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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1/2015 / Sanghwan A. Lee

莫逆之友

인생을 살다 보면 가뭄에 콩 나듯 莫逆之友를 만나게 된다. 뜻하지 않던 곳에서 뜻하지 않게 엮어져 뜻하지 않게 우정을 나누게 되는 벗. 그런 벗을 만나는 것은 정말 신바람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인격에 모나고, 삶에 구겨짐이 많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런 내게도 莫逆之友가 있다. 연배는 나보다 많지만 동급배 보다 더 친한 벗. 서로 가장 힘들 때 만나 가장 좋으신 예수님 안에서 가장 순순한 우정을 나누기 시작한 우리는 나이의 국경선을 뛰어넘어 벗이 되었다. 비록 서로를 향한 호칭은 “목사님”과 “형님”이지만 우리는 “벗”이란 의미로 그 호칭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시골교회에서 동영상 설교를 만드는 일을 시작으로 설교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과 설교를 영어로 통역하는 일, 그리고 성경 공부 때 필요한 칠판 만드는 일등은 이분께서 다 도맡아 하셨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불도저와 같은 추진력, 그리고 무엇보다 신본주의의 바른 신학을 소유하신 분. 지식과 힘을 겸비하고 계셨던 벗이 아니었다면 일꾼이 없어 허덕이고 있던 나는 벌써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중요하게 보실 수 있으신 분. 외로운 목회 길을 걷는 내게 말동무가 되어 주신 분. 나와 함께 전쟁터 최전선에서 인본주의와 싸우신 분. 우리는 그렇게 莫逆之友가 되었다. 공자 선생의 德不孤 必有隣의 가르침이 내게도 일어났던 것이다. “진리의 길은 반드시 함께 하려는 벗이 있기에 외롭지 않다.”

그래서 그랬던지 엘파소 사역을 마치고 달라스로 이사를 오며 가장 슬펐던 일 중에 하나가 벗을 떠나는 것이었다. 시시때때로 대면하여 우정을 나누던 벗과 642마일을 떨어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내 스스로에게 타일렀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공자 선생은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라고 말했나 보다.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하랴!” 당연히 그러하다.

이렇게 아쉬워하기를 몇 달, 어제는 반가운 손님이 멀리서 찾아오셨다. 몇 백 마일을 가로질러 찾아와 주신 분. 소중한 벗이었다. 우리는 늘 그랬듯이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나중에 다시 만나 함께 싸울 날을 기약하면서 말이다. 정말 외롭고도 고독한 이 길… 함께 걸어줄 벗이 있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형님,
사랑합니다.J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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