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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4/2015 / Sanghwan A. Lee

고타마 시타르타, 그는 구도자(求道者)인가 신(神)인가?

역사적 접근: 인도의 불교 역사는 (1) 원시불교(原始佛敎), (2) 부파불교(部派佛敎), (3) 대승불교(大乘佛敎), (4) 밀교(密敎)의 순서로 발전했다. 원시불교(原始佛敎)시대는 고타마 시타르타가 제자들과 함께 다니며 설법했던 시대이고, 부파불교(部派佛敎)시대는 전승과 문서를 통하여 내려온 시타르타의 가르침을 교리화했던 시대이다. 우리는 잠시 부파불교(部派佛敎) 시대에 있었던 한 분파인 대중부불교(大衆部佛敎)가 시도한 일을 기억해야 한다. 대중부불교(大衆部佛敎)는 고타마 시타르타의 가르침을 기존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르게 주해한 진보적 종파로써, 시타르타의 철학적 사유를 종교적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그때 만들어졌던 주해를 아비달마(阿毘達磨)라고 하는데, 시타르타가 십사무기(十四無記)로 규정하여 함구했던 신, 영원, 사후 세계 등에 종교적 답을 달기까지 했다. 철학의 한 분파였던 불교를 종교로 둔갑시키려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어디 이뿐인가? 그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타마 시타르타를 초월적 인간으로 숭경(崇敬)하고 그의 육신에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32상(相) 80종호(好)라는 상호가 있었다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고 했다. 이들이 만든 시타르타, 곧 원시불교(原始佛敎)의 시타르타와 다른 시타르타를 산스크리트어로 “로코따라 부따”라 하고, 부처를 신격화 하는 주장을 설출세부(說出世部)라고 한다. 이처럼 대중부불교(大衆部佛敎)는 부처를 신격화(deification)하여 개인의 구원에 필요한 영원자로 만들어 나갔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에서 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오강남 박사는 이런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대중부도 여러 파에서 다양한 가르침을 주장했지만 불타론을 새롭게 부각시킨 것이 흥미롭다. 초기불교가 부처를 우리에게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준 스승으로 본 것에 비해, 대중부는 부처를 우주적 존재로 보았다. (오강남,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 101.)

보시다시피 대중부불교(大衆部佛敎)는 일개의 인간이었던 시타르타를 신격화한 것이다. 도올 김용옥 박사도 위의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부파불교의 수도인들이 지향한 이상적 인간상을 ‘아라한’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아라한이라는 말은 원래 초기불교 집단에서 인간 시타르타를 존경하여 부르던 열 개의 존칭 중의 하나였다. … 사실 이것은 뭐 대단히 특수한 존칭이 아니다. … 그런데 부파불교(部派佛敎)시대에 내려오면서 이런 아라한의 의미가 변질되어 수도원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는 수도인이 도달하는 최고의 성스러운 경지에 해당되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無學位로서 아주 특수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김용옥, 금강경강해, 88-89.)

불자인 도올 김용옥 박사도 시타르타의 신성(神聖)은 부파불교(部派佛敎) 시대에 고안된 것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처럼 일개의 철학이었던 불교가 종교로 둔갑한 것은 부파불교(部派佛敎)의 시대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때부터 불교에 분열이 일어나 200년 만에 20개의 부파가 생기게 되고, 불교는 점점 종교화 됨에 따라 시타르타의 가르침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 후에 불교가 원시불교로부터 멀어지는 것에 불만을 품었던 자들이 일어났는데, 그들이 바로 대승불교(大乘佛敎)이다. 이들은 대중부불교(大衆部佛敎)의 아비달마(阿毘達磨)의 교리적 체계가 원시불교(原始佛敎)의 순수함을 해(害)하는 주된 원인으로 파악해 이를 거부하고, 불교의 초심인 원시불교(原始佛敎)로 돌아가 이기적인 개인주의를 버리고 많은 자들에게 시타르타의 도를 전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승불교(大乘佛敎)는 원시불교(原始佛敎)로 돌아가려는 개혁에 실패하고, 오히려 대중부불교(大衆部佛敎)의 영원론을 발전시켜 해탈한 자는 극락왕생하여 부처와 함께 영생을 살 수 있다고 주장했고, 신성설을 발전시켜 시타르타가 극락에서 중생들의 해탈을 돕는다고 주장했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보살의 길”이라는 불교의 구원론이다. 이를 시작으로 불교는 종교화 되는데 박차를 가하게 됐다. 바라문교의 여러 신들이 불교의 수호신으로서 받아들여졌고, 토속신앙의 주술적 요소가 불교의 교리에 도입되었으며, 불경에 여러 가지 재앙을 면할 수 있도록 하는 ‘육자대명왕다라니경(六字大明王陀羅尼經)’과 같은 주문까지 들어가게 됐으니 말이다.

 

연대기적 오류: 불자 중에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을 인용하며 시타르타의 신성(神聖)을 논증하는 자들이 더러 있는데,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은 대승불교(大乘佛敎) 시대에 만들어진 불경이라는 것이다. 즉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이 묘사하는 신적 시타르타는 원시불교(原始佛敎)때 보이는 시타르타가 아니라 후대에 꾸며지고 만들어진 시타르타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을 인용하여 시타르타의 신성(神聖)을 논증하는 것은 연대기적 오류이다. 후대에 꾸며진 시타르타의 모습으로 그 이전 시대의 시타르타를 이해하려고 하면 안된다. 결국 불교는 시타르타의 철학적 가르침과 점점 동떨어지다가 밀교(密敎)가 된다. 시타르타가 가장 원치 않았던 모습으로 불교가 치닫게 된 것이다. 도올 김용욕 박사님께서도 불교가 시타르타의 가르침을 버리고 점점 종교화되는 모습에 혀를 차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불교에는 신이 없다. 불교는 신을 믿지 않는다. 불교에는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자가 없는 것이다. 단언하건대 불교는 무신론인 것이다. 무신론이 어떻게 종교가 될 수 있는가? (김용옥, 금강경강해, 23)

 

결론: 만약 시타르타가 다시 살아나 현존하는 절간에 방문한다면 어떨까? 기절 초풍을 할 듯 싶다. 그가 설법하지 않았던 도깨비와 귀신들이 절간의 문설주와 천장과 벽에 잔뜩 그려져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고타마 시타르타를 정말 사랑하는 불자들은 후대에 꾸며진 그가 아니라 초기불교시대를 살았던 위대한 철학자로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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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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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죠슈아 / 2월 21 2015 7:33 오전

    목사님 글을 통해서 너무 귀한 것들을 얻습니다. 불교문화권에 있다보니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잘 이해할 필요가 있더군요. 목사님 혹시 종교학을 따로 공부하셨는지요.. 그리고 비교종교학 관련 책을 추천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지요 고견 기다리겠습니다

    Liked by 1명

    • Sanghwan A. Lee / 2월 21 2015 7:54 오전

      안녕하세요.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 시간을 할애했던 적이 있습니다. 공부하면 공부할 수록 제가 갖고 있는 믿음에 큰 확신이 서게 됨을 느낍니다. 좋게 읽어주시니 감사드릴 뿐이랍니다.

      비교 종교학을 위해서 가장 좋은 책은 비교하고싶은 종교의 경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경, 외경, 코란 등이지요. 이들의 글을 바른 신관을 갖고 읽으실 때 그들의 문제점들이 보이게 된답니다. 저는 이를 통해서 큰 유익을 얻고 있지요. 혹시 비교종교학 책을 원하신다면 외국 서적을 소개해 드려도 되는지요? 영어로 된 책들만 읽어서 한글로 된 비교종교학 책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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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anghwan A. Lee / 2월 25 2015 12:57 오후

    종흔님, 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1) 인신 공격적인 발언들과 (2) 제가 전에 읽기를 당부했던 책들을 읽지 않고 글을 쓰신 점, (3) 인터넷에 권위없이 돌아다니는 글들을 인용한 점을 들어 올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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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종흔 / 2월 25 2015 1:49 오후

    역시나 대단하시네요.인신공격이면 해당 글을 엑스처리 하면되고 읽어라는 책을 읽지 않았다 하여 안올린다 하니 소꼽장난인듯 착각 하시는 것같고 님이 올린글도 모두 인터넷상에 떠도는 글인데 도대체 언제 그러한 아전인수식 습관을 버리시렵니까? 자신을 돌아보시고 난 연후에 남을 평가하세요.기독교에대한 님의 수준 조차도 한참 떨어지는데 감히 불교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하니 저같은 사람도 끼어드는것입니다.정 반박할 자신이 없으면 본문을 내리던지,끝네 소심함으로 마무리 짓는군요.아무튼 더이상 죄짓지 마세요.불교에서는 사후세계와 다음생에 대한 원리가 자세한 까닭으로 남의 내생도 어느 정도 가늠 할수 있습니다.님이 지금처럼 불법의 성스러움을 훼방하며 하나에만 광신적으로 집착하면 님의 내생을 장담못합니다.명심하세요.님이 바른길로 종교의 길을 걷는다면 언젠가 내말을 이해 하실테고 그렇치못하다면 죽고 나서야 깨달으실 것입니다.내가 이런 말을 할수있는것은 예수님을 당신보다 더깊이 이해했었기에, 지금의 님의 위치를 알수있기에 드리는 말입니다.앞선 사람의 발자국이 뒷사람의 지표가 된다 했습니다.자꾸만 절벽으로 가지마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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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nghwan A. Lee / 2월 25 2015 4:34 오후

      종흔님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제가 권면해 드린 책들 꼭 읽어보시고 진리를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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