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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3/2016 / Sanghwan A. Lee

문법과 신학으로 접근하는 구절주해 (Grammar & Theology-Driven Exegesis)

시험 구절: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Ἔξελθε ἀπʼ ἐμοῦ)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개역개정 누가복음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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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문맥: 문맥의 전후를 살펴보면 베드로는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는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보고 (1-8a절), 그 분의 발 앞에 엎드렸으며 (8b절),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했다 (8d절). 그리고 베드로의 심경을 나타내는 “두려워하다”는 동사가 δειλιάω나 δειλός가 아닌 ‘하나님을 경외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φοβέω가 쓰인 것으로 미루어보아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10절). 그가 자신을 받아주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는 증언은 이런 이해를 지지한다 (11절).

8절의 새관점 제시: 본문을 새롭게 이해하기 위해서 전치사 ἐκἀπό의 차이를 아는 것은 도움이 된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전자는 ‘B 안에 있던 A가 B의 밖으로 나오다’는 의미인 반면, 후자는 ‘A가 B로부터 멀리 떨어지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세멘틱의 영향을 받은 코이네 헬라어에서는 ἐκἀπό가 ‘대상 A로 부터 멀리 떨어지다’는 의미로 주로 쓰였다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에 둘의 쓰임새를 지나치게 구분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 (Turner, Zerwick, Decker, Abbott, Porter). 그러나 둘의 쓰임새가 “거의 동일하다고 보는 것”이라는 의미는 “동일하지 않게 쓰인 부분도 있다”는 것을 의미함을 잊지는 말자. 이는 누가가 본문을 쓸 때 둘의 쓰임새를 구분하여 사용했었을 가능성도 있음을 열어둔다 (Moule).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본문의 전통적인 해석보다 조금 더 신학적인 해석을 만들 수 있게 되는데, 바로 그것을 짧게 나눠보고자 한다.

전치사의 차이: ἔξελθε ἀπʼ ἐμο에 사용된 ἀπό의 의미를 ἐκ와 차이를 두지않고 해석한다면 “주여, 나를 떠나소서”가 된다. 아마 대부분의 한글 번역이 이와같은 번역을 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ἀπό의 의미를 ‘안에서 밖으로 나오다’는 의미로 본다면 “주여, 나로부터 나오소서”가 된다. 문자적으로는 몹시 어색한 해석이지만 문법적으로 가능하고, 또한 신학적으로 타당하다.

문법적 접근: 우선 문법적인 접근을 살펴보자. ‘ἐξέρχομαι + ἀπό’의 문법 구조는 신약 성경에 12번 사용된다. 그러나 특이한 부분은 이 문법 구조가 두 명의 인격체를 대상으로 엮어져 사용될 경우 예외없이 ‘존재 B 안에 있던 존재 A가 존재 B로 부터 나가다’는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e.g., 마 12:43; 마 17:18; 눅 4:35; 눅 8:29; 눅 11:24; 행 16:18). 그리고 인격체가 아닌 다른 대상들과 엮어져 사용되는 나머지 구절들도 역시 빛, 능력, 인격체 등이 특정한 장소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므로 눅 5:8절도 충분히 “나로부터 나오소서”로 번역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물론 LXX를 살펴보면 ‘ἐξέρχομαι + ἀπό’ 구조가 (1) ‘존재 A가 존재 B로부터 나오다’와 (2) ‘존재 A가 존재 B를 떠나다’를  의미하기 위해 다 쓰였다. 하지만 위에 언급했다시피 신약 성경에 사용된 ‘ἐξέρχομαι + ἀπό’ 구조, 특히 누가복음에는 예외없이 ‘존재 A가 존재 B로부터 나오다’로 쓰였기 때문에 내가 제시하는 상상의 나래는 여전히 타당성을 확보한다. (사회언어학적 관점으로도 이런 해석이 지지될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신학적 접근: 이제는 신학적으로 접근해보자. 성경의 증언에 따르면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기 때문에 인간의 안팎에 충만히 계신다. 구약 성경을 봐도 이방신과 참 하나님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이방신은 한 곳에만 국한되어 있는 지역신인 반면 참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안팎에 충만히 계신 무소부재의 신이다. 만약 베드로가 이러한 신관을 갖고 있었다면 (유대인으로서 충분히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주여, 나로부터 나오소서”라는 해석은 신학적인 무게를 갖고 있는 표현이 될 수 있다. 즉, 어디에나 계신 무소부재의 하나님, 그러나 쉐키나의 영광으로 부정한 것을 떠나실 수 있는 하나님 사이에 존재하는 신적 미스테리를 떠올려 보라. 유대인이었던 베드로는 하나님의 무소부재성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죄로 가득찬 존재라는 사실도 알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신적 계시에 노출된 순간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무소부재성으로나마 더러운 자신 속에 거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에 경악 했을 수도 있다. 이럴경우 “주여, 나로부터 나오소서”라는 표현은 다윗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과 성전의 쉐키나 하나님이 조직신학적으로 융합된 존재론적인 고백이라고 해석될 수 있지는 않을까? 즉, 눅 5:8에 기록된 베드로의 고백은 단지 자신을 떠라달라는 애원이 아니라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그 어떤 부분에서도 함께 할 수 없는 더럽고 추한 죄인이라는 엄청난 고백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결론: 내가 본글을 통해 제시한 새로운 해석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나와 같은 해석을 한 신학자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은 위에 제시한 해석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분명히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본글을 통해 나누고자 하는 바는 문법적으로 신학적으로 타당한 번역이나 해석은 제시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비록 거절된다 할지라도 말이다. 누가 아는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혹은 제시되지 않은 주옥같은 관점들이 나처럼 엉뚱하고 이상한 사람들에 의해서 빛을 보게될지 말이다. ㅋㅋ 바로 당신이 그 사람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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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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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익명 / 11월 3 2016 9:31 오후

    네 목사님 ^^ 문법적으로 가능한 해석이고 신학적인 부분도 뒷받침되기 때문에 새관점으로 채택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나를 떠나소서 보다 나에게서 나오소서가 조금 더 제게는 깊이 다가오네요. 부정한 내 속에서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에 화들짝 놀라는 베드로의 모습 속에 “복음을 깨닫고 난 후” 죄로 가득한 나 자신을 본 경험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답글을 달고 있습니다. 귀한 포스팅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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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익명 / 11월 4 2016 2:36 오전

    0. 귀한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감탄하는 일인입니다.

    1. 그런데 저는 헬라어는 잘 모르지만 우리 몸이 성전이 되어 성령하나님께서 내주하시게 된 시점을 생각할 때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현재 등장인물인 두 분은 지금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으로 빚어져서 자연적인 모습으로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지 내주하는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고 믿어지지 않네요.

    2.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실 수 있게 된 시점은 성령세례 이후이기 때문에 아직 죄사함도 성령세례도 없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로 부터 나오소서” 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십자가에서 저주와 죄악을 제거하신 그 이후에 성령님이 우리안에 내주하시게 된 그 이후에나 할 수 있는 고백이라고 믿습니다.

    3. 생각하면서 읽게 하시는 글들로 다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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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nghwan A. Lee / 11월 4 2016 8:43 오전

      본글은 구속사적 의미로서의 성령의 내주하심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무소부재적 의미로서의 속성적 거주하심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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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윤영천 / 11월 6 2016 3:00 오전

    안녕하세요 목사님! 🙂
    저는 이스라엘에서 현대 히브리어와 성서학을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목사님의 구절주해 방식과 내용들을 보며 영감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이번 글에 대한 목사님의 생각을 보고, 저도 그러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현대 히브리어로 번역된 신약을 보니까,
    베드로가 “나를 떠나소서.” 라는 말을 할 때, 히브리어 יצא(야짜) 동사를 썼더군요.

    이 동사는 come out 의 의미가 강합니다. 원래 있던 장소에서 밖으로(outside) 나가는 의미가 있는 거죠.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출구(exit)라는 말도 이 어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히브리어 언어적인 해석으로도 목사님의 관점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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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nghwan A. Lee / 11월 6 2016 5:03 오전

      안녕하세요. 좋은 의견을 나눠주서셔 감사합니다. 그쪽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공유해 주셔서 감사해요.

      먼곳에서 공부를 하시느냐 고생이 많으십니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으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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