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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2016 / Sanghwan A. Lee

Wisdom Listens, Knowledge Speaks

신학과 더불어 오랜 시간을 보내다보니 몇 가지 생각의 변화가 생긴다. 그 중에 하나는 예전에 중요하지 않게 보였던 논증들이 이제는 중요하게 생각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뭘까? 예전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무식했기 때문에 중요한 논증이 중요하지 않게 보였던 것이다.

알빈 플랜팅가의 제자였던 더글라스 블런트 교수님의 수업을 듣다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블런트 왈, “철학 학부생들은 존재론적 논증을 가장 하찮은 신존재 논증으로 여겨 무시합니다. 그러나 철학 석사생들은 존재론적 논증을 어느정도 높이 삽니다. 그러나 철학 박사생들은 존재론적 논증을 가장 탁월한 논증으로 생각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학부를 거처 석사를 지나 박사 과정까지 이르면서 비판적 사고 능력이 점점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렇다. 무식하면 좋은 논증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하찮게 여길 경우가 높다. 그러나 지혜와 지식이 점점 자람에 따라 논증의 깊이가 이해되기 시작하여 자신의 태도를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즉, 지금 내가 거들떠 보지도 않는 하찮은 논증들이 있다면 내가 무식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거울일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칼비니스트들은 정말 “극단적인 교리주의자”들인가? 알미니안들은 항상 “무식한 논증들”만 만드는가? 몰리니스트들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박쥐”들인가? 세대주의자들은 참으로 “극단적 종말론자”들인가? 언약 신학자들은 “성경을 볼 줄 모르는 바보”들인가? 톰 라이트는 지옥에서 보낸 “개혁 신학을 무너뜨리는 악마”인가? 더글라스 무는 “꽉 막힌 보수주의자”인가?

안타깝게도 이렇게 주장하는 자들의 글을 읽어보면 상대방 진영의 논리를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한채 무작정 비판부터 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전형적인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인 셈이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책읽기를 귀찮아 하는 자들이 비전문적인 웹사이트에 포스팅된 이런 자들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들의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군중심리들은 허수아비 공격을 마녀 사냥으로 둔갑시켜 버린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영국에 다음과 같은 속담이 있다: Wisdom Listens, Knowledge Speaks. 지혜는 듣고, 지식은 말한다는 의미이다. 지혜와 엮어진 들음이 먼저 나오고 지식과 엮어진 말하기가 다음에 나온다는 부분에 주목하자. 말하기 전에 먼저 들으라는 것이다. 먼저 들은 후에 말하라는 것이다. 왜? 바르게 들어야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얻고, 지혜를 얻어야 바르게 말할 수 있는 지식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자세로 논증에 임한다면 이곳 저곳에 우후죽순으로 올라오는 쓰레기 논증들의 90%는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Wisdom Listens, Knowledge Speaks.
참으로 나와 너에게 경종을 울리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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