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s
컨텐츠로 건너뛰기
02/10/2015 / Sanghwan A. Lee

무흠(無欠)하신 예수 그리스도

crucified유대인들의 전통은 율법을 613개로 구분한다.[1] 613개의 율법은 두 종류로 나누어 지는데 긍정적 율법(עשה מצות)과 부정적 율법(מצות לא תעשה)이다.[2] 부정적 율법은 “~을 하지 말라”는 구조로 되어있고 총 365개가 있다. 반면에 긍정적 율법은 “~을 하라”는 구조로 되어있고 총 248개가 있다. 특이한 점은 365는 일 년의 날 수와 같고, 248는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사람 뼈의 개수와 동일한 수라는 것이다.[3] 랍비 심라이는 이런 사실을 두 종류의 율법과 연결하여 이렇게 표현했다. “613개의 율법이 모세에게 계시되었다. 365개의 부정적 율법은 1년을 구성하는 날과 수가 같고, 248개의 긍정적 율법은 사람을 구성하는 뼈의 개수와 같다.[4] ” 안타까운 사실은 그 당시의 극단적 율법주의자들은 부정적 율법이 365개라는 사실에 기인하여 1 년 365일 동안 죄를 전혀 짓지 말아야 하며, 긍정적 율법이 248개라는 사실에 기인하여 248개의 모든 뼛속으로부터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5]

물론 이것은 불가능하다. 그 누구도 365일은 고사하고 1일도 죄를 안 짓고 살 수 없다. 게다가 248개의 뼛속은 커녕 1개의 뼛속으로부터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도 없다.[6] 율법의 꽃이라고 불리는 십계명을 보라. 십계명 중 단 하나라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던가? 없다. 미워해도 살인이고 생각만 해도 간음인데 어찌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율법의 특성상 하나만 어겨도 모든 것을 어기는 것인데 어찌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고로 율법을 다 지킴으로 자신의 무흠(無欠)함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Michael P. Green이 예로 드는 배와 닻의 비유는 탁월하다.[7]

한 척의 배가 닻을 내리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배와 닻 사이는 613개의 고리 사슬로 연결되어 있고, 그 사슬들은 배가 바닷물에 의해 쓸려나가지 않도록 고정시키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고리 사슬 하나가 깨졌다. 닻이 본연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다. 아무리 612개의 고리 사슬이 튼튼하게 연결되어 있다 할지라도 1개의 사슬이 부서지는 순간 배는 바다 물에 쓸려 나가게 된다. 이것이 율법의 총체적 특성이다. 야고보서 2:10의 말씀처럼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고, 설상가상으로 율법에는 죄인이 지킬 수 없는 강령들로 가득하다.

이런 사실을 근거로 신약 학자 Darrell L. Bock은 타락한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고 주장하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셨다는 사실은 그분의 무흠성을 논증한다고 말한다.[8] 전통적 유대인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365개의 부정적 율법을 1년 365일 동안 단 하나도 어기지 않으셨고, 248개의 긍정적 율법을 248개의 모든 뼛속으로부터 지키심으로써 당신의 무흠성을 논증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유일한 대속자가 되실 수 있다는 말이다. R. C. Sproul도 이런 사유를 기반으로 예수님의 독특성과 특별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예수님의 죄 없으심은 부정적 [율법의] 측면과 긍정적 [율법의] 측면을 수반한다. 부적정 [율법의] 측면은, 예수님께서 …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단 하나도 어기지 않으셨다는 것이고 … 긍정적 [율법의] 측면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어기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열정적으로 지키셨다는 것이다…”[9] 로마서 1:4도 Bock과 Sproul의 주장에 동의하는 해석을 제시한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여기에 “선포”라고 번역된 헬라어(ὁρίζω)는 문맥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나 부활의 타당성 중 하나를 의미[10]하는데, 부활의 타당성으로 쓰일 경우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무흠했다는 것을 변증하는 역할을 한다.[11]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께서 무흠한 상태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라는 논리이다. John A. Witmer와 Doug Redford도 이를 근거로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의 신성을 입증한다고 말하고,[12] 성경도 이들의 주장을 조직신학적으로 변증한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부정적 율법(מצות לא תעשה)을 단 하나도 어기지 않으셨고, 긍정적 율법(עשה מצות)을 모조리 지키심으로써 당신의 무흠(無欠)하심을 보여주셨으며, 이를 근거로 당신의 대속적 죽음이 온전하고 완전한 효력을 발휘함을 증거하셨던 것이다.

1988년에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라는 영화가 나왔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예수는 사탄에게 유혹을 받아 막달라 마리아와 성관계를 맺는 상상을 한다. 만약 예수가 정말 그랬다면 그는 대속자도, 구원자도,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다. 마태복음 5:27-28에 근거한 십계명의 일곱 번째 계명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십자가까지 무흠하게 잘 왔다손 치더라도 그런 상상을 한 순간 그는 대속자로부터 탈락이다. 또한 오늘 서점에서 읽은 책의 내용처럼 예수가 “가장 인도적(人道的)인 일을 하기 위해서 십계명중 하나를 어겼다”고 해도 그는 탈락이다. 율법을 지킬 수 없는 가련한 인간의 유일한 소망은 율법을 안팎으로 온전히 지킴으로 당신의 무흠함을 증명하고, 그 무흠하신 모습으로 우리의 자리에서 대속적 죽음을 이루신 대속자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인자(人子)이신 예수님을 모든 인간들로부터 분리시키는 독특성과 특별성이 무엇인지 아는가? 기적? 이사? 병고침? 축귀? 아니다. 인간들도 이 모든 것들을 부분적으로 행했다. 모든 인간들과 모든 면에 다른 예수님의 독특성과 특별성은 이것이니 안팎으로 무흠(無欠)하셨기에 믿는 자들의 죄를 도말해 버리실 수 있으셨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성과 특별성이요, 1년 365일 248개의 뼛속까지 죄인인 나의 구원을 안팎으로 보증하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렇다.

나는 내 구원의 완전성을 죄와 완전히 분리되신 예수님으로부터 찾는다.
나는 내 구원의 온전성을 죄로부터 온전히 떨어져 계신 예수님으로부터 찾는다.
나는 내 구원의 확실성을 율법을 확실히 지키신 예수님으로부터 찾는다.
나는 내 구원의 타당성을 대속자적 타당성을 소유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찾는다.

무흠(無欠)하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 분만이 내 합법적, 논리적, 신학적, 신앙적 구주이시다.

 

각주

[1] Isidore Singer, ed., The Jewish Encyclopedia: A Descriptive Record of the History, Religion, Literature, and Customs of the Jewish People from the Earliest Times to the Present Day, 12 Volumes (New York; London: Funk & Wagnalls, 1901–1906), 198. 필자가 이들의 의견에 동의하기 때문에 이런 분류를 예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무흠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논증하기 위한 일개의 방편으로 사용하는 것임을 밝힌다.

[2] Ibid.

[3] Jacob Neusner, The Jerusalem Talmud: A Translation and Commentary (Peabody, Massachusetts: Hendrickson Publishers, 2008). III:4 A.

[4] Singer, The Jewish Encyclopedia, 181.; Charles C. Ryrie, “The End of the Law” in Bibliotheca Sacra 124, no. 495 (1967): 240.; Robert H. Smith, Matthew, Augsburg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Minneapolis, MN: Augsburg Publishing House, 1989), 265.

[5] Bruce A. Demarest, The Cross and Salvation: The Doctrine of Salvation, Foundations of Evangelical Theology (Wheaton, IL: Crossway Books, 1997), 86–87.

[6] 유대인들은 가장 덜 중요한 율법인 신 22:6-7 만큼은 충분히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들이 간과하는 사실은 ‘율법을 몇 개까지 지킬 수 있는가’가 아니라 ‘하나라도 어기면 모든 것을 어긴 것과 같다는 율법의 총체적 특성’이었다. 다음을 보라: Johnston, Robert M. “’THE LEAST OF THE COMMANDMENTS”: DEUTERONOMY 22:6–7 IN RABBINIC JUDAISM AND EARLY CHRISTIANITY.’” Andrews University Seminary Studies 1982, Vol. 20 (3), pp: 205–215.

[7] Michael P. Green, 1500 Illustrations for Biblical Preaching (Grand Rapids, MI: Baker Books, 2000), 432.

[8] Darrell L. Bock, BI100 Learn to Study the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4). Segment 8, 21.

[9] R. C. Sproul, Essential Truths of the Christian Faith (Wheaton, IL: Tyndale House, 1992), The Sinlessness Of Christ.

[10] Philip Schaff, ed., The Epistles of St. Paul, vol. 3, A Popular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Edinburgh: T. & T. Clark, 1882), 19.

[11] F. Godet, Charles Hodge, William Sanday, Headlam Arthur, Leon Morris, Ellis W. Deibler Jr.; CEV, GW, KJV, NASB, NET, NIV, NLT, NRSV, REB, TEV

[12] John A. Witmer, “Romans,” in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An Exposition of the Scriptures, ed. J. F. Walvoord and R. B. Zuck, vol. 2 (Wheaton, IL: Victor Books, 1985), 440.; Doug Redford, The New Testament Church: Acts-Revelation, vol. 2, Standard Reference Library: New Testament (Cincinnati, OH: Standard Pub., 2007), 117.

페이스 북: https://www.facebook.com/sanghwan.lee

Advertisements

댓글 2개

댓글 남기기
  1. 김신영 / 10월 31 2015 6:19 오전

    목사님, 감사합니다. 요즘 십계명에 대한 설교를 시작했는데 이번에 정리해주신 글을 통해 율법에 대한 이해가 더욱 넓어진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글에는 다른 책들에서 볼 수 없는 논리적 흐름과 목사님만의 독특성이 많이 묻어나는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출력하여 교회 청년들과 손으로 짚어가며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Liked by 1명

    • Sanghwan A. Lee / 10월 31 2015 8:47 오전

      ㅎㅎㅎ 사랑하는 목사님! 이제야 댓글을 봤네요. 부족한 글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보고싶고, 사랑합니다.

      좋아요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