만도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완료형 동사상의 이해와 새로운 동사상의 이해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전통적으로는 완료 형식로 이해되어 왔다. 특정한 사건에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사건을 전체적으로 바라본다는 개념이다. 이런 관점으로 딤후 4:6-7 있는 완료형들을 해석한다면 바울의 유언, 선한 싸움을 이미 싸우고 이제는 더이상 싸움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바울의 모습을 있다. 대다수의 한국어 성경은 전통적 견해를 따라 딤후 4:6-7 번역했다 (특히 쉬운성경과 공동번역을 보라).

개역개정: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새번역: 나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로 피를 흘릴 때가 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쉬운성경: 나는 이미 하나님께 삶을 바쳤고, 이제는 땅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고, 내가 달려가야 길도 끝냈으며, 믿음도 지켰습니다

공동번역: 나는 이미 피를 부어서 희생제물이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가 왔습니다.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개역한글: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현대인 성경: 이미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진 나에게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왔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모든 일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보다시피 한글 성경을 통해 있는 바울의 모습은 이미 선한 싸움을 싸웠고, 달려갈 길을 마쳤고, 믿음을 지켰다. 더이상 싸움의 최전방에 있거나, 달음박질하는 경주 중에 있거나, 시험으로부터 믿음을 꿋꿋하게 지키는 상태에는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거의 모든 문법학자, 주석가 들은 본문을 바울의 유언적 회상으로 이해한다. 이럴경우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사역을 인수인계 하는 과정에서 사역의 중요성을 최대한 부각시킬 수 있는 적합한 문법 형태를 사용한 것으로도 간주될 수 있다: 너도 타인에게 사역을 인수인계 하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하거라.

그러나 새로운 학파들은 이러한 바울의 모습에 질문을 던진다과연 사도 바울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최전방에서 물러났을까? 푯대를 향하여 달린다는 바울의 경기가 죽음이 오기 전에 이미 끝난 것일까? 모진 시험으로부터 믿음을 담대히 지키는 바울의 싸움이 마지막 한 숨이 내뱉어지기 전에 막이 내린 것인가? 혹은 단지 디모데에게 사역의 중요성을 절감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완료형을 사용한 것일까? 이런 질문을 염두하며 전통적 관점을 재조명한다. 결과 완료형이 완료 형식이 아닌 미완료 형식로 이해될 경우참고로 현재 학계의 완료형에 대한 이해는 (1) 전통적: 완료 형식, (2) 새학파: [a] 미완료 형식, [b] 완료 형식 + 미완료 형식, [c] 상태 형식으로 나뉜다. 그러므로 완료형을 미완료 형식으로 이해하고 본문을 바라보려는 시도는 학술적으로 충분히 타당하다—특정한 어휘소가 특정한 문맥 속에서 진행적 동작류(Aktionsart) 이해될  있음을 주장할 수 있게 됐다. 만약 이들의 주장이 합당하다면 딤후 4:6-7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있다. 아래처럼 말이다.

새학파: 하나님께 삶을 드린 제가 세상을 떠나야 시간이 [지금]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선한 싸움을 [여전히] 싸우고 있고, 달려갈 길을 [아직] 달리고 있으며, 믿음도 [변함없이] 지키고 있습니다.

새학파의 주장이 맞다면 사도 바울은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을 위해 전진, 전진, 전진하다가 최전방에서 최후의  숨을 내뱉는 순교자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럴경우 딤후 4:6-7 바울의 유언적 회상이 아니라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노라는 믿음의 다짐이 된다. , 디모데에게 모든 것을 인수인계 한 후에도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하나님 앞에서 홀로 선 성도로서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완주하리라는 바울의 불굴의 의지가 표현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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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떤 해석이 타당할까? 나는 완료형을 이해하는데 아직까지는 전통적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전통적 입장만을 고수하지 않고 새학파의 관점중 (2)[a], (2)[b] (1) 연결고리를 찾으려 애쓴다. 양쪽 진영 다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난제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너무도 많은 지면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본 글에서는 생략한다). 반면에 (2)[c] 관점을 고려하지 않는 이유는 상태는 동작류(Aktionsart) 탁월하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에 동사적 (aspect)으로 보려는 시도는 지나친 무리수처럼 보이기 때문. 거두절미하고 답이 뭐냐고? 모른다. 아직 헬라어 동사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 깊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전통적 입장을 기준으로 새학파의 주장들을 시험하고 있는 중이다. 중요한 사실은 앞으로 완료형이 어떻게 이해되느냐에 우리 모두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 단지 바울의 유언이냐 다짐이냐의 문제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핵심 주변 교리들 중에도 새로운 해석으로 꼬까옷을 입고 우리 앞에 서게될 부분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기대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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