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s
Skip to content
04/05/2017 / Sanghwan A. Lee

하나님의 눈동자

느부갓네살의 옆 모습 초상화가 새겨진 호마노(縞瑪瑙)가 바벨론에서 가장 높은 신으로 여겨진 마르둑 조각상의 눈동자가 있어야 할 부분에서 발견됐습니다.

Nebuchadnezzar2.jpg그 이유가 뭘까요? 미국에 오래 살아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영어 숙어중 “You are the apple of my eye”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굳이 번역하자면 “너는 내 눈의 사과”라는 다소 어색한 표현이 됩니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전할 때 이 표현을 씁니다. 느부갓네살이 살았던 바벨론 시대에도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전할 때 자신의 눈동자와 연결시켜 표현했던 것입니다. 이런 관용어를 잘 알았던 바벨론 조각가는 마르둑의 눈동자에 느부갓네살의 얼굴을 조각해 넣음으로써 느부갓네살이 마르둑에 의해 소중하게 보호를 받고 있었음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시편 17:8-9에도 이와 비슷한 숙어가 나온다는 것을 아시나요?

“[주께서]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 17:8-9)

“눈동자 같이 (כְּאִישׁ֣וֹן בַּת־עָ֑יִן)”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눈의 작은 자,” 혹은 “눈의 딸”이 됩니다. 표현의 뉘앙스를 살려 의역하면 “눈 안에 있는 작은 자,” 혹은 “눈동자에 비취는 딸” 정도가 되지요. 이게 무슨 뜻일까요? 혹시 갓 태어난 어여쁜 딸을 가까이에서 바라본 적이 있나요? 딸은 아빠의 눈동자에 비췬 자신의 작은 모습을 바라보며 신기해 할 것입니다. 이처럼 “눈 안의 작은 자,” 혹은 “눈에 비취는 딸”이라는 표현은 의인화 된 하나님의 눈동자에 비췬 우리를 의미합니다. 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주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계시다는 전제가 함축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우리를 해할 수 없다는 믿음이 응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몰려오는 고난과 환난 속에 있던 시편 기자는 자신을 아주 가까이에서 바라보시며 강한 두 팔로 감싸 안으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바라보며 도움을 구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환란 속에 있나요? 그렇다면 그 어떤 환란이 몰려온다 할지라도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강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능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지혜롭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 안에 있는 작은 자요 아버지의 눈에 비취는 존귀한 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예배합니다!

eyes-of-god.jpg

 

Advertisements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