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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8/2017 / Sanghwan A. Lee

‘성자 예수님 + 능동태’의 문법 구조로 묘사된 부활 사건의 의미

교회사의 기독교 자료들을 살펴보면 대다수가 성자 예수님의 부활을 성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행하신 단독적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많은 성경 구절들이 ‘주어: 성부 하나님 + 동사: 능동태’의 구조로 예수님의 부활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행 2:24 – 성부 하나님 + 능동태: ὃν ὁ θεὸς ἀνέστησεν λύσας τὰς ὠδῖνας τοῦ θανάτου, 성부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다.

행 13:30 – 성부 하나님 + 능동태: ὁ δὲ θεὸς ἤγειρεν αὐτὸν ἐκ νεκρῶν, 성부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다.

롬 10:9 – 성부 하나님 + 능동태: ὁ θεὸς αὐτὸν ἤγειρεν ἐκ νεκρῶν, 성부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

고전 6:14 – 성부 하나님 + 능동태: ὁ δὲ θεὸς καὶ τὸν κύριον ἤγειρεν, 성부 하나님께서 주님을 일으키셨다.

보다시피 많은 구절들이 ‘성부 하나님 + 능동태’의 구절로 예수님의 부활을 묘사하고 있어 부활을 성부 하나님의 독자적 사역으로 묘사하고 있는듯 하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구절이 몇 개 더 있다. 바로 요 2:19와 10:17~18이다. 언급한 구절들에는 아주 특이하고 독특한 문법 구조가 등장하는데, 예수님의 부활이 ‘성부 하나님 + 능동태’가 아닌 ‘성자 하나님 + 능동태’의 구조로 묘사되어 있다.

요 2:19 – 성자 하나님 + 능동태: λύσατε τὸν ναὸν τοῦτον καὶ ἐν τρισὶν ἡμέραις ἐγερῶ αὐτόν, 너희가 이 성전을 무너뜨린다면 내가 사흘 안에 일으킬 것이다.

이 구절에 사용된 “성전”은 예수님의 몸을 의미한다. 즉, 사람들이 예수님의 몸을 무너뜨린다면 예수님께서 스스로 ‘일으키다’ 동사의 주체가 되어 부활의 기적에 능동적 주체로 친히 참여하신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부활의 기적을 받는 수동적 타자가 아니라 부활을 일으키는 능동적 주체가 되신다는 말이다.

요 10:17~18 – 성자 하나님 + 능동태: Διὰ τοῦτό με ὁ πατὴρ ἀγαπᾷ ὅτι ἐγὼ τίθημι τὴν ψυχήν μου, ἵνα πάλιν λάβω αὐτήν. οὐδεὶς αἴρει αὐτὴν ἀπʼ ἐμοῦ, ἀλλʼ ἐγὼ τίθημι αὐτὴν ἀπʼ ἐμαυτοῦ. ἐξουσίαν ἔχω θεῖναι αὐτήν, καὶ ἐξουσίαν ἔχω πάλιν λαβεῖν αὐτήν· ταύτην τὴν ἐντολὴν ἔλαβον παρὰ τοῦ πατρός μου,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취하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역시 예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다시 취하시는 주체, 즉 부활을 일으킬 수 있는 권세를 갖고 계신 주체로 계시되어 있다. 부활의 기적을 받는 수동적 타자가 아니라 부활을 일으키는 능동적 주체가 되신다는 의미다.

질문이 있다. 과연 누가 이러한 능력을 행할 수 있을까? 과연 누가 자신의 부활에 능동적 주체로 개입할 수 있단 말인가? 일개의 인간이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오직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이는 곧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으로 계시하신 것과 일반이라는 의미가 된다.

잠깐. 여기에 해석학적 문제가 하나 생긴다. 이러한 논증은 ‘성부 하나님 + 능동태’로 예수님의 부활을 묘사하는 수 많은 문법 구조와 모순이 되는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성부 하나님 + 능동태’의 구조로만 묘사되어야 한다는 한정적 구절이 있다면 당연히 모순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한정적 구절이 없을 경우 ‘성부 하나님 + 능동태’와 ‘성자 하나님 + 능동태’의 문법구조는 예수님의 부활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두 개의 문법 형태가 된다. 이런 형태를 고려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이해한다면 성부 하나님은 물론 성자 하나님께서도 부활의 사건에 능동적으로 개입하신 주체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령 하나님의 능동적 개입은 이 글에서 생략한다.)

그렇다. 부활은 성부 하나님께서 독자적으로 일으키사 성자 하나님을 수동적 타자로 참여하게 하는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성자 하나님께서 성부 하나님과 함께 능동적 주체로 참여하사 일으킨 공동 작업이다. 그러므로 부활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살아 나셨다”는 사건을 계시하는 선포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능동적으로 부활 사건에 개입하사 죽음을 이기신 생명의 하나님이시다”는 충격적인 계시까지 선포하는 사건인 것이다!

Resurrectio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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