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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2017 / Sanghwan A. Lee

Jesus, the Lord of Nature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막 4:35-41)

storm.jpg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은 커다란 폭풍을 두려워(δειλός)합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폭풍을 잠재우신 예수님을 경험한 후로는 그분을 두려워하게(φοβέω) 됩니다. 두려움의 대상이 풍랑에서 예수님으로 바뀐 것입니다. 형용사 데이로스(δειλός)는 ‘비겁하게 무서워하다’는 뜻으로 부정적 의미로만 쓰이는 반면 동사 포베오(φοβέω)는 문맥에 따라 긍정적이나 부정적 의미로 쓰입니다. 본문 속에서 포베오(φοβέω)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여 ‘경외하다’로 번역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럴경우 풍랑을 비겁하게 무서워하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경외하게 된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예수님께서 풍랑보다 더 크신 분이심을 풍랑 속에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때로 인생이 거대한 풍랑을 우리에게 던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지 맙시다. 무서워하지 맙시다. 바로 그 때가, 풍랑보다 더 크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풍랑을 향한 우리의 두려움은 곧 예수님을 향한 경외심으로 바뀔 것입니다!

부연설명: 막 4:41a에 사용된 헬라어 신텍스가 요나 1:10a에 등장하는 히브리어 신텍스와 아주 흡사합니다.

וַיִּֽירְא֤וּ הָֽאֲנָשִׁים֙ יִרְאָ֣ה גְדוֹלָ֔ה

καί ἐφοβήθησαν φόβον μέγαν

보시다시피 형용사(גְדוֹלָ֔ה)가 내부대격(יִרְאָ֣ה)을 수식하고 있어 선원들의 두려움이 극도에 달했음을 나타냅니다. 이런 관점으로 마가복음에 사용된 신텍스를 볼 때 예수님을 향한 제자들의 경외심도 극도에 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풍랑을 멈추신 예수님의 신성 앞에서 그전에는 갖추지 못했던 신적 경외심을 갖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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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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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뿌리깊은 나무 / 6월 1 2017 3:36 오전

    관점의 변화… 내가 누구를 볼 것인가!! 풍랑이 거세 질 수록 그 보다 더 크신 주님을 깊이 만나야 할텐데 너무 자주 풍랑만을 보게되니 풍랑 으로 인해 나의 나약함만을 더 알아갈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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