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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2014 / Sanghwan A. Lee

사후세계 간증

문제 제기: 요즈음 이곳 저곳에서 사후세계를 다녀왔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영화나 책들이 만들어 지고 있고, 그들을 초대하는 간증 집회까지 열리고 있다.  “Heaven is for Real”등이 상영되고, “A Divine Revelation of Hell,”“23 minutes in Hell”등이 출판되며, Jennifer Perez와 Queen Dixson등이 적잖게 간증하러 다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의 말에 얼만큼 신빙성을 둘 수 있는지를 묻기 전에 잠시 누가복음 16:19~31로 가 보자.  여기에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으니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다.  사실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으면서도 가장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반쪽만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하며 사후세계 간증의 필요성에 대해서 검증하도록 할 것이다.  이 글의 취지는 저들의 간증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간증의 필요성 여부에 관한 것임을 다시 한 번 밝혀 둔다.

알려진 반쪽: 하나님을 모르던 부자와 알던 거지 나사로가 죽었다.  부자는 음부로 갔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다.  (음부가 무저갱인지 지옥인지, 아브라함의 품이 낙원인지 천국인지는 이 글에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부자와 나사로가 죽었고, 서로 다른 사후세계로 갔다는 것이다.)  음부에 간 부자는 뜨거운 불꽃 가운데서 목이 타 들어가는 갈증과 고통을 호소하며 다른 곳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물을 달라 호소하지만 아브라함은 둘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여기까지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부분이다.

가려진 반쪽: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뒤에 부자와 아브라함이 주고받은 이야기가 더 있으니 사후세계의 간증을 요구하는 부자와 그것을 거절하는 아브라함의 대화이다.  부자의 요구를 들어보자.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여기에 “증언”이라고 번역된 헬라어(διαμαρτύρομαι)는 ‘어떠한 사건을 직접 목격한 사람의 증언’을 의미한다.  즉 이미 죽어 아브라함의 품 속에 들어간 나사로를 다시 세상으로 보내 사후세계에 대해서 간증해 달라는 말이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반응했을까?  아주 매몰차게 거절한다.  헌데 거절의 이유가 아주 특이하다.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모세와 선지자들로부터 사후세계에 대해서 들을 수 있으니 나사로의 간증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들으라니…  그 당시에 모세와 선지자는 없었다.  그들은 흙으로 돌아 간지 벌써 오래 되었다.  헌데 어찌 그들로부터 사후세계에 대해서 들을 수 있단 말인가?  여기에 중요한 사실이 있다.  “모세와 선지자들”이라는 표현은 유대인들이 성경을 일컫던 표현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천국과 지옥에 다녀온 자들의 간증이 영혼 구원에 필요 없다는 말이다. 성경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John MacEvilly는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사후 세계에 대한 성경 이외의 또 다른 간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가르친다.  사후세계의 상급과 형벌, 영생을 얻는 길, 영원한 지옥 형벌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길 등을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이 모든 것들이 들어있다.

본문 속의 아브라함도 이러한 이유로 부자의 요구를 거절한 것이다.  그러나 계시를 믿지 않았던 부자는 경험에 호소하며 또 다시 부탁한다.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죽었던 자가 살아 돌아가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간증하면 영혼 구원이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부자의 말 속에는 ‘계시에 바탕을 둔 성경의 말씀보다 경험에 바탕을 둔 인간의 간증이 더 효과적으로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계시 위에 경험을 두기 원하는 신비주의적 발상을 본다.  “백문이 불여 일견”이라는 경험성을 “백견이 불여 일문”이라는 계시성 위에 두려는 작금의 실태가 이것이 아니던가?  “보여주소서!  그러면 믿겠나이다!”  “만지게 하소서!  그러면 믿겠나이다!”  “느끼게 하소서!  그러면 믿겠나이다!”  그러나 성경은 단호하게 말한다.  “아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아브라함은 부자의 요구를 또 다시 거절한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부자의 요구는 두 번이나 거절되었다.

Prima Scriptura: 웨슬리안 4변형(Wesleyan Quadrilateral)이라는 교리가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1) 경험, (2) 이성, (3) 전통, (4) 성경의 네 권위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두는 자들이 기독교인이라는 가르침이다.  탁월한 가르침이다.  예전에 Wesleyan Quadrilateral을 바르트의 The Doctrine of the Word of God과 비교하며 쓴 논문에서 이런 말을 쓴 적이 있다.

웨슬리안 4변형이 말하는 네 가지의 권위 중 무엇을 최고의 권위로 두느냐에 따라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의 모습이 바뀐다: (1) 경험을 최고 권위로 두면 신비주의자가 되고, (2) 이성을 최고 권위로 두면 합리주의자가 되며, (3) 전통을 최고 권위로 두면 전통주의자가 되고, (4) 말씀을 최고 권위로 두면 그리스도인이 된다…  교회당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성도인 것처럼 모여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신비주의자, 합리주의자, 전통주의자이고 소수의 사람들만 그리스도인이다.  말씀을 최고의 권위로 두는 자들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은 사후 세계에 대한 간증을 전혀 믿지 않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니요, 저도 믿기는 합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를 너무 꽉 막힌 사람으로 보지는 말라.  나도 믿는 간증이 있다.  단지 모든 간증을 다 믿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우선 들어보고 나서 믿을 수 있는 간증과 그럴 수 없는 간증을 추려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추려내고 추려낸 끝에 믿을 수 있는 두 사람을 찾았다.  그들이 누구인지 아는가?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이다.  내가 이 들의 간증을 믿을 수 있는 이유는 가장 재미있고 극적으로 간증했기 때문이 아니다.  단순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끼리 말하자면 이들의 간증은 다른 사람들의 간증과 비교해 볼 때에 가장 재미없고 지루하다.  극적이지도 반전적이지도 않다.  게다가 내용도 가장 적다.  한 사람은 사후세계에 대해서 함구했고, 또 한 사람은 대부분을 각주처리 하고 예수님을 부각시키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들의 간증은 물음표들을 느낌표로 바꿔주거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지는 못한다.  헌데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니 충분 그 이상이다.  그들의 간증을 통하여 내게 주어지는 분량은 내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허락된 충족한 분량이기 때문이다.  사후세계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궁금하거나 답답하지 않냐고?  물론 그렇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마치 한참 후에 나올 영화의 Preview를 보면서 영화의 개막 날을 학수고대 하듯이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천국을 기다리련다.  개봉박두의 그 날을 손꼽으며 기다리는 재미도 쏠쏠하니 말이다.

맺으며: 그리스도인은 천국과 지옥을 믿는다.  다녀 왔기 때문이 아니다.  간증을 들었기 때문도 아니다.  성경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천국을 믿는 이유는 성경이 증거하기 때문이다.  지옥을 믿는 이유도 성경이 증거하기 때문이다.  심판과 상급과 영원을 믿는 이유도 성경이 증거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믿음은 성경에서 시작되어 성경을 거쳐 성경에서 끝난다.  오직 성경만이 우리 삶의 최고 권위이며 신앙의 최종적 권위이다.  성경 하나로 우리 모든 영적 열망은 충족된다.  우리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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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북: https://www.facebook.com/sanghwan.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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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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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영 / 9월 26 2014 5:30 오전

    목사님, 잘 읽었습니다. Wesleyan Quadrilateral을 바르트의 The Doctrine of the Word of God과 비교하며 쓴 논문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Liked by 1명

  2. 두렙돈 / 11월 2 2014 5:10 오후

    페이스북에 릭네임 ‘두렙돈’ 으로 댓글을 남기던 청년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항상 도움이 되는 글들을 남겨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제가 페북을 탈퇴한지라 블로그에 종종 방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Liked by 1명

    • Sanghwan A. Lee / 11월 2 2014 5:56 오후

      네, 기억에 납니다. 안녕하시지요? 이곳을 통하여 종종 교제하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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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홍기환 / 8월 11 2015 12:20 오전

    역시 말씀으로 풀이하는 강해 설교가 으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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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Peasant Park / 6월 26 2016 10:56 오전

    목사님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김선영님의 댓글 내용 더 잘 알기 원합니다.
    경건의 능력은 어떤 모습이 아니라 진리가 아닌것으로 부터 돌아서는 힘인데… The Bible Is Enough! 아멘입니다.
    더욱 올바르고 진실한 글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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