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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2014 / Sanghwan A. Lee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

비교적 어린 나이에 담임 목회를 하다 보니 훈수(訓手)두는 연장자들이 퍽 많습니다. “졸(卒)을 올려라,” “차(車)를 내려라,” “마(馬)로 막지 말고 포(包)로 막아라.” 그러나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훈수들 속에서 정작 도움이 되는 것은 한 두 개 뿐입니다. 나머지는 쓸데없거나 해롭기까지 하죠. 그러므로 저는 사리분별을 위해 늘 깨어있어야만 합니다.  하루는 한 교인이 밥상을 차려주며 이렇게 조언하더군요.

목사도 사람이니 너무 참다 보면 화병 생긴다. 혹 누가 힘들게 하면 뒤 골목으로 끌고가 흠씬 패줘라.

제가 그 조언을 따랐다면 그 사람이 제일 먼저 맞았을 겝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위해서 던져지는 훈수가 때때로 저를 망치는 한 수일 때가 더 많음을 알기 때문이죠.

그래도 이런 훈수는 괜찮습니다. 정말 해로운 훈수는 중도(中道)라는 가면을 쓰고 오는 타협(妥協)입니다. 중도의 길을 택하면 저만 망가지지 않습니다. 교회도 망가지고 성도도 죽습니다. 성경이 계시하는 생명의 길은 좁은 길뿐이기에 넓은 길을 사이로 또 하나의 길을 내는 것은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죽이는 길입니다. 본질에 있어서 고기양단(叩其兩端)적 태도는 청산가리일 뿐이지요. 고로 여러 종류의 훈수를 받는 저는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판단(判斷)이란 단어를 한자로 보면 칼 도(刀)자와 도끼 근(斤)자가 들어있습니다. 끊을 때는 확실하게 끊는 것이 판단의 관건이라는 말이죠. 제겐 감사하게도 칼과 도끼보다 더 날카로운 판단의 척도가 있습니다. 좌우에 날 선 검과 같은 성경입니다. 성경은 저로 하여금 취해야 할 것과 잘라내야 할 것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잘못된 훈수들이 미숙한 제 경험과 설익은 제 지혜를 상대로 환각술을 부릴 때, 그 환각의 안개를 걷고 진실을 보게 하지요.

그러나…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는 법. 환각술이 걷힌 후에 제게 남겨지는 것은 홀로서기 뿐입니다. 진리를 선택한 대가라고나 할까요? 진리는 홀로 서게 합니다. 함께 있지만 멀리 있게 합니다. 마주 보지만 다른 곳을 보게 합니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 바로 이런 뜻일 겝니다. 빌라도의 법정에 혼자 스셨던 예수님처럼, 공회 앞에 홀로 섰던 바울 선생처럼, 진리를 선택하면 세상의 법정 앞에 덩그러니 홀로 서게 되는 제가 있습니다. 훈수를 두던 자들은 더 이상 친구이기를 거부하며 하루 아침에 적(敵) 아닌 적(敵)이 되지요. 그 때부터 더 외로운 싸움이 시작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엘파소는 하늘이 넓습니다. 드넓은 하늘 아래 펼쳐진 땅은 더 없이 광활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땅이 넓다고 해서 진리의 길까지 더 넓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길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지독히도 좁기만 합니다. 불변하는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내신 길이라 그런지 길의 폭도 불변하는가 봅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하늘 아래에 난 땅 위의 길도 그럴 테지요.

오늘 아침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이라는 공자의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진리의 길은 반드시 함께 하려는 이웃이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는 뜻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외롭다고 생각하며 좁은 길을 걷고 있던 저였지만 자세히 보니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옆에서 변함없이 저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마누라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녀의 검은 머리가 하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지금처럼 제 손만 잡아준다면 그렇게 쓸쓸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멀리서 절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는 블로그의 친구들도 있습니다. 사실 “친구”라고 부를 면목은 없습니다. 저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은 백 명도 채 안되기 때문이지요.  다들 이 사람 저 사람을 통해 “친구”가 된 건너건너 친구랍니다.  그러나 그게 뭐 그리 중요하나요? 이곳 저곳에서 외롭게 좁은 길 걷는 사람끼리 이렇게라도 엮어져 서로 울고 웃으며 등 두드려 주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데? 그렇게라도 서로 좁은 길 걷는 외로움을 달랠 수만 있다면 감지덕지입니다. 물론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아닌지라 함께 막걸리 잔 기울일 날 고대하며 애환(哀歡)을 토로하진 않지만 주 예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뵐 그 날을 고대하며 애환을 토로하기에 친구 보다 더 가까운 형제, 자매입니다. 이런 사실이 그저 감사한 아침입니다.

사랑하는 블로그 친구분들, 힘내세요.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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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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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im0hun / 10월 15 2014 8:20 오후

    목사님께서도 힘 내세요.^^ 샬롬! 오늘 하루 참 제 스스로가 초라해지는 하루였고 아쉬운 날이었는데, 이 글이 마치 제 옆에서 위로해 주는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Liked by 1명

    • Sanghwan A. Lee / 10월 15 2014 9:43 오후

      제게도 형제님과 같은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힘이 납니다! 화이팅!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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