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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2014 / Sanghwan A. Lee

은과 금 위에 세워지지 않은 교회

2세기에 하나님의 교회를 가장 힘들게 했던 주적, 마르시온. 그는 사업 수단이 좋아 대규모의 선박 회사를 소유하고 있었고, 사람의 혼을 빼놓는 미혹의 혀까지 갖고 있어 부와 명예와 사람을 움켜쥐고 있던 거물이었다.

로마에 발을 디딘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로마 교인으로 등록한 후 200,000 Sestertius라는 거금을 교회에 기부함으로 자신의 부를 드러낸다. 역사가들의 말에 따르면 그 당시의 200,000 Sestertius는 로마 도시 한 복판에 있는 집을 살 수 있는 액수(John Behr)였고, 로마 해병을 지위하는 최고 사령관의 연봉(Markus Vinzent)이었으며, 노예를 32명 정도나 살 수 있는 액수이기도 했다 (Christopher Reyes). 이러한 액수를 한 번에 기부할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사회적 지휘가 적어도 기사단(ordo equester)이나 그 이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어디 이뿐인가? 여기에 하나를 더해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언어의 연금술사이기도 했으니 부와 명예와 사람이 항상 그를 따를만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거금을 교회에 헌금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의 환심을 산 마르시온은 뱀의 혀로 본격적인 포교활동을 펼쳤고, 예상했던대로 삽시간에 많은 무리들이 그를 추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이 글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마르시온의 이단성이 아니라 그의 도발에 탁월하게 대응한 로마 교회의 처신이다. 문제를 직시한 로마 교회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일을 감행한다. 첫 째는 마르시온을 과감하게 파문시킨 것이고, 둘 째는 파문 시 그에게 받은 200,000 Sestertius를 고스란히 돌려준 것이다. 물주로 삼을 수 있었던 고관 마르시온을 담대하게 파문시켜 버린 로마 교회. 게다가 이단의 엽전은 한 닢도 받지 않겠다는 비범한 자세로 거액의 돈을 몽땅 돌려준 로마 교회. 이러한 로마 교회의 처신은 부와 명예에 점점 눈멀고 있는 다수의 한국 교회와 너무 다르기에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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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신학자들은 마르시온의 이단성 연구에만 관심을 뒀기 때문에 로마 교회가 마르시온의 도발에 담대하게 대응한 점을 크게 부각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맘몬주의로 인해 일그러진 한국 교회의 일원인 내게는 마르시온과 타협하지 않고 멋지게 맞대응 한 로마 교회의 처신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를 파문시키는 데에서만 그치지 않고 그에게 받은 거액의 헌금까지 고스란히 돌려준 로마 교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과부와 고아가 유난히도 많았던 로마 교회. 가난으로부터 잔인하게 핍박당하며 고통 받았던 로마 교회. 그래서 그 어느 때 보다 돈이 아쉬웠던 로마 교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주로 여길 수 있었던 마르시온을 당돌하게 파문시켜 버리고 유용하게 쓸 수 있었던 그의 돈 까지 과감히 돌려준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교회는 물질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하나님의 교회는 물질로 인해 성장하는 것이 아님을 삶으로 고백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만약 마르시온이 한국 교회에 찾아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혹시 그를 거물급 국회위원 정도로 보기에 비위를 맞추려고 굽신대지는 않을까? 설령 큰 맘먹고 파문시킨다 할지라도 그에게 받은 거액의 헌금만큼은 소리 없이 소유하려 하지는 않을까? 수 많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찾아왔다.

초대 교회가 지어진 후 베드로가 행한 첫 번째 기적을 생각해본다. 앉은뱅이를 일으킨 그 아름다운 사건. 베드로가 이 기적을 일으키며 했던 말이 있다.

은과 금은 내게 없다 (ἀργύριον καὶ χρυσίον οὐχ ὑπάρχει μοι).
그러나 내가 갖고 있는 이것을 너에게 준다 (ὃ δὲ ἔχω τοῦτό σοι δίδωμι).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의해 (ἐν τῷ ὀνόματι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τοῦ Ναζωραίου)
너는 일어나라 그리고 걸어라 ([ἔγειρε καὶ] περιπάτει).

은과 금은 없었던 베드로에게 있었던 것이 하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바로 그 아름다운 이름으로 인해 앉은뱅이는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고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 바로 이 교회가 예수님께서 세우셨고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을 만큼 사랑했던 교회가 아니던고?

은과 금 위에 지어지지 않은 교회. 은과 금으로 꾸며지지 않은 교회. 은과 금을 섬기지도 않은 교회. 이 교회는 가난했지만 부유했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모든 것을 다 소유했으며, 작았지만 세상을 다 품을 만큼 거대했다. 그들에게는 크고 힘있고 능있는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없지만 은과 금으로 풍부하고, 산 자들은 거의 없고 죽은 자들로 꽉 차 있으며, 떼오스(θεός)를 등지고 맘모나스(μαμωνᾶς)를 따르는 다수의 현대 교회가 반드시 돌아봐야 할 먼지 쌓인 사실이 아닐까? 예수님의 이름 하나로 배짱 두둑하게 세워지는 그런 교회를 보고싶다. 정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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