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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2016 / Sanghwan A. Lee

주(主)께 띄우는 종(從)의 편지

그레코-로만 시대의 주종관계(主從關係)는 대개 권력, 지배, 다스림, 명령, 복종 등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둘 사이가 꼭 이런 식으로만 엮어졌던 것은 아닌것 같다. 사랑과 우정의 관계로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가뭄에 콩나듯 보이기 때문이다.

기원 후 2 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에센 파피러스 17에 담겨 있는 “여종이 주인에게 보낸 편지”가 좋은 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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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주인을 매일 볼 수 없어 가슴 아픈 여종이 주인이 있는 곳으로 날아갈 수 만 있다면 그리하겠다는 애절한 내용이다. 아래는 편지의 한 부분을 발췌한 내용이다.

주인님을 매일 볼 수 없어 죽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늘을 날 수 만 있다면 주인 님께 속히 가 우리의 존경심을 드리기 원합니다. [주인님이 보고싶어] 무척 괴롭습니다.

여종과 주인의 관계는 여전히 위계의 질서 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그 질서는 사랑과 은혜라는 연료로 운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성도와 예수님의 관계처럼 말이다.

그렇다. 성도는 예수님의 종이고, 예수님께서는 성도의 주인이시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권력, 지배, 다스림, 명령, 복종으로 만 묘사되지 않고 사랑과 은혜, 자비와 긍휼, 존경과 경외, 자발적 헌신과 기쁨으로 까지 묘사된다. 종으로 불릴 가치도 없는 우리들을 죽기까지 사랑하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주(主) 예수님과 그분의 사랑과 은혜에 흠뻑 젖고 완전히 녹아버린 종(從)된 성도들이 주종관계(主從關係)로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 얼마나 감격적인 이야기인가!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분의 끝없는 사랑.
글로 다 쓸 수 없는 그 분의 무한한 은혜.

이것이 무익하고 가치없는 벌레같은 우리가 예수님을 온 마음으로 예배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닐까? “예수님, 사랑합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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