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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0/2015 / Sanghwan A. Lee

열역학 제 2법칙과 차가운 신앙

열역학 제 2법칙에 따르면 차가운 물은 저절로 뜨거워 질 수 없다. 에너지는 흐르는 방향이 있고, 그 방향은 엔트로피가 보다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차가운 물은 저절로 뜨거워 지지 않는다. 뜨거워 질 수 있는 유일한 경우가 있다면 외부로부터 열을 공급 받을 때이다. 열역학 제 2법칙이 확증되기 전, 고전물리학자 볼츠만은 위와 같은 주장은 확률적으로만 희박할 뿐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더 이상 그의 주장을 지지하는 물리학자는 아무도 없다. 열역학 제 2법칙은 모든 물리적 분야에서 발견되고 확증되기 때문에 현대 물리학에서는 더 이상의 검증이 필요 없는 고정적 법칙이 된 것이다. 차가운 물이 저절로 뜨거워 지는 현상을 목격할 수 없듯이 말이다.

나는 신앙에도 열역학 제 2법칙이 제한적으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외부로부터 열을 공급받지 않는 한 신앙은 저절로 뜨거워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무질서도가 높은 세상으로부터 열을 빼앗길 뿐이다. 한 때는 뜨거웠던 내 신앙이 서릿발처럼 차갑게 식었던 경험이 있는가? 분명히 집을 통째로 태울만한 큰 불이 가슴 속에 있었는데 이제는 얼음 빙판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다. 당신의 대답이 나와 같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세상으로부터 열을 빼앗긴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유혹들 앞에서 넘어질 때 조금씩 조금씩 열을 빼앗긴다. 차갑게 식어버린 내 자신을 돌아보며 다시 뜨거워 지기를 소망하여 볼츠만의 주장대로 저절로 뜨거워 지기를 기다려 보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열역학 제 2법칙에 따라 외부로부터 열을 공급받지 않는 이상 차가운 물은 저절로 뜨거워 지지 않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한다. 예전에는 한 번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평생 그것이 지속될 줄 알았다. 한 번 연료를 넣으면 다시는 넣을 필요가 없다는 이론 속의 영구기관처럼 말이다. 그래서 부흥회에서 뜨거워졌다가 잠시 후 차가워 진 사람들을 보면 가짜라고 판단했다. 기도 산에서 뜨거워졌다가 산을 내려온 후 차가워진 사람들을 보면 가짜라고 정죄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신앙의 뜨거움은 영구기관처럼 작동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명히 부흥회에서 뜨거워 졌을 것이다. 산 기도를 하며 뜨거워 졌을 것이다. 그러나 무질서한 세상과 선한 싸움을 하던 중 유혹에 이끌려 열을 빼앗긴 것이다.

어떻게 해야 다시 뜨거워 질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한 가지 방법이 떠오른다. 열역학 제 2법칙에 따라 나보다 뜨거운 물체에 나를 노출 시키는 것이다. 그럴 경우 뜨거운 물체에 있는 열은 나에게 흐르게 되고, 나는 다시 뜨거워 질 수 있다. 여기에서 뜨거운 물체는 나보다 신앙이 좋은 친구일 수도 있고, 믿음의 선진들이 남긴 신학과 신앙 서적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일 뿐이다. 이것들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이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무한한 근원을 찾아야 하는데, 그분이 바로 당신을 “빛”이요 “불”이라 소개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에 나를 노출시킴으로 하나님의 열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혹시 말씀을 읽다가 가슴이 뜨거워진 적이 있는가? 기도를 하다가 중심이 뜨거워진 적이 있는가? 하나님의 열이 말씀과 기도를 통해 내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다시 일어나 선한 싸움에 임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내가 깨닫는 것이 하나 있다. 성도는 중생할 때 슈퍼맨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대신 영적인 열역학 제 2법칙의 지배를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열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만 하는 구조로 거듭난다. 구원의 목적 중 하나는 하나님과 인간의 긴밀하고 각별한 관계의 회복이기 때문이리라. 나는 이것을 완전함(Nature of Salvation: Perseverance of the Saints) 속의 불완전함(Nature of Being: God as the only Perfect Being)이라고 본다.

예전에 핸드폰 충전기를 놓고 장거리 여행을 갔던 적이 있다. 전화기는 몇 시간 후 꺼졌고, 참을 수 없는 답답함과 불편함이 몰려왔다. 그때부터 어디를 가든지 충전기를 챙기는 버릇이 생겼다. 심지어 전화기보다 충전기를 먼저 챙기기도 한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집과 직장과 차 안에 충전기가 별도로 구비되어 있다고 하니 충전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충전이 다 떨어진 핸드폰은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니 말이다.

battery_charge_section

글을 맺으며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우리가 핸드폰 충전기를 챙기는 것만큼 말씀과 기도를 챙긴다면 어떨까? 그리고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아두는 시간의 반의 반만큼 하나님에게 내 자신을 노출 시킨다면 어떨까? 지금보다는 훨씬 덜 식지 않을까?

페이스 북: https://www.facebook.com/sanghwan.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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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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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hinnam Lee / 5월 12 2015 5:24 오후

    아 진정으로 아멘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말씀과 기도를 더욱 더 챙기는 자녀가 되어야겠습니다!

    Liked by 1명

  2. andy yang / 11월 3 2015 9:41 오후

    세번째 단락에서 깊게 공감하고 반성하게 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Liked by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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