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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2015 / Sanghwan A. Lee

Redeeming Science: A God-Centered Approach

1. Vern Poythress는 안셀름, 조지 바클리, 존 프레임과 이성적 공통 분모(말씀에 의한 사유)를 갖고 있고, 어거스틴, 조나단 에드워드, 라비 자카라야와 신앙적 공통 분모(알기 위한 믿음)를 갖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포이트레스의 책을 읽는 동안 위에 언급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떠오를 정도였다.

2. 윌리암 크레이그와 굳이 비교하자면 크레이그가 이성적인 신앙(Reasonable Faith)을 강조한다면 번 포이트레스는 신앙적인 이성(Religious Reasoning)을 강조한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의미하는 Religious란 넓은 의미의 종교성을 의미하지 않고 말씀을 통해 생겨나는 기독교적 신앙임을 밝혀둔다.)

3. 데이비드 흄이 데카르트와 로크의 방법론을 퓨즈하여 둘의 사유를 각각 해체했듯이, 바울이 율법 주의자들의 논리를 사용하여 그들의 사유를 해체했듯이, 쿤과 포이트레스는 과학의 가설을 신성화 하는 자들의 사유를 사용하여 그들의 관점을 해체하기 시작한다. 결국 신성화된 가설 위에 세워진 모든 가설들은 자동적으로 미끄럼틀로 올라가 단두대를 지난다.

4. 토마스 쿤과 번 포이트레스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은 중요하다. 쿤이 과학이란 우상을 해체했다면 포이트레스는 관점으로부터 자유하다고 착각하는 인간의 교만을 해체한다. 그리고 쿤이 해체한 과학의 우상 앞에서 갈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참된 관점(성경)을 제시하며 나아갈 길과 방향을 보여준다.

5. 번 포이트레스와 메를로 퐁티와의 차이점 또한 중요하다. 퐁티는 무한한 관점의 바다에 압도되어 즉자체 자체를 부인한 반면 포이트레스는 무한한 관점을 인정함과 동시에 즉자체를 영원하신 하나님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유일하신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만 즉자체를 (거의) 굴곡 없이 볼 수 있다고 강조, 강조, 또 강조한다. 만약 “관점에 물든 사람이 성경을 어떻게 즉자체로 해석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성경을 읽다보면 성령님께서 참된 관점을 갖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라는 포이트레스의 답을 들을 수 있다.

6. 무신론자들이 포이트레스의 글을 읽으면서 가장 처음으로 발견할 오류는 순환논증의 오류일 것이다. 그러나 신론과 무신론에 동일하게 필요한 것이 믿음이라는 단순한 사실에 의거해 볼 때, 포이트레스의 글을 순환논증의 오류로 보는 자들의 논증 또한 순환논증의 오류가 된다. 결국 이들의 공격은 불가피하게 우로보로스의 오류로 귀결되어 비판자를 자멸시킨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포이트레스는 자신의 사유에 조심스레 고삐를 매고 거침없이 질주한다.

7. 하버드에서 수학 박사, 웨스트 민스터에서 목회학 석사와 변증학 석사, 캠브리지에서 신약 석사, 스텔렌보스에서 신약 박사를 딴 그의 화려한 경력과는 대조되게 그의 글은 간단, 간결, 명료, 명쾌, 상쾌, 통쾌, 그리고 아주 은혜스럽기까지 하다.

8. 토마스 쿤의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을 읽은 후 번 포이트레스의 Redeeming Science를 읽으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추신: 정말 제목에 충실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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