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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2014 / Sanghwan A. Lee

산파술(産婆術)과 계시술(啓示術)

“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가 학생들을 상대로 사용했던 학습법을 산파술 (産婆術)이라고 한다. 산파술이란 ‘아이를 잘 낳도록 도와주는 기술’이라는 뜻으로 산파였던 어머니께서 임신한 여인들의 해산을 돕는 모습을 보고 빌려온 이름이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진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자신을 산파에 비유했던 것이다.

산파술에는 그 당시의 소피스트들이 사용했던 학습법는 판이하게 다른점 하나가 있다. 보통의 소피스트들은 학생들에게 질문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가르쳤던 반면 소크라테스는 논리적으로 연결, 연동, 연계되는 질문들을 계속 던졌던 것이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질문 공세를 받은 학생들은 하나씩, 하나씩 그 질문들에 답해 나가다가 결국 찾고자 했던 답에 도달하게 된다. 중요한 점은 소크라테스가 답을 찾아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단지 학생들이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답은 학생들이 직접 찾은 것이다. 마치 산파는 산모의 해산을 도울 뿐, 아이를 낳는 것은 산모이듯이 소크라테스는 학생들이 직접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던 것이다.

역사 속에는 소크라테스와 비슷한 방법으로 가르쳤던 또 한 사람이 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우는 나사렛 예수이시다. 예수님께서도 상대방에게 논리적인 질문을 계속 던지심으로써 그들을 가르쳤다는 것을 아는가? 당신의 제자들은 물론 대적자들에게도 여러종류의 질문들을 던지시면서 그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셨음을 성경은 증거한다. 그러나 참 특이한 것은 그 누구도 복음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산파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예수님께서 질문을 던지실 때 갖고 계셨던 전제는 소크라테스의 것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이 둘의 차이를 잠시 비교해 보자.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에 깔려있는 전제는 상대방에게 애가 있다는 것이다. 산파가 산모를 돕는다는 것은 산모에게 애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애가 없는 여자를 산파가 어떻게 도우리요? 소크라테스는 “너에게 진리가 있다. 그러나 너는 그 사실을 모른다. 고로 나는 네 스스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산파로써 도와준다”는 의미로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와 정 반대되는 전제로써 질문을 던지셨다. “너에게 진리가 없다. 그러나 너는 그 사실을 모른다. 나는 네게 진리가 없다는 것을 밝힐 것이고, 네게 없는 진리는 내게 속해 있다는 것을 천명할 것이다.”

잠시 마태복음 16에 있는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으로 가보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한다.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정답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산파술을 사용하사 베드로 속에 감추어져있던 정답을 그로 하여금 돌출해 낼 수 있도록 도우신 것일까?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바른 대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답의 출처가 그가 아님을 확실히 밝혀 주셨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그래서 복음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산파술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다.

미련한 인간은 스스로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논리를 사용하고, 추론을 하면 진리의 정수인 신(神)의 실체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진리는 오직 당신께 속해있기 때문에 자신의 일방적인 신적 계시를 통하여서만 진리를 얻을 수 있다고 증거하신다. 그리고 그 계시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다.

이것이 지난 2,000년 동안 타락한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논리와 말씀과의 싸움이요, 불신자와 신자 간에 일어나고 있는 논증과 선포와의 싸움이며, 철학자와 신학자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산파술(産婆術)과 계시술(啓示術)의 싸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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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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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진원 / 9월 18 2014 4:13 오후

    비슷한 것 같은데 출발점이 정반대군요. 산파술과 계시술^^ 마치 인본주의와 신본주의, 헬라식 사고와 히브리적 사고의 차이처럼…

    생각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저희에게 주신 말씀(성경)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Liked by 1명

    • Sanghwan A. Lee / 9월 19 2014 5:36 오전

      항상 따뜻한 말씀으로 블로그를 훈훈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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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신영 / 9월 26 2014 5:02 오전

    나에게 잠재되어 있는 그 어떤 조건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이 저 같이 얕은 믿음과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큰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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