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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6/2014 / Sanghwan A. Lee

창조의 순서에 따라 여자가 남자보다 우월하다?

문제 제기: 조금 전 기독교 서적을 출판하시는 사역을 감당하시는 목사님께서 여성 목사를 반대하는 자들을 반증하기 위하여 성경을 해석하신 부분을 보게 되었다. 그 부분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어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분의 해석은 틀렸다) 내가 부득이하게 글을 써야만 한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이 글은 여성 목사가 성경적인가 아닌가에 대한 것이 아니다. 단지 그 목사님께서 당신의 주장을 피력하시기 위하여 위하여 만드신 성서 해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 글을 통하여 그 분의 글을 읽고 잘못된 성경 해석에 영향을 갖게 된 분들이 생각을 다시 정돈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한다.

들어가기 전에: 앞으로 전개 될 내 글은 그 목사님께서 만드신 두 가지 잘못된 성서 해석을 검증하는 것이다. 글의 명료성을 위하여 그 분의 글을 인용한 후 비평을 하겠다.

또 하나 창세기 초두에서 굳이 타락의 질서를 논하려면 그보다 먼저 창조의 질서를 논하는 것도 간과하지 말기를 바란다. 창세기 1장에 보면, 창조 질서의 순서는 항상 뒤에 오는 것이 앞에 오는 것보다 더 우수한 창조물이었다. 따라서 문맥만 놓고 보면, 여성은 남성의 창조 뒤에 옴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더 우월하고 완전한 존재로 창조된 존재다. 따라서 여성을 열등하고 타락한 존재로 보기 이전에, 창조 질서에 나타난 여성 창조의 위대함과 영광스러움도 함께 보길 바란다.

첫 째, 그 목사님께서는 “창조 질서의 순서는 항상 뒤에 오는 것이 앞에 오는 것보다 더 우수한 창조물이었다.”라고 말씀하심으로 여성 목사의 안수를 지지했다. 위에 있는 문장의 숨은 논증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우수하다. 그러므로 여성 목사는 합당하다’이다. 그렇다면 논증을 지탱하기 위하여 사용한 “창조 질서의 순서는 항상 뒤에 오는 것이 앞에 오는 것 보다 더 우수한 창조물”이라는 명제가 타당한가? 그것을 언어학적으로 조명해 보자.

창세기에서 “창조”의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가 두 개 있다: (1) 바라(ברא)와 (2) 아사(עשׂה). 바라(בר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동작 동사’이고 아사(עשׂה)는 창조되어있는 것에서 다른 것을 만드는 동작 동사’을 의미한다고 구약학자들이 말하지만 이러한 분류는 이 글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위의 논증을 만드신 목사님께서는 두 단어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셨기 때문이다. 그래도 두 단어의 쓰임새를 분석해 봄으로써 논증의 타당성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봄이 필요하다.

(1) 바라(ברא) 동사는 창 1:1, 창 1:21, 그리고 창 1:27에 등장한다. 순차적으로 창조된 것을 나열하자면 (1) 천지→ (2) 바다 생물과 날개 있는 새 → (3) 인간이다. 이렇게 나열된 피조물들을 “창조 질서의 순서는 항상 뒤에 오는 것이 앞에 오는 것 보다 더 우수한 창조물”이라는 논증을 토대로 우월성을 가늠하자면 ‘천지 < 바다 생물과 날개 있는 새 < 인간’이다. 질문이 있다. ‘바다 생물과 날개 있는 새’가 ‘천지’보다 우월한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생명 때문인가? 그렇다면 ‘바다 생물과 날개 있는 새 < 인간’이라는 구조는 맞지 않는다.  ‘바다 생물과 날개 있는 새,’ 그리고 ‘인간’은 둘 다 생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혼의 유무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럴 경우 ‘바다 생물과 날개 있는 새 < 인간’의 논증에는 타당성이 형성되지만 그 전에 이미 만들어진 ‘천지 < 바다 생물과 날개 있는 새’ 논증이 틀려 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백 번 양보해서 영혼이 우월성의 기준이라고 치자. 그러면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 글의 궁극적 취지가 ‘남자 < 여자’라고 주장하는 논증의 타당성 검증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남자와 여자는 둘 다 영혼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영혼도 두 피조물의 우월성을 가리는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창조 질서의 순서는 항상 뒤에 오는 것이 앞에 오는 것 보다 더 우수한 창조물’이라고 주장한 것일까? 바라(ברא) 동사에서는 그 답을 찾을 수 없으니 아사(עשׂה) 동사로 넘어가보자.

(2) 아사(עשׂה) 동사는 창 1:7, 창 1:11, 창 1:12, 창 1:16, 창 1:25, 창 1:26, 창 1:31에 등장한다. 이 중에서 창조의 의미를 담고 있는 있는 부분만 순차적으로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궁창→ (2) 풀과 씨 맺는 채소, 그리고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 (3) 두 개의 큰 광명과 별들→ (4) 땅의 짐승, 육축, 그리고 땅에 기는 것 → (5) 인간. 이렇게 나열된 피조물들을 “창조 질서의 순서는 항상 뒤에 오는 것이 앞에 오는 것 보다 더 우수한 창조물”이라는 논증을 토대로 우월성을 가늠하자면 다음과 같은 도표가 만들어 진다: 궁창 < 풀과 씨 맺는 채소, 그리고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 < 두 개의 큰 광명과 별들 < 땅의 짐승, 육축, 그리고 땅에 기는 것 < 인간. 역시 이런 논증이 타당할까? ‘풀, 채소, 과목’이 어떤 의미로 ‘궁창’보다 “우수”할까? ‘태양과 달과 별’은 어떤 의미로 ‘풀, 채소, 과목’보다 “우수”한가? ‘땅의 짐승, 육축, 벌레’는 어떤 의미로 ‘태양과 달과 별’보다 “우수”하고, ‘인간’은 어떤 의미로 ‘짐승, 육축, 벌레’보다 “우수”한가? 내가 이 순차적 우월성에서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가장 마지막 부분인 인간의 우월성 뿐이다. 그 밖의 부분에는 논증의 타당성을 찾을 수 없다. ‘풀’이 정말 ‘궁창’보다 “우수”한가? 단지 후에 창조되었다는 이유로? 그게 아니라면 우월성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가? 생명? 그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별들’이 ‘풀’보다 후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면 주권인가? 그것도 아니다. ‘땅의 짐승’이 어찌 ‘태양과 달과 별’을 주관하랴? 그러므로 “창조 질서의 순서는 항상 뒤에 오는 것이 앞에 오는 것보다 더 우수한 창조물이었다”는 주장은 틀렸다. 이 주장은 인간이 가장 마지막에 지어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만들어진 잘못된 논증이기에 여자가 남자보다 더 우월하다는 주장을 지지하는데 사용될 수 없는 것이다.

(3) 우수(優秀): 게다가 “우수”라는 단어도 애매모호하게 사용되었다. “우수”라는 단어의 정의를 찾기 위하여 인터넷 사전을 찾아보았다. (1) 위키 낱말 사전: 매우 훌륭하고 뛰어나다, (2) 다음 한국어 사전: 특별히 뛰어나다, (3) 네이버: 여럿 가운데 뛰어남이라고 되어있다. 대중적인 사전적 의미를 사용했을 경우 (그 목사님께서 “우수”의 뜻을 정의하지 않고 전체 공개가 된 담벼락에 쓰셨기 때문에 내가 대중적인 사전적 의미를 사용함은 타당하다.) 그럼 ‘바다 생물과 날개 있는 새’가 ‘천지’보다 매우 훌륭하고 뛰어나다는 말인가? 그리고 ‘짐승’이 ‘태양, 달, 그리고 별’ 여럿 가운데 뛰어난가? 이 질문에 바른 답을 제시하지 않는 한 이 단어를 남자와 여자의 우월성을 가늠하는데 사용할 수 없다. 게다가 성경은 남녀 사이에는 우월성이 없다고 증거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질서가 있을 뿐 우월성은 없다. 둘 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기에 동일하게 우수한 것이다. 여성 목사 안수의 문제는 질서에 관한 문제이지 우월성에 관한 문제가 아니기에 위의 논증은 타당하지 않다.

둘 째, 그 목사님께서는 “따라서 문맥만 놓고 보면, 여성은 남성의 창조 뒤에 옴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더 우월하고 완전한 존재로 창조된 존재다.”고 논증하셨다. 역시 논리학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문장이다. 우리가 위에서 살펴 봤듯이  “문맥만 놓고” 봐도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은 만들어 지지 않는다. 게다가 위 문장에서는 몇 가지의 언어학적 오류와 한 가지 신학적 오류가 발견된다.

(1) 백 번 양보해서 문맥이 남성보다 여성이 “우월”하다고 증명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것을 근거로 여자가 남성보다 “완전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논리학에서는 이런 식의 오류를 가리켜 “무지의 오류”라고 한다. 무지의 오류란 ‘명제 A는 반증될 수 없기에 명제 A는 참으로써의 타당성을 갖는다’는 식의 주장을 말한다. 예컨대 “유니콘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유니콘은 존재한다.”는 논증을 생각해 보라. 이 논증이 타당한가? 아니다. 유니콘의 존재 여부를 참으로 논증하고 싶다면 유니콘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자료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 하나를 더해 유니콘이 참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2) 또 하나 발견되는 언어학적 오류는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이다.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란 ‘명제 A를 증명하기 위하여 존재하지도 않는 허수아비 H를 만들어 공격한 후 명제 B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경우를 말한다. 위의 목사님께서는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를 약간 뒤틀어 다음과 같이 사용하셨다. 명제 A (여자의 목사 안수는 타당하다)를 주장하기 위하여 허수아비 H (늦게 창조된 것일 수록 우월하고 완전하다)를 만들어 지지한 후 명제 B (여성 목사를 반대하는 것은 틀렸다)고 주장한 것이다. 내가 위에서 논증했듯이 허수아비 H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그 목사님께서 스스로 만들어 스스로 참이라고 주장하신 것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성이 남성보다 완전하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으며 기각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 이외에도 잘못된 전제에 호소하는 오류 등도 발견되나 언어학적 오류는 여기에서 멈추고 심각한 신학적 오류로 넘어가보자.

(3) 그 목사님께서 만드신 문장에는 치명적인 신학적 오류가 발견된다. 여성이 남성보다 “완전한 존재”라는 부분이다. 이 논증을 잘 살펴봐라. 여성이 남성보다 더 우월한 것뿐 아니라 “완전한 존재”로 창조 되었단다. 이 명제를 역(逆)화하면 “문맥이 남성은 여성보다 덜 완전한 존재”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남자 창조에 상대적 완전성이 결여된 것이라고 논증하게 된다. 논리학에서 단순 명제가 역(逆)화 되었을 때에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위에 있는 명제는 단순 명제가 아니다. 너무 구체적인 설명들을 제시함으로써 구체 명제가 되어 역(逆)화할 때에 참일 수 있는 가능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목사님께서는 “문맥이 남성은 여성보다 덜 완전한 존재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남자 창조에 상대적 완전성이 결여된 것”이라고 논증하신 것이다. 정말 하나님께서 남자를 덜 완전하게 창조하신 것일까? 남자들은 덜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인가? 이런 주장이 과연 성경적으로 타당할까? 내가 남자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강등되어 버리고, 바르게 풀려 적용돼야 마땅한 성경이 미리 개인의 사유를 지지하기 위하여 문법, 논법등을 무시하고 다뤄지는 것이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사유를 소유할 자유가 있다. 그게 정치적이건 종교적이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변증하거나 그와 반대되는 자들의 사유를 반증하기 위하여 성경을 아무렇게나 해석하여 사용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정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랑한다면 성경을 깊게 상고함으로 바른 해석을 돌출 한 후 그것으로 본인의 사유를 검증, 수정, 개편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닐까?

결론: 이 모든 정황으로 봤을 때에

전제 1: 창조 질서의 순서는 항상 뒤에 오는 것이 앞에 오는 것보다 더 우수한 창조물이었다. 
전제 2: 따라서 문맥만 놓고 보면, 여성은 남성의 창조 뒤에 옴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더 우월하고 완전한 존재로 창조된 존재다. 
결론: 고로 여성의 안수를 반대하는 자들은 지지될 수 없다.

 는 주장은 논리학적으로 신학적으로 타당하지 못하다.

페이스 북: https://www.facebook.com/sanghwan.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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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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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영 / 9월 26 2014 8:11 오후

    비판하시는 글을 찾아 읽어보았습니다. 그 분의 글은 한국 교회 제도가 가지고 있는 여성 목사 안수의 문제점을 비판하려는 글 같은데요. 여성 안수의 정당성 문제를 떠나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여성 안수의 문제를 제도적으로 비판하려는 글 같은데, 잘못된 성서해석과 논리로 글을 어지럽게 쓰신 거 같습니다. 이상환 목사님의 논리적 비판을 잘 읽고 한 수 배우고 갑니다. 더불어 여성안수에 대해 성서적으로 잘 정리된 글을 소개 받고 싶습니다. 제가 속한 교단을 비롯해서 한국의 많은 교단들이 여성 안수제도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허용하지 않고 있는 교단에서 조차도 목회자 모두가 여성안수를 반대하고 있는 거 같고요..
    게으른 저는 목사님의 글 기다리며 야금야금 얌체처럼 공부하고 있습니다!

    Liked by 2 people

    • Sanghwan A. Lee / 9월 26 2014 8:40 오후

      그 부분은 제가 쓰도록 하겠습니다. ㅋㅋㅋ 목사님, 빨리 돌아오세요. 목사님과 나누는 유치껄렁한 농담들이 제 삶의 비타민이었는데… 빨리 돌아오시고 메세지 남겨 주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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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영 / 9월 26 2014 9:11 오후

        윗 글에 잘못 쓴 문장이 있습니다.
        “(여성안수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교단에서 조차도 목회자 모두가 여성안수를 반대하고 있는 거 같지는 않고요..”라고 수정합니다.

        Liked by 1명

      • Sanghwan A. Lee / 9월 27 2014 5:46 오전

        감사합니다, 목사님.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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