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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7/2015 / Sanghwan A. Lee

Short, Simple, & Sweet

쉬운 것을 어렵게 말하는 것은 교만이며, 어려운 것을 쉽게 말하는 것은 겸손이다. 말은 하기 쉽게 하지 말고 알아 듣기 쉽게 해야 한다. 말이란 내가 무슨 얘기를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들었느냐가 중요하다.

김달국 작가의 말이다. 조금 전 인터넷에 돌고 있는 설교문 하나를 읽었다. 짧은 글이었지만 전문 용어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 있었고, 원어가 설명도 없이 무분별하게 사용된 경우도 있었다. 성경 원어에 어느 정도 익숙한 내가 읽을 때도 이러니 원어에 조예가 없는 성도들이 읽을 때는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설교가 신학생들을 겨냥한 것이라면 말이 다르다. 그러나 설교의 내용을 보니 일반 성도들을 위한 것이다. 성도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쓴 설교인지 자신의 지식을 나타내려고 쓴 설교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다.

내가 부목사였을 때 담임 목사님께서 나의 설교 원고를 매주 검토하셨다. 목사님께서는 어려운 문장들과 원어가 많이 사용된 부분들이 나타나면 그 즉시 빨간색 볼펜으로 줄을 그으시며 말씀하셨다. “누구를 위한 설교야? 엘파소에 있는 성도들이 이 설교를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다시 써.” 나는 다시 원고를 준비해야만 했다. 그렇게 3번, 4번, 5번 퇴짜를 맞다보면 기분이 상한다. 자존심이 구겨진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너같이 미련한 자에게 설교를 하셨다면 이런 식으로 하셨을 것같아?”라는 말씀에 그분의 의중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2년이 넘도록 설교 검토를 받으면서 내 설교는 성도들의 눈높이와 점점 가까워졌다. 물론 그래도 어렵다고 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 설교를 검토하셨던 담임 목사님께서 무식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분은 기계공학 박사이셨고, 신학 석사이셨다. 게다가 책 두 권의 저자이셨고, 대학교 공학과 교수셨으며, 회중의 90%가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교회의 담임 목사이기도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운 설교를 고집하셨던 이유는 당신께서 맡으셨던 양무리를 진심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모든 죄인들을 위한 설교자였던 것이다.

사랑하는 목사님과 마지막으로 깊이 이야기를 나눴을 때가 기억난다. 동트는 아침, 우리는 엘파소의 트랜스 마운틴에 햇빛이 비취는 광경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목사님께서는 “나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동안 네게 너무 혹독하게 대한거 미안하다.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말씀하시면서 한 가지의 언명을 내리셨다. “세 가지의 S를 기억해라. 21세기의 성도를 위한 설교는 Short, Simple, & Sweet할 수록 좋다.”

인터넷에 돌고 있는 설교 한 편을 읽고 한 동안 잊고 있었던 목사님과의 대화가 기억났다. 신학교에서 시나브로 구겨지고 있던 나를 다시 다림질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Short, Simple, & Sweet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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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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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ohn Kim / 3월 18 2015 8:12 오전

    정말 와닿는 글이네요… 아… Short, Simple & Sweet. 글을 읽으며 정말 공감합니다. 좋은 나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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