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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2016 / Sanghwan A. Lee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서신 5.10

원문: πείθονται τοῖς ὡρισμένοις νόμοις, καὶ τοῖς ἰδίοις βίοις νικῶσι τοὺς νόμους.

문맥적 번역: 그리스도인들은 주어진 나라의 법에 순종하지만, 그들의 삶은 그 법을 초월합니다.

주해: “초월”이라고 번역된 νικάω는 어떤 일에 ‘탁월하다, ’ ‘앞지르다, ’ ‘능가하다’는 의미로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잘하는 일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도덕성을 의미하는 아레테 (ἀρετῇ)와 함께 엮어져 고대 문서에 드물게 나타나는데 이럴 경우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탁월한 도덕성을 의미한다.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서신 5.10의 경우가 의미상 그렇다. 서신서에는 초대 교회를 구성하던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묘사하는 내용이 여럿 등장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나라의 법이 요구하는 기준치보다 훨씬 더 탁월한 도덕적 기준치로 삶을 살아낸 그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라의 법이 요구하는 기준치보다 훨씬 더 탁월한 도덕성”은 어떤 도덕성일까? 하나님의 도덕성이다. 모든 도덕성의 근원지요 발출지인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 바로 그것을 기준으로 삼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초대교회 성도들은 몸부림 쳤던 것이다.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코이네 헬라어에 등장하는 νικάω의 쓰임새를 조금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단어는 (1) 로마의 탁월한 황제들을 묘사하는 형용구로 주로 사용됐고, (2) ‘법적소송에서 이기다’는 법정 용어로 쓰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높은 관직에 있었던 수신자, 디오그네투스는 위에 언급된 두 가지 용례를 서신서 5.10와 연결하여 해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1) 로마의 황제들 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신 만유의 황제이신 예수님의 도덕성을 기준으로 삼는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이요, 또한 (2) 나라의 법이 요구하는 도덕적 준거들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법으로 나라의 도덕법들이 제기할 수 있는 가능한 소송들을 당당하게 통과해 내는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식하지는 않았을까?

적용: 당연한 것을 해도 칭찬받는 시대가 21세기다. 그만큼 도덕성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요구하는 도덕성은 세상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들을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준거들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세상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초월하는 삶을 살아냄으로 예수님의 도덕성을 증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현재 내 삶이 예수님의 도덕성을 반사하는가? 주여, 시컴한 제 양심을 깨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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