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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2015 / Sanghwan A. Lee

묘비에 새겨진 내 이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산소에 다녀왔다. 그 곳에 내 이름이 새겨진 묘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돌아가신 분의 이름은 묘비 앞에, 그분의 자녀와 손자의 이름은 묘비 뒤에 새겨 넣는 전통 때문이란다. 그래서 시퍼렇게 살아있는 내 이름이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성함이 있는 묘비 뒤에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묘비 뒤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할지라도 내가 받은 충격은 적지 않았다. 여러개의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내 이름이 새겨진 벌써부터 묘비가 있네? 비록 묘비 뒤에 새겨져 있긴 하지만 언젠가 앞으로 오겠지? 언제 올까? 나는 그 날 어떻게 죽을까? 뭘하다가 죽을까? 그날 나는 누구를 만나고,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까?

누가복음 12장에는 미련한 부자 한 명이 등장한다. 성경은 왜 그를 미련하다고 판단했을까? 여러가지 이유 중에 하나는 내일 찾아올 죽음을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고 호언장담하는 부자를 보라. 그리고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물으시는 하나님을 들으라. 몇 년을 떵떵거리며 호화스럽게 살 것을 계획하던 부자에게 남은 시간은 오직 하루였다. 안타깝게도 부자는 그것을 전혀 모른채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있었다.

자고로 인간은 달력에 생(生)년월일은 기입할 수는 있으나 사(死)년월일을 기입할 수는 없단다. 죽음이란 인간의 힘과 지혜 밖에서 소리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불청객을 맞이할 준비를 전혀 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오늘을 주(主)를 위해 마름질 함으로 내일 올지도 모르는, 혹은 오늘 올지도 모르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게다.

만약 당신이 이 글을 읽어 내려가고 있다면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의미다.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의미는 어딘가에 있는 묘비 뒤에 당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그리고 묘비 뒤에 당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 그 이름은 언젠가 반드시 묘비 앞으로 올 것이라는 의미다. 정말 그렇다. 나는 나를 놀랬켰던 이 당연한 사실이 당신도 놀랠킬 수 있기를 바란다. 혹시, 정말 혹시라도 그랬다면 내가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들을 한 번 곱씹어 보는 것은 어떨까?

내 이름이 새겨진 벌써부터 묘비가 있네? 비록 묘비 뒤에 새겨져 있긴 하지만 언젠가 앞으로 오겠지? 언제 올까? 나는 그 날 어떻게 죽을까? 뭘하다가 죽을까? 그날 나는 누구를 만나고,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까?

예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하루를 살다가 세상을 떠났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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