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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2016 / Sanghwan A. Lee

예수님을 낚는 리더

Καὶ εὐθὺς ἔτι αὐτοῦ λαλοῦντος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시는 중에
παραγίνεται Ἰούδας εἷς τῶν δώδεκα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다
καὶ μετʼ αὐτοῦ ὄχλος μετὰ μαχαιρῶν καὶ ξύλων 검과 몽치를 갖고 있는 무리들과 함께 (막 14:43)
의역: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열두 제자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검과 몽치를 들고 있는 무리들을 이끌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다.

막 14:43에는 특이한 문법 구조가 나타난다. (1) 문장의 주어가 둘(Ἰούδας, ὄχλος)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받는 동사가 단수형(παραγίνεται)이고, (2) 첫번째 주어(Ἰούδας)와 두번째 주어(ὄχλος)가 술부를 사이에 둔채 멀리 떨어져 등장한다. 이럴경우 첫 번째 주어가 두 번째 주어를 이끌거나 대표하는 동사의 주체로 해석된다. 즉, 본문은 가룟 유다를 검과 몽치를 들고 예수님을 잡으러 온 자들을 대표하는 악자로 클로즈업 하고 있는 셈이다. (3) 게다가 문장의 서두에 예수님을 주어로 받는 독립속격 구조(αὐτοῦ λαλοῦντος)가 나타나고 있어 말씀 중이신 예수님의 신적 사역을 방해하는 악한 리더로 가룟 유다가 부각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본문이 (1), (2), (3)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자명하다. 무리를 이끌고 예수님을 잡으러 갔던 주동자가 가룟 유다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을 낚는 리더로 부름받는 자가 세상의 사리사욕에 이끌려 예수님을 낚는 리더로 변질됐다니!

리더.jpg

예부터 무리를 이끌고 예수님께 향했던 리더들은 두 종류다. 선한 목적으로 예수님을 향해 무리를 이끄는 리더와 악한 목적으로 이끄는 리더이다. 비록 양쪽 다 무리를 이끌고 예수님을 향해 간다는 현상은 같지만 그 이유와 목적은 전혀 다르다. 한쪽은 예수님께 잡히기 위해서 가지만 다른 쪽은 예수님을 잡으러 간다. 그러므로 무리를 이끌고 예수님을 향해 가고 있는 리더들은 자신이 리더질을 하는 이유와 목적을 매일 검증함으로 자신의 소명을 재차 확인하고 삶을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순수한 목적으로 리더질을 시작한 자들이 불온하게 변화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특히 목사들과 성경 교사들은 이 부분에 민감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이끄는 무리들은 예수님께 향하고 있다. 심판하실 그분을 향해 간다는 현상 만큼은 다른 리더들의 사역과 동일하다. 그렇다면 무슨 목적으로 무리를 이끌고 있는가? 나를 내려놓고 예수님께 잡히기 위함인가 혹은 나를 높이기 위해 그분을 잡기 위함인가?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늘 던져봄으로 자신이 부름받은 이유와 목적을 쉬지않고 마름질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불꽃과 같은 눈으로 무리를 이끌고 있는 리더들을 주목하시며 그들의 행동에 책임을 물으실 준비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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