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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2014 / Sanghwan A. Lee

아내를 향한 남편의 네 가지 의무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3:7)

이 구절에는 남편이 아내에게 마땅히 해야 할 네 가지 의무와 그 의무를 지켜야 할 이유가 나와있다. 우선 남편이 아내에게 해야 할 네 가지 의무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할 것: “지식”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얻어지는 지식으로써 복음에 기초한 앎이라는데 신학자들이 입을 모은다. 나 역시 이에 동의한다. 남편들은 복음으로부터 나오는 지식과 지혜로 아내를 대해야 한다.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헌신, 예수님의 은혜, 예수님의 자비, 예수님의 오래 참고 기다리심으로 말이다. 남편은 알량한 지식이나 우악스런 힘, 그리고 남용되는 권위적 요소에 기대어 아내를 대하지 말고 복음을 통하여 보여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대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남편의 첫 번째 역할이다.

(2) 그를 더 연약한 그릇으로 여길 것:  여기에서 주목해 봐야 할 두 단어가 있다. 첫 째, “더 연약한”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비교급 형용사라는 것이다. 이는 ‘남편도 연약하지만 아내는 더 연약하다’는 뜻이다. 둘 째, “연약하다”는 단어는 육신뿐 아니라 마음을 묘사할 때에도 쓰인다는 것이다. 이는 ‘아내는 심신적으로 남편보다 더 약하다’는 의미가 된다. 남편들은 아내가 심신적으로 더 쉽게 지치고, 더 자주 아프고, 더 빨리 다칠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 하여 깨지기 쉬운 그릇처럼 아내를 다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남편의 두 번째 역할이다.

(3)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 것: 여기에 “이어받다”라고 번역된 단어는 베드로 전서에서 심판대에서 받는 상급을 의미하기 위하여 사용된다. 아내도 남편처럼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여자들은 구원받을 수 없는 미천한 존재로 여겨졌던 그 시절 하나님의 말씀은 여인도 남자와 동등하게 구원과 심판의 대상임을 계시함으로써 같은 인격체로 여길 것을 피력하신 것이다. 그렇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수직적 관계질서가 있다. 그러나 인격적 수평관계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아내를 대해야 함이 옳다는 말이다. 이것이 남편이 기억해야 할 세 번째 진리이다.

(4) 아내를 귀하게 여길 것: “여기다”고 번역된 단어는 전통적 헬라인들이 항상 타인에게 마땅히 지불해야 하는 가치를 의미할 때 쓰였다. 중요한 사실은 아내에게도 그런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 가치가 무엇인가? “귀하다”이다. 한국어 성경은 이 단어를 “보배,” “존귀”라고도 번역했다. 참 멋진 번역이라고 생각된다. 아내는 아내라는 이유만으로 존귀한 보배가 된다. 그리고 남편은 그 가치에 맞게 아내를 존귀한 보배처럼 대해야 한다. 헌 고무신짝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라 깨지기 쉬운 존귀한 보배처럼 말이다. 이것이 남편이 아내에게 해야 할 네 번째 의무이다.

그렇다면 남편이 이 네 가지의 의무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성경에 나와 있지만 오늘 본문을 통해서 봤을 때에는 다음과 같다.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막히다”고 번역된 단어는 흐르던 것이 끊기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너희”라는 단어가 복수형으로 되어있어 남편과 아내의 기도가 다 하나님께 흐르지 못하고 끊긴다는 말이 된다. 이럴수가… 남편의 미련함이 가정을 다 죽이는게다. 우리는 여기에서 기도와 삶은 분리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마치 마 5:23-24의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는 말씀처럼 “기도하려고 하다가 네 아내에게 이 네 가지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나면 기도의 제목들을 일단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아내와 화목한 후 그 후에 와서 기도를 드리라”는 말이다. 그렇다. 기도와 삶은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삶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고, 그 가정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밖에서는 뻔지르르하게 기름칠된 삶을 살지만 가정에서는 아내에게 못되먹게 행동하는 남편들에게 주시는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엘파소에서 달라스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70이 넘으신 교수님이자 사모님을 만나 동석하게 되었다. 너무 반가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린 목사에게 주고 싶은 충고가 없느냐고 물었다. 그분께서는 주저하지 않고 말씀하셨다. “가정이 첫 번째 교회임을 잊지 말 것, 아내를 성도보다 소중히 여길 것, 교회와 가정에서 일치하는 삶을 살 것.” 나는 사모님의 목소리에서 진심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 목사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남편들이 이러한 사실을 잊어 버리는가? 나는 오늘도 남편인 내가 살아야지 가정이 산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읊조린다.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할 것. 그를 더 연약한 그릇으로 여길 것.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 것. 아내를 귀하게 여길 것.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막힘 없이 하나님께 상달되게 할 것.

이 사실을 일분일초도 잊지 않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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