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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4/2017 / Sanghwan A. Lee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된 우리들

어제 저녁, 무척 좋아라 하는 아무개 전도사님과 대화를 나눴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던지라 서로의 안녕을 묻는 과정에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 중에 나를 무척 놀래킨 사건 하나가 있었다. 전도사님 본인이 입양된 양자였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처음 접한 순간 무척이나 놀라셨단다. 이해가 됐다. 듣는 나도 크게 놀랐는데, 하물며 전도사님 자신이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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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사님과 대화가 끝난 후 큰 여운이 남아 어두운 공간에 홀로 누워 에베소서 1:5를 묵상했다. “[성부 하나님께서]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여기에 “아들들이 되다”는 의미로 사용된 헬라어(υἱοθεσίαν)는 입양이라는 뜻이다. 친자가 아니라 양자를 의미할 때 사용되는 단어라는 말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유일무이하신 독생자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양자들로 선택하사 입양하셨다는 의미다.

여기에서 우리가 하나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에베소서가 쓰였던 그레코-로만 사회에서 아무개에게 “입양”된다는 사실은 최고의 영광 중에 하나였다는 것이다. 로마인들이 가지고 있던 입양의 개념은 진화론의 자연선택설 매커니즘과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설을 쉽게 설명하자면 자연이 아무나 “선택”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살아있는 여러 생명체들 중 가장 우수하고, 튼튼하고, 건강한 유전자를 추리고 추려내, 그들만 살 수 있도록 “선택”해 준단다. 즉, 여러 생명체 중에 잘난 놈만 뽑아 자식을 삼고, 부족한 놈들은 스스로 도태되도록 버려둔다는 개념이 그레코-로만 시대에 있었던 “양자가 된다”는 의미에 숨겨진 매커니즘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영욕문화(Honor and shame)가 크게 지배하고 있던 로마에서 누군가에게 입양됐다는 사실은 자신이 많은 경쟁자들을 이기고 또 이긴 후에 결국 선택되어진 “우월한 유전자”였음을 뽐낼 수 있는 훈장이었던 셈이다.

아울러 로마의 부모들은 비록 친자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가 뛰어나거나 탁월하지 않으면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는 타자를 양자로 입양하여 그에게 자신의 가업을 물려줄 정도였다. 놀랍게도 이런 일들은 왕족 가문에서 특히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것 아는가? 로마의 첫 황제였던 아우거스투스도 입양된 양자였다는 것을? 두 번째 황제였던 티베리우스도 아우거스투스에 의해 입양됐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뒤의 황제들인 갈리굴라, 네로, 트라잔, 하드리안, 안토니우스, 아울렐리우스, 그리고 베루스도 모두 입양된 양자들이라는 사실을? 더 놀라운 사실은 황제가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을 입양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보다 “더 우수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판단된 혈통 다른 타자를 양자로 선택하여 황제로 키웠던 것이다.

이런 매커니즘에 의해 구동되는 사회 속에서 쓰인 서신서가 에베소서다. 그런 에베소서 1:5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부 하나님께서]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 문장을 읽는 1 세기의 성도들은 두 가지 이유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첫째, 모든 면에 으뜸되고 뛰어난 최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성부 하나님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양자 삼으셨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성경이 증거하듯 예수님께서는 로마 황제들의 친아들처럼 탁월하지 못하거나 결핍이 있으신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모든 면에 뛰어나시고 완벽하신 아들, 성자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성부 하나님께는 양자들이 필요 없으셨다. 예수님 한 분 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들을 양자로 입양하셨다는 사실은 1 세기의 독자들을 충분히 충격으로 몰아 넣었을만 하다.

둘째, 탁월하지 못하면 양자로 선택될 수 없던 문화에서 벌레보다도 못한 죄인들이 하나님에 의해 양자로 선택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진화론의 핵심 매커니즘인 자연선택설을 뒤엎으신 것이다! 생각해보라. 어떻게 자랑할 것이 전혀 없는 자들을 양자로 선택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기쁘시게 말이다! 그래서 본문을 읽은 1 세기의 성도들은 이렇게 외쳤을지도 모른다. “이럴수가!  특별하지도 못하고, 탁월하지도 못하고, 걸출하거나, 독특하거나, 으뜸 된 것이 하나도 없는 우리를 양자로 선택하신 이유가 뭐지? 게다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모든 복까지 누리게 하시는 이유가 뭐지? 이게 도대체 어찌된 영문이지? 도대체 왜? 내가 뭐라고? 나같은 벌레가 어찌 이런 과분한 선택을 받았다는 말인가?” 바울도 역시 여러가지 질문을 던졌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만삭되지 못하여 태어난 약하고 보잘 것 없는 나… 죄인 중에 괴수인 나…. 나 같은 천한 자가 어찌?” 바로 그 때, 성경은 이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그 분의 양자로 선택이 된것이니 이 모든 과정은 너희가 잘났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하여 주어진 그분의 선물이라 (엡 2:8 의역).”

이런 엄청난 축복을 받은 우리가 은혜에 감사를 표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있다면 무엇일까? 앞에 언급했던 아무개 전도사님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어제 저녁, 그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처음 입양되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사실을 믿기 어려웠던 큰 이유는 입양된 자신과 입양하신 아버지가 너무 닮았기 때문이란다. 그래. 바로 이것이다. 사랑하면 사랑의 대상을 닮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입양되신 전도사님께서 입양하신 아버지와 크게 닮게 되어진 이유는 아버지를 너무 깊이 사랑하셨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그 분을 시나브로 닮게 되어진 것은 아닐까?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아버지를 닮은 것은 아닐런지… 성부 하나님에 의해 입양된 우리도 그래야 할 듯 하다. 너무 깊이 사랑하여, 너무 크게 사랑하여 그분이 우리를 입양했다는 사실이 겉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 분을 닮아가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의 삶을 통해 겉으로 보여지도록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은혜의 보답은 아닐까? 아마… 그런 것 같다.

큰 은혜를 나눠주신 OOO 전도사님께 이 부족한 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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