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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2014 / Sanghwan A. Lee

계시자, 예수 그리스도

니체는 “신(神)은 죽었다”고 말했다. 오쇼의 해석에 따르면 철학자들이 신을 죽였기 때문이란다. 이성으로 다 담을 수 없는 신(神), 논리의 저편까지 확장되어 있는 신(神)을 제한된 이성과 논리로만 증명하려고 애쓸 때 신은 죽음을 맞이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 보일 때에는 아무 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神)은 이성과 논리의 지평선 너머에까지 넘실대는 존재인지라 그의 모든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데리다의 말처럼 그의 “흔적”만이 인지되고 있을 뿐. 이러한 상태에서 복음이 아닌 다른 것으로만 신(神)을 설명하려는 노력은 신을 죽이는 행위가 맞을 것이다.

시타르타는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신(神)은 설명될 수 없는 것 중에 하나라고 판단하여 신에 관한 모든 질문을 금기사항으로 만들어 함구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보아 그는 히친스나 도킨스 보다는 정직했고 솔직했던 구도자였던 것 만은 틀림없다.

너무 추상적이고
멀게만 느껴지는 단어, 신(神).

이 단어를
추상(抽象)에서 구체(具體)로
상재(想在)에서 실재(實在)로
개념(槪念)에서 존재(存在)로
바꿔주신 유일한 분이 계시다.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던 말씀,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신(神)에 대해서 듣지 않는다. 신(神)을 듣는다.
그분을 통하여 신(神)에 관한 것들을 보지 않는다. 신(神)을 뵌다.

바로 그 분께서
논리와 이성의 지평선 저너머에 계신 신(神)을 계시하는 신(神)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神),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을 통해서, 오직 복음을 통해서만 베일을 벗고 실체(實體)를 드러내신다.

오늘도 그 분께서는 당신을 듣고 볼 수 있는 복음이 담긴
유일한 특별계시인 성경 66권으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말씀을 펴라.”
“말씀을 읽어라.”
“말씀을 먹어라.”
“말씀을 묵상하라.”

וּבִקַּשְׁתֶּ֥ם אֹתִ֖י וּמְצָאתֶ֑ם כִּ֥י תִדְרְשֻׁ֖נִי בְּכָל־לְבַבְכֶֽם׃

일반계시의 노래이시며
특별계시의 꽃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영광과 존귀와 찬송을 돌리고 돌릴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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