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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6/2017 / Sanghwan A. Lee

제자리에 머물고 싶으면 죽어라 뛰어라!

제자리에 머물고 싶으면 죽어라 뛰어라!

겨울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문구다. 제자리에 머물고 싶으면 죽어라 뛰라고? 무슨 의미일까? 세상은 쉬지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자연스레 뒤쳐지고 도태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제자리에 머물고 싶다면 죽어라 뛰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앞서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뛰어야 한단 말인가? 중요한 사실은 학문을 하는 신학자들도 이러한 한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나와 가까이 지내는 미국 친구 한 명이 유명한 기독교 저널 회사에 아티클을 써서 보냈다. 워낙 탁월한 친구였기 때문에 당연히 우수한 성적으로 붙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이틀 전에 그에게 통보된 소식은 내 예상을 뒤엎었다. 레터 용지 세 장에 빼곡하게 적힌 날카로운 비평과 비판이 그의 낙방 소식을 알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 친구와 함께 편지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가 낙방한 가장 큰 이유는 예상 밖이었다. 부적절한 논리? 부적절한 단어 사용법? 아니다. 낙방의 이유는 단순했다. 최근의 소스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예전에 나왔다가 새로운 논증들에 의해 부적절하다고 판단된 논증들, 즉 학계에서 더이상 통용되지 못하는 논증을 바탕으로 저널을 썼던 것이다. 당연히 “구석기적 폐기물”이라는 비판을 들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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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홍수 시대의 산물인 신문, 뉴스, 그리고 인터넷 SNS 등에 올라오는 신학적 주장들도 이런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예컨대 더이상 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구석기적 논쟁들을 마치 새로운 신석기적 논쟁인것마냥 입에 침을 튀기며 논쟁하는 자들이 보인다. 아무개 기독교 출판사가 새롭게 출판하는 번역 책들도 오래전에 사장된 옛 논증들을 담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성도들의 간지러운 귀를 긁어주기를 좋아하는 목사들의 설교에도 한때 반짝 했다가 퇴장한 잘못된 해석이 새로운 해석인것 마냥 인용되기도 한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신학적 정보에 많이 노출되지 않은 평범한 성도들은 분별할 수 있는 능력도 없이 세간에 떠도는 잘못된 정보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잘못된 사관을 시나브로 구축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보가 바보를 가르치니 바보가 세상에 만연하구나”라는 고타마 싯타르타의 한탄은 이런 현상을 지적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것 아는가? 홍수 때 사람이 죽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먹는 물의 부족이란다. 정보의 홍수 시대도 마찬가지다. 정보가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양질의 정보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양질의 정보는 헐값에 주어지지 않는다. 벌렁 누워서 입을 벌리고 있으면 친절하게도 입안으로 들어오는 사과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전문가들의 조언, 최근에 연구된 자료들, 상반된 양쪽 진영의 주장 등을 두루두루 비판적으로 소화하며 취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 하나님께 바른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간절히 간구해야만 한다. 이렇게 얻어진 정보 조차도 비판하며 검증해야만 저질의 정보들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결론? 열심히 기도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열심히 기도하자. 정말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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