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s
Skip to content
10/13/2015 / Sanghwan A. Lee

유다서를 통해 알아보는 이단(異端) 대처 방법

위선자보스_f

서론

교회가 왕성하면 왕성해 질수록, 그와 더불어 왕성해 지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발악하는 사단의 역사입니다.  1세기 초대교회의 역사부터 21세기 오늘의 역사까지 흘러온 2,000년의 교회역사를 보십시오. 교회가 조금만 부흥하면 사단의 공격이 들어왔고,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패턴을 알지 못하고 기습을 받아 아무런 대책없이 넘어진 사례를 수 없이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을 경험할때마다, 마귀의 역사도 점점더 왕성해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있습니다.

이러한 마귀의 공격을 막아낼 길은 없습니까?  이러한 마귀의 기습에 대비할 방법은 없습니까?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게 마귀의 궤계를 꿰뚫어보고 싸워 이길 수 있는 비밀군사문서를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베드로 후서유다서입니다.  이 둘을 구분하자면 베드로 후서는 ‘이단이 곧 올것이니 조심해라!’는 경고의 서신이고, 유다서는 ‘베드로가 말하던 그 이단이 왔으니 전투하라’는 서신입니다.  이러한 배경지식을 알고 유다서를 읽어보십시오.  완벽한 전투서신입니다.  교회를 부수기 위한 마귀의 궤궤와 공격 패턴이 적나라하게 들어나 있고, 거기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까지도 나와있기 때문입니다.  바둑의 세계에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이라는 말이 있고, 손자 병법에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은 유다서를 통하여 마귀의 기습으로부터 교회를 지키고 보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유다서에 기록되어있는 전투적 계시를 총괄적으로 나누면서 (1) 원수의 공격패턴(2) 그것을 방지하는 방법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이 글을 읽는 성도들은 유다서를 통하여 풀어지는 계시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핏값으로 세워지는 교회를 지키고 보호하는 영적 군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본론

1. 원수의 공격패턴: 우선 원수의 공격 패턴부터 보겠습니다.  유다서에 따르면 이단의 공격은 내부적 분열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순차적 패턴을 따르고 있습니다: (ㄱ) 가만히 들어옴, (ㄴ) 기탄없이 지냄, (ㄷ) 원망하며 불만을 토함, (ㄹ) 편가름.  이단들은 이 네 가지의 순차적 패턴을 따르면서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하나씩 짚어봅시다.

(ㄱ) 가만히 들어옴 (παρεισέδυσαν): 다함께 4절을 볼까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하나님의 교회안에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들어온”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몰래 움직이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슬그머니 들어오다’라는 뜻으로써, 유대사회에서 ‘~을 훔치기 위해 몰래 들어오다’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즉 원수 마귀는 이단적 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 몇을 하나님의 교회에 은근슬쩍 집어 넣어 사람들의 심령을 노략질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원수가 주인이 자고 있는 사이에 주인의 밭에 몰래 가라지를 덧뿌려 넣어, 그 밭을 망하게 하는 것처럼, 가라지와 같은 자들을 교회에다가 몰래 뿌려 넣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가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하는 첫 번째 공작입니다.  새로 온 신자들을 교리의 검증없이 성도로 받거나 직책을 주는 것은 안되겠지요?

(ㄴ) 기탄없이 지냄 (ἀφόβως): 두 번째 순서는 12절에 있습니다.

저희는 너희와 기탄없이 먹으나…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이단들은 일반 교인들과 함께 “기탄없이” 음식도 먹고 물도 마시며 교제합니다.  “기탄이 없다”고 번역된 헬라어는 ‘두려움이 없다’는 뜻으로 우리말로 쉽게 번역하자면, ‘낯짝이 두껍다,’ ‘뻔뻔하다’는 뜻입니다.  이단들은 두꺼운 낯짝으로 뻔뻔하게 성도들과 교제하면서 그들의 경계심을 낮추며 친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의 신임을 두텁게 얻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아!  이사람 괜찮은 사람이구나!  이 사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구나!  이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말을 들을 때 까지요.  스파이 작전이지요?

(ㄷ) 원망하며 불만을 토함 (γογγυσταί, μεμψίμοιροι): 그 다음 행동은 16절입니다.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라…

이제부터 본격적인 행동에 들어갑니다.  어느 정도 신임을 얻어 교회안에 깊게 침투한 이단들은 원망스러운 말투로 교회에 대한 불만을 토하며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이란 기독교의 정통 진리를 말합니다.  즉 정통 교회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교리들을 비판, 불평, 원망하며 훼방한다는 거에요.  그게 그들의 목적이었으니까요!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본문에 “훼방”이라고 번역된 헬라어가 현재형 능동태 직설법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단 세력들의 비판적인 훼방은 집요하고 끈질기다는 것을 뜻합니다.  한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는 우는 사자처럼, 틈만 나면 만나는 사람들에게 교회를 비방하고 원망하고 불만을 토하며 끈질기게 훼방하는 것이지요.

(ㄹ) 편을 가른 후 분열시킴 (ἀποδιορίζοντες): 그 다음은 19절입니다.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분열”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하나를 선을 그어 나누다,’ ‘하나를 찢어 버리다’는 뜻입니다.  몇몇의 사람들에게 불만을 토로함으로써 당을 지은 이들은 드디어 한 공동체를 나누어 찢는 것입니다.  제가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을 소개하겠습니다.  교회가 한참 부흥하고 있을 때에 한 자매가 교회를 찾았습니다.  이 자매는 성경에 검증되지 못하는 은사를 체험한 사람으로서 스스로가 일반 교회의 교인들보다 훨씬 더 큰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자매는 하나님께 받은 그 이단적 은혜를 기성교회의 성도들에게 나눈다는 사명을 가지고 기성 교회에 조용히 침투하여 들어왔던 것입니다.  자매는 열심히 예배에 참여하고 사람들과 기탄없이 친교함으로 신임을 얻기 시작했고, 어느정도 세력이 확장되자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그 교회의 말씀과 제도에 대해서 비판하기 시작하며 교회의 흐름을 훼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교회는 왜 이러한 성경공부가 없냐?”  “이 교회는 왜 은사 집회를 안하냐?”  “이 교회는 왜 중보기도단이 없냐?”  “이 교회는 왜 이렇게 건조하냐?”  “이 교회는 왜 이렇게 은혜가 없냐?”  그런 후 그녀가 가지고 있는 이단적 신앙으로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나와 함께 어떤 집회에 가자.  거기에 가면 은혜가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은혜받았는데 너도 한 번 읽어봐라.  지금 네가 듣는 말씀과 차원이 다르다.”  이 자매는 자신의 신앙이 그 교회의 목사가 가지고 있는 신앙노선에 반대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장을 적극적으로, 끈질기게 피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매의 주장은 성경을 모르고, 교리에 약하며, 신앙에 탄탄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심겨지게 되었고, 결국 자매와 함께 교회에 반기를 들게 되었습니다.  가슴아픈 일이지만 교회는 반으로 깨어지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마귀가 사용하는 네 가지 패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네 가지의 패턴을 숙지해야 합니다.  교회가 성장에만 관심을 갖고, 이러한 사태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일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괜찮겠지, 우리 교회는 끄떡 없겠지, 우리 교회는 예수님 중심이니까 괜찮겠지…”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는 오만이고 교만이고 미련한 것입니다.  본질을 가지고 있는 교회는 사단의 노리는 최고의 타겟이 됩니다.  우리 교회가 괜찮으면 괜찮은 만큼 더 근신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튼튼하면 튼튼한 만큼 더 조심하고 조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중심이면 중심인 만큼 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섰다 하면 넘어지고 일어났다 하면 자빠진다”는 말처럼, 우리는 다가올 마귀의 공격에 촉수를 세우고 전투에 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대비해야 합니까?  그 방법이 있습니까?

2. 원수의 공격을 방어하기:  네!  감사하게도 있습니다.  유다는 그 방법을 5가지의 명령어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ㄱ) 기억할 것, (ㄴ) 지킬 것, (ㄷ) 긍휼히 여길 것, (ㄹ) 끌어낼 것, (ㅁ) 미워하며 두려워 할 것.

(ㄱ) 기억할 것 (μνήσθητε): 17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교회를 수호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첫 번째 일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기억하지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이 무엇입니까?  이 문장을 헬라어(τῶν ῥημάτων τῶν προειρημένων ὑπὸ τῶν ἀποστόλων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로 보면 기원적 소유격으로 되어 있어,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도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들을 의미하게 됩니다.  즉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주신 당신의 말씀을 기억하라는 것이지요.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지만 이단들과 대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교회에 침투해온 이단 세력들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얼토당토않은 교리들을 가지고 마수를 펼칠때, 어떻게 그들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말씀이 있어야지만 그것들을 분별할 수 있지 않겠어요?  때문에 우리가 이단을 대처하기 위하여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후 기억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사랑하십시오.  말씀을 펴십시오.  말씀을 읽으십시오.  말씀을 숙지하십시오.  이 전쟁은 진리의 전쟁으로써 말씀 전쟁입니다!

(ㄴ) 지킬 것 (τηρήσατε): 20~21절을 볼까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자신을 지키라

두 번째 명령어는 “지키라”입니다.  “지키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신중하게 관찰하다,’ ‘지금의 상태로부터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하다’라는 뜻입니다.  내가 이단의 무리들이 던지는 그릇된 교리에 의해 변질되지 않도록 내 자신을 신중히 관찰하라는 것이지요.  내 자신을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보면서 매일처럼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여기에서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신을 신중히 관찰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는지도 계시합니다.  그 방법은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 자신을 세우고,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생겨난 믿음위에 우리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성령님 안에서 무시로 기도하면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에 지혜가 있습니다.  말씀과 믿음은 기도와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믿음만 가지고도 안됩니다.  반드시 말씀과 믿음에 기도를 더해야 합니다.  기도는 말씀을 통하여 받은 지각을 믿음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힘을 공급받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리의 말씀위에서 믿음을 갖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고 있는 말씀을 통하여 싸우시는 것입니다.

(ㄷ) 긍휼히 여길 것 (ἐλεᾶτε): 세번째 명령어는 22절에 있는 “긍휼히 여기라”입니다.  22절이 말하지요?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긍휼이 여기다”고 번역된 헬라어는 ‘상대방의 심정을 체휼하며 불쌍히 여기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교회에 침투해온 이단의 세력에 미혹받는 연약한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라는 거에요.  그들에게 “너희는 왜 그리 믿음이 없냐?  너희는 왜 그리 무식하냐?”말하지 말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교회에는 믿음이 큰자와 작은 자가 있고, 믿음이 굳게 선 자와 아직 연약한 자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둘 다 하나님의 양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단의 유혹을 받아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겨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들을 향해 오래참고 기다려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인내하면서, 그들이 미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긍휼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이렇게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교회를 지키는 것과 이단에게 미혹되는 성도를 긍휼이 여기는 것과 무슨 상관인가?

상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란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지킨다는 것은 곧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들을 지킨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한 성도를 지키는 것이 곧 교회를 지키는 첫 걸음이라는 것이지요.  이해가 되시지요?  이것이 세 번째 방법입니다.

(ㄹ) 끌어내어 구원할 것 (σῴζετε ἐκ πυρὸς ἁρπάζοντες): 네번째 명령어는 23절 초반부에 있는 “끌어내어 구원하라”입니다.  23절이지요?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여기에 “어떤 자”라고 번역된 단어는 이단의 세력에 심각하게 넘어간 자들을 지칭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황급하고 시급하게 끌어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끌어내라”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와락 움켜잡고 채내다’는 뜻입니다.  마치 절벽으로 떨어지는 양을 살리기 위하여 그 양을 와락 붙잡고 채내는 것처럼, 우리의 생명을 걸고서라도 그들을 빼 내라는 거에요.  그렇습니다.  이단에게 흔들리는 자들을 위해서는 긍휼히 여기며 기도해야 하지만, 이단에게 넘어가는 자들은 반드시 잡아 채내야 합니다.  무조건 잡아 채야 합니다.  뜨거운 기도와 말씀의 선포, 그리고 정확한 성경 공부를 통해 그들의 영혼을 잡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지키는 네 번째 방법입니다.

(ㅁ)  미워하며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길 것 (ἐλεᾶτε ἐν φόβῳ, μισοῦντες καὶ τὸν ἀπὸ τῆς σαρκὸς ἐσπιλωμένον χιτῶνα): 마지막으로 다섯번째 명령어는 23절 후반부에 있는 “미워하며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입니다.  23절이지요?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여기에 “어떤 자”라고 번역된 단어는 이단에게 완전히 넘어가서 이단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이미 이단이 되어버린 자들로써 자신들만이 아니라 남들까지도 멸망에 이르게 하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향해 미워하고,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중요하니 깊게 주해하겠습니다.

우선 “더럽힌 옷까지 미워하라”는 표현은 그 어떠한 접촉도 하지 말라는 초대 교회의 관용어구(a proverbial phrase) 입니다.  이 표현의 유래는 슥 3:3~4에 있습니다.  슥 3:3~4를 보면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 여호수아가 등장합니다.  더러운 것과 공존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에게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라 명하신 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중요한 사실은 “제거”라고 번역된 히브리어(הֶעֱבַרְתִּי)가 ‘몸에 닿지 않기 위해서 피해가다,’ ‘돌아가다’는 뜻이라는 겁니다.  바로 이 표현이 유다가 유다서에 사용하고 있는 단어의 유래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교회에 구성원으로 받아들인 이단과 몸에 닿지 않는 교제가 가능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몸에 닿지 않는 교제를 하라는 말은 교회에서 파문시키라는 의미입니다.  초대 교회 교부들은 이 표현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지라 어떠한 이단도 교회에 받아들이지 않았고, 나중에 적발되면 가차없이 내 쫓았습니다.  즉 교회 안에 들어온 이단과는 그 어떠한 접촉도 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을 파문시켜 버리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5장 13절에도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명심합시다.  썩은 사과 하나가 궤짝에 있으면, 궤짝 전체가 썩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실을 막기 위하여 이단들을 가차없이 자르라고 명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나오는 쫓겨난 이단을 향하여 “두려움으로 긍휼이 여기라”는 표현은 무슨 뜻일까요?  문장을 잘 봅시다.  그저 긍휼이 여기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으로 긍휼이 여기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앞으로 그들이 받게 될지도 모르는 지옥의 형벌을 생각하면서 불쌍히 여기라는 것이지요.  그들을 용납하라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긍휼히 여기라는 말은 교회에서 파문 시키되 그들이 예수님께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내보낸 그들을 위해서 계속 기도하라는 말이지요?

 

결론

말씀을 정리합니다.  교회를 지키기 위한 유다의 대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깨달아진 하나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열심히 예배에 참여하고, 말씀을 읽고, 성경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말씀과 더불어 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우리는 교회를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말씀에 바탕을 둔 믿음위에서 무시로 기도하며 나를 지켜야 합니다.  말씀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믿음만 가지고도 안됩니다.  반드시 기도가 동행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 마귀의 사역자들로부터 교회를 보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이단의 세력에 흔들리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혹시라도 우리 교회에 이러한 사람들이 있거나 생긴다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그들을 따듯하게 대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넷째, 이단의 세력에 많이 넘어간 사람들은 그 세력으로부터 끌어내야 합니다.  우리의 힘과 노력을 다해 그들을 꺼내 내야 합니다.  내가 상처를 받고, 내가 위험에 처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꺼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 째, 안타깝고 가슴아픈 이야기지만, 이단에 완전히 넘어간 사람들은 교회에서 파문시킬 준비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고 두려워하고 또한 긍휼히 여기기도 해야 합니다.  괜히 아쉬워하면 더 큰 일이 번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파문 시킬 때 개나 돼지처럼 취급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파문시키라는 말이지요.  그 후에는 그들이 주님께 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가 우리를 통하여 든든히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Advertisements

댓글 2개

댓글 남기기
  1. soolep84 / 11월 3 2015 10:46 오후

    너무 오랜만에 왔는데, 목사님의 좋은 글이 있어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좋을 글 남겨 주셔서 또한 감사합니다.
    이 글을 제가 좀 스크렙 해가도 될까요?~~~ 괜찮으시다면요~~ ㅎㅎㅎㅎㅎ

    잘 지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 항상 건강하세요~~ ^^

    좋아요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