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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2015 / Sanghwan A. Lee

진리를 위한 논쟁의 자세

기독교 자유 진영에서 제시하는 신학적 주장에만 억측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수 진영에서도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억측을 주장한다는 사실은 실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진화론을 반대하기 위해 창세기를 조사한 어떤 창조론자는 “아담의 정확한 나이를 추정한 결과 23 세라는 결론을 낼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골로새서의 문법적 상이성을 근거로 바울 위조설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사실 골로새서는 바울이 천국에서 쓴 후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라고 반증하는 신학자도 있다. 이런 주장들이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들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나는 창조론을 믿으며, 골로새서의 바울 저자설을 믿는다. 그러나 내 믿음을 피력하기 위해 위와 같은 억지 주장을 내놓지는 않는다. 이런 주장은 생산적으로 토론을 이끌지 못할 뿐 만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 보수 진영을 조롱거리로 만드는 역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장기를 가장 잘 두는 사람은 훈수 두는 사람이라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게임을 관람하기 때문에 비교적 중립적으로 양쪽의 전략을 살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진리를 위해 토론하는 신학도들도 가끔씩 이런 자세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때때로 상대방과 격렬하게 논쟁을 하다보면 이성을 잃고 제정신일 때 결코 만들지 않을 어처구니없는 논증들을 제시할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논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의 논증을 객관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여유를 갖추는 것이 좋다. 그래야지만 자신의 논증을 구축하고 있는 구조물들을 비교적 중립적으로 보게되어 논증의 발출점과 이음새, 그리고 결론으로 이어지는 철골들의 논리적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 다시 시작하는 토론이야말로 생산적인 결론에 착륙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일절 생략하고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에 아담의 나이가 23세 라던가 골로새서가 천국에서 쓰여진 서신이라고 주장한다면 당신은 자신의 믿음을 지킬 수는 있겠지만 상대방의 마음과 생각을 얻는데는 실패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잠시 곁길로 가보자. 특히 “한” 많고, “빨리, 빨리” 라는 표현이 입에 붙은 한국 문화에서 자란 우리들은 더 신중해야 한다. 나는 미국에 와서 한국 신학생들과 미국 신학생들과 논쟁을 한 경험이 적지않게 있다. 둘의 차이점은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내가 제시하는 반증을 이성적으로 곱씹으며 이성적인 답을 내놓려 하는 반면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나의 이성적인 비판을 감정적으로 받아 들여 성질부터 낸다는 것이다. 인신 공격적인 비판을 한 것도 아닌데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 역시도 이런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학교 수업 시간에 발표한 소논문을 학생들이 제시하는 반증으로부터 변호하려 할때마다 성질부터 나고 말부터 빨라지기 때문이다. 여하튼 한국인의 고질적인 성격이 어디 쉽게 고쳐지랴? 그러나 건전한 신학 문화를 우리 땅에 구축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풀어야 할 민족의 숙제라는 것 만은 틀림없다.

이번 여름에 한국에 방문했다가 천안에 있는 빵집에 들린 적이 있다. 그곳에는 내 시선을 사로잡는 문구 하나가 있었다. “느리게 더 느리게”라는 표현이었다. 빵을 급하게 굽지 않고 적당한 온도에 맞춰 천천히 정성스럽게 구워야 질 좋은 빵이 나온다는 주인장의 철학이 묻어있는 문구였다. 진한 감동을 받았다. “빨리 빨리”만 듣고 자란 내가 “느리게 더 느리게”라는 표현을 접했을 때 받은 충격의 정도를 한국인인 당신도 잘 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우리는 자신의 논증을 점검할 때 너무 빨리 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또 상대방이 제시하는 비판을 너무 빨리 해석해 버리는 경향도 있다. 그 결과 토론은 생산적이지 못한 곳에 착륙하고 다시는 이륙하지 못하는 불상사를 당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진리를 위해 토론에 임하는 자들일 수록 마음의 여유를 갖고 양쪽의 논증을 “느리게 더 느리게” 그러나 “느려 터지지는 않게”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할 듯 하다.

글을 맺는다. 어쩌면 자유 진영과 보수 진영 사이에서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는 논쟁 중 대다수는 상대방의 건전한 제안에 무조건 귀를 틀어 막고, 자신의 믿음을 그저 “빨리 빨리” 피력하기 위해 어처구니없는 상상력까지 동원하는 학자아닌 학자들에 의한 산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그러지 말자. 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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