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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2017 / Sanghwan A. Lee

애송이 목회자

담임 목사가 되면 교회의 성도들과 힘을 합쳐 세상에 만연한 자유주의 신학 사조와 맞짱뜰 각오를 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열심히 도를 닦았다. 그러나 담임 목사가 되고나니 내 계획은 철없는 애송이의 허황된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됐다. 나를 가장 먼저 기다렸던 장벽은 교회 밖의 자유주의가 아니라 교회 안에 이미 들어와 있던 자유주의 신학사조였기 때문이다.

로마서 강해를 하며 죄에 대해서 설교하니 교회의 중직자가 “목사님, 그런 설교 하시면 성도들 다 나갑니다. 복받는다는 설교도 좀 해주세요” 그러더라. 세금을 탈세했다가 걸린 자에게 성경공부 교사직을 잠시 내려놓게 하니 “원리원칙대로만 하면 부러집니다” 그러더라. 자신이 기독교인 인줄 알고 우리 교회를 출석하던 몰몬교인과 여증인에게 기독교와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니 “목사님이 아직 어려서 교리, 교리만 말씀하시네요” 그러더라. 교회에 들어온 이단 두명을 내어 쫓으니 “사랑이 없는 목사네요” 그러더라. 입에서 육두문자를 쓰는 자에게 임원예비투표에서 물러나게 하니 “xxxxxxxxx” 욕하고 나가더라. 그 때 또 한 번 깨달았다. 교회 성도들과 힘을 합쳐 세상에 만연한 자유주의 신학 사조와 맞짱을 뜬다는 생각은 목회를 단 한번도 해보지 않는 애송이만 할 수 있는 소리라는 것을. 내가 경험한 목회는 화려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았다. 안팎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피터지는 전쟁이었다.

물론 내 연륜의 부족함과 인격의 미성숙함이 목회의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했으나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말씀과 기도와 성경공부로 밀고 나가니 좌충우돌하던 흐름에 질서가 잡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로마서 강해를 끝내니 속된말로 나갈 놈은 나가고 올 놈은 오더라. 적합한 자들로 성경 공부 교사를 세우니 성도들이 변하더라. 여증인과 영혼을 위한 논쟁을 하다보니 결국 “예수님을 하나님의 독생자로 고백합니다. 그 분은 내 구주시요 왕이십니다. 이제 천국과 지옥을 시인합니다” 고백하더라. 이단을 내어쫓은 후 교인들에게 성경공부를 가르치니 교리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성도들이 생기더라. 무엇보다 내가 사랑해주니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성도들이 일어나더라. 그 때 깨달았다. 이것이 목회에서 맺어지는 열매라는 것을. 스테끼처럼 거창하지는 않지만, 까르보나라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군고구마처럼 소박하고 알찬 기쁨이라는 것을 말이다.

목회를 떠나 신학교로 온 후 몇 번의 목회 초빙이 들어왔다. 목회에 얼마나 많은 힘과 에너지가 쏟아져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공부가 병행돼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마음 고생을 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이 나를 죽여야 하는지가 떠올랐다. 결국 못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신학교의 울타리 안으로 다시 숨어들었다. 다음에 시작할 목회는 내가 죽으러 가는 곳임을 알기에 아직 죽을 준비가 안된 나로써는 너무 벅찼던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자네가 목회의 꿈을 안고 있다면 이것 하나만 꼭 알아두이소. 이 세상에 편안한 목회라는 것은 없소이다. 그 길은 가시밭 길이요, 배반당하는 길이며, 침뱉음 당하는 길이더이다. 자네에게 돌아가는 현세의 몫은 스테끼도 아니요, 까르보나라도 아니라, 작은 군고구마 일지 모르오. 만약 그대가 원하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니라 편하고 우아한 목회라면 그것이 정말 목회인지 잘~ 생각해 보이소. 왜 예수님만 바라봐야 하는게 목회라고 선배들이 말했는지도 한 번 곱씹어 보이소. 목회는 전쟁이기 때문에 그러하오. 그 피터지는 전쟁 속에서 임하는 예수님의 군고구마와 같은 위로 먹고 나아가는 것이 정녕 목회이더이다.

길.jpg

추신: 무척이나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소중한 벗, El Paso의 옛 성도로부터 따뜻한 전화를 받은 어느 날, 두서없이 과거를 회상하며 몇 자 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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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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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인 / 4월 30 2017 9:31 오전

    목사님 작게남아 비슷한 마음이 든적이 있습니다
    내용 중에 아직 준비가 안됐다고 하셨는데 그럼 준비된 기준은 뭘까요?
    그런 상황이 저에게 또 허락된다면 솔직히 힘들고싶지 않고
    그저 알아주지 않는 것을 묵묵히 한다는 것은 너무 힘든거 같아요
    물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것은 선한 것을 쫓아도 아니지만 도리어 비난받고
    결국 사람들은 저에 대한 편견이 생기고 그런 시선을 그저 참고..
    물론 시간이 지난 뒤에 결국 서로 이해하고 알아가지만
    십자가의 길이 그렇다면 할 말이 없겠으나 더 힘들고 싶지가 않고
    더는 나쁜 사람도 고집이 강한 사람도 아닌 그냥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요
    어쩌면 이미 답은 머리로 알지만 막상 그 길을 가는건 너무 어려운 일인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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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nghwan A. Lee / 5월 16 2017 7:20 오전

      안녕하세요. 네, 그 마음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제 부족한 소견으로 말씀드리지만 “내가 예수님과 성도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됐는가”의 마음가짐이 목회자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라고 생각이 됩니다.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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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enry Chun / 6월 3 2017 11:53 오전

    이슬람의 지경 두바이에서 보낸 4년여간, 교회와 성도를 위한 말씀과 예배를 위해 혼신의 열정을 쏟으시는 귀한 목사님을 허락해 주신 주님의 은혜로 이 십년이 넘는 신앙이 완전한 변화를 맞게 되었습니다. 두바이를 떠난 후 말씀에 목마름이 숨에 차도록 힘에 겨운 2년을 지나고 있을 때, 우연히 목사님의 원죄에 관한 글을 읽고 광야로 내어몰리신 주님에 관한 글을 읽게 되면서, 목마름을 적실 주께서 예비하신 샘물을 찾은 마음 이었습니다. 목회자를 친구로 두도 있는 터라 누구 보다 목사님의 글에 깊은 이해와 공감을 하고 있기에 감히 한 말씀 올리자면, 저와 같이 정말 죽을 만큼 말씀에 목마른, 생각지도 못한 곳의 예비하신 자들을 위해 목사님의 이 블로그의 귀한 글들은, 교회 목회 사역과는 또 다른(담임목회를 하시지 말라는 주제넘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펼치고 계시는 귀한 사역이심을 저는 확신합니다. 주께서 뜻하신 시간에 뵙는 기회를 허락하시길 바라며…..한국에서 평신도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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