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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2014 / Sanghwan A. Lee

부부(夫婦)를 죽이는 피장파장의 오류

목회를 하면서 많은 종류의 부부들을 만나 봤다. 하루가 멀답시고 싸우는 부부, 타인을 만나면 남편 욕만 늘어놓는 아내, 아내 몰래 바람을 피다가 들킨 남편, 자식 때문에 차마 이혼하지 못하는 부부… 이들과 상담하면서 매번 느끼는 것은 대부분의 부부들이 피장파장의 오류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논리학에는 피장파장의 오류라는 것이 있다. 이 오류는 상대방도 자신과 같거나 비슷한 상황이므로 자신의 입장이 비록 잘못되기는 했어도 정당화된다고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A가 바람을 피고 있다고 하자. 이를 본 B가 덩달아 바람을 피기 시작한다. 제 삼자인 C가 왜 바람을 피느냐고 B를 다그치자 B는 A도 바람을 피니 자신의 행동이 정당화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피장파장의 오류이다. A가 바람을 핀다고 B가 피는 바람이 정당화 될 수 없다. 바람을 피는 것 자체가 나쁘기 때문에 A도 나쁘고 B도 나쁜 것이다. 이러한 오류는 부부를 상담할 때 마다 발견된다.

목사: 형제님께서 먼저 손 내미세요.
아내: 제가 왜요? 그 사람도 저에게 먼저 손을 안 내미는데요?

목사: 자매님께서 먼저 다가가세요.
남편: 제가 왜요? 그 사람도 제게 다가오지 않는데요?

더 속상한 것은 성경 구절을 인용해 가면서 싸우는 부부들을 만날 때이다. 남편들은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엡 5:22)”를 외우며 아내들을 다그친다. 아내들도 이에 질세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 5:25)”를 외우며 남편들을 다그친다. 이들은 각각의 구절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악용하며 피장파장의 오류에 빠진 것이다.

목사: 형제님께서 아내를 사랑하셔야 합니다.
남편: 제가 왜요? 아내는 제게 복종하지 않는데요?

목사: 자매님께서 남편에게 복종하셔야 합니다.
아내: 제가 왜요? 남편은 저를 사랑하지 않는데요?

성경은 남편들에게 “아내가 네게 복종할 때 그녀를 사랑하라.” 말하지 않는다. 아내가 복종하던 하지 않던 사랑하라고 되어 있다. 아내 사랑은 남편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물론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 아내는 나쁜 아내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내가 복종을 하던 하지 않던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조건적 부사절이 아닌 명령형으로 주신 의무이기 때문이다.

아내들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아내들에게 “남편이 너를 사랑할 때 그에게 복종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남편이 사랑하던 하지 않던 복종하라고 되어 있다. 남편을 향한 복종은 아내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남편은 나쁜 남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아내에게 남편을 복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를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남편에게 사랑을 받던 받지 않던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만 한다.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조건적 부사절이 아닌 명령형으로 주신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을 깨닫고 회복의 길을 걷고자 원하는 부부들은 다음과 같이 결단할 것이다.

남편: 당신이 내게 복종하지 않아도 나는 당신을 사랑할 것이야. 그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본분이거든.

아내: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당신에게 복종할 것이에요. 그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본분이니까요.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당신이 이런 숭고한 결단을 거대담론이라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을 생각해보라. 그 분은 우리의 신랑이시라고 성경이 증거한다. 그 신랑은 창녀와도 같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거룩한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 주셨다. 아버지의 명령에 철저히 복종하심으로써 말이다. 우리는 이런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그 분을 버리고 세상으로 나간다. 돈이 좋아, 명예가 좋아, 권력이 좋아… 마치 고멜이 호세아를 버리고 수 없이 떠나듯이 우리도 그렇게 그 분을 떠난다. 그러나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배은망덕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못자국난 발로 쫓아오사 못자국난 손으로 붙잡으시고 창자국난 가슴으로 품어주신다. 하루에도 수없이 말이다. 결국 나 같은 버러지가 거룩하신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신부로 참여할 수 있는 이유는 나를 내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품어주시는 예수님의 고결하신 사랑 때문이리라. 지난 7년 간 파경에 이른 수 많은 부부들을 상담하면서 그들이 돌아온 경우도 많이 봤고, 돌아오지 못한 경우도 많이 봤다. 돌아온 부부들로부터 발견된 공통점은 둘 중에 하나가 먼저 피장파장의 오류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사랑과 헌신을 상대방을 향하여 먼저 실천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 때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던 책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를 안다. 그렇다면 부부생활의 시금석이라고 불리 정도로 유명했던 이 책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의 관심사에서 멀어진 이유를 아는가? 이 책을 쓴 사람도 이혼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행복한 가정은 단지 안다고 잘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님을 발견할 수 있다. 오직 알고 행동하는 자들이 만들 수 있는 것이 행복한 가정이다. 그래서 성경은 오늘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행하도록 명하신다.

남편들이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 복된 말씀을 받고 지키는 부부들에게 아름다운 가정을 일구고 만드는 축복이 있을 찌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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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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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강훈 / 9월 18 2014 8:21 오후

    아멘. 은혜받았어요. 좋은 부부가 되도록 노력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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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nghwan A. Lee / 9월 19 2014 5:36 오전

      이 목사님, 이렇게 방문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글 까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보고싶습니다! 🙂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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