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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2016 / Sanghwan A. Lee

To the Unknown God

사진 속의 글은 “아무 신에게…”라는 제목이 붙은 고대 수메르인의 기도이다.

알지 못하는 신에게.jpg

화가 난 신에게 자신을 향한 노를 거두어 달라는 내용으로 시작된 기도는 그에게 화가 났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종류의 신들을 찾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그는 몇명의 신이 있는지, 어떤 신이 자신에게 화가 났는지 모른다. 그래서 모든 경우의 수를 떠올리며 있을 것이라 추정되는 모든 신들을 찾으며 용서를 구한다. 자신의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한 그는 죄가 많아 견딜 수 없다고 토로한 후 신이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 결과 저주가 임했다고 말한다. 그 후에는 찾고 찾아도 대답이 없는 신들을 기다리며 자신을 버리지 말라는 간구가 이어진다.


“나의 어머니 여신이시여, 제가 일곱 번씩 일곱 번 죄를 범했나이다. 용서해 주소서.”

“알고 모르는 신이시여, 제가 일곱 번씩 일곱 번 죄를 범했나이다. 용서해 주소서.”


그렇게 그의 기도는 답이 없이 끝난다.

여러가지 질문들이 떠오른다. 그는 결국 참된 하나님을 만났을까? 자신을 간절히 찾는 자를 만나주시겠다시던 하나님의 약속은 그에게도 유효했는가? 무엇보다 나는 이방 신도처럼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도 않았었고 죄에 대해서도 민감하지 않았었는데 나를 만나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베푸신 은혜라고 생각하면 되는가?

나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믿는다. 하나님의 절대적 선물인 은혜를 믿는다. 하지만… 하지만… 왜 나같은 벌레에게, 아니 벌레보다도 못한 나에게 그분의 주권과 은혜가 흘렀는지는 이해가 안된다. 복음을 이해한 후 처음으로 내뱉었던 “근데 왜 나같은 놈이 선택을 받았나요?”라던 12살 아이의 질문은 곧 나의 질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성경이 말하는 “은혜”란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단어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은혜를 너무 쉽게 정의내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보며 엡 2:8-9의 말씀을 묵상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 2:8-9)

이 구절의 깊이와 무게가 빙산의 일각만큼 느껴지는 캘리포니아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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