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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2014 / Sanghwan A. Lee

물과 기름이 섞일 때 목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물과 기름이 섞일 때: 누가복음 23:11~12절에는 씁쓸한 장면이 등장한다.  서로 섞이지 않던 물과 기름이 좋지 못한 일로 인해 섞인 것이다.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이 구절에 따르면 헤롯과 빌라도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원수”관계였다.  “원수”라고 번역된 헬라어(ἔχθρα)는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증오로 인한 적대 관계를 뜻한다.  성경은 의와 죄의 대립관계, 거룩과 부정의 대립관계, 영과 육의 대립관계 등을 나타내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한다.  즉 헤롯과 빌라도는 절대로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양극 관계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성경은 침묵하지만 아마도 정치적, 인종적, 사회적 등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신학자들은 추측한다.  자세한 원인을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이 둘은 원수 관계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둘이 “서로 친구”가 되는 계기가 생긴다.  “서로”라고 번역된 헬라어(ἀλλήλων)는 상호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로써 헤롯과 빌라도의 마음이 서로 닿았고 통했다는 뜻이 된다.  원수였던 둘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서로 죽일 듯이 미워하던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 가지 일이 일어났다.  예수님을 우롱하고 희롱하는 일이다.  원수였던 헤롯과 빌라도는 예수님을 모욕하는 것을 계기로 친구가 된 것이다.
너무 놀라지는 말자.  이러한 일은 예부터 일어나고 있는 자명한 일이니 말이다.  서로 원수였던 종교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도, 정치파 헤로디안과 열심당원들도 예수님을 대적하기 위해 섞이지 않았던가?  이처럼 서로 원수였던 헤롯과 빌라도도 섞인 것이다.  이것이 이 시대의 상황이다.  비본질적인 것들은 서로 물어 뜯고 죽이려 하다가도 본질적인 것이 오면 서로 섞여 본질적인 것에 대항하기 시작한다.  어둠과 어둠도 서로 못 잡아 먹을 듯 헐뜯다가 빛이 오면 서로 섞여 빛에 대항하기 시작한다.  더러운 것과 더러운 것들도 서로 죽일 듯이 싸우다가 거룩한 것이 오면 서로 섞여 거룩한 것에 대항하기 시작한다.  개똥, 소똥, 말똥, 새똥 들이 거룩한 생명의 떡이 오면 그것을 대적하고자 뭉치는 꼴이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세상은 요지경: 요즈음 평소에 서로 다른 색깔, 모양, 냄새를 지니고 있던 무리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와 질서를 대적하기 위해 조금씩 뭉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평소에 서로 ‘좋아요’를 누르지 않던 자들도 서로(ἀλλήλων) 누르기 시작했고, 댓 글을 쓰지 않던 사람들도 서로(ἀλλήλων) 쓰기 시작했으며,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도 서로(ἀλλήλων) 약속을 정해 만남을 갖기 시작했다. 평소에 원수였던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와 질서를 대적하기 위해서 서로(ἀλλήλων) 닿았고 통한 것이다. 뭐, 세상은 요지경이니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는 이러한 선동의 최선두에 목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할 말과 하지 못할 말을 분별하지 못하고 감정에만 사로잡혀 느끼는 대로 말하는 그들로 인해 진리가 아닌 것들이 하나로 뭉치고 있으니 개탄을 금하지 못할 노릇이다. 물론 목사들도 대한민국을 사랑하기에 정치적 색깔이 있고 이념과 신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내용들은 팔로워들이 몇 천명이나 있는 목사가 자신의 담벼락에 쓸 내용은 아니지 않은가? 수 천명의 성도들 앞에서 설교로 할 내용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함께 금식하며 기도하자고 말해도 부족할 목사들이 최전선에서 선동질을 하면 안되지 않은가? 만약 당신이 나를 바라보며 “기도만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가?”라고 말한다면 백 번, 천 번 당신 말이 옳다고 맞장구 치겠다. 그러나 목사들에게는, 정말 목사들에게는 때때로 소리 없이 묵묵히 기도만 해야 할 때가 있다. 아무리 목청 높여 소리지르고 싶어도 입을 틀어 막고 눈물만 흘려야 할 때가 있고, 아무리 행동하고 싶어도 발목을 부여잡고 무릎만 꿇어야 할 때가 있다. 그 때가 바로 지금이다. 시국이 뒤숭숭한 이 때에 목사가 해야 할 일은 선동질이 아니라 기도이다. 페북에 욕지거리를 쓰는 것이 아니라 무릎 꿇음이다. 동영상에 특정 지역 사람들을 험담하고 올리는 게 아니라 금식하는 것이다. 목사가 만약 해야할 일은 하지 않고 선동질만 한다면 정치꾼일 뿐이다.
선동질 하는 목사들이여! 당신이 대한민국을 가슴에 담고 한 시간 이상 기도한 적이 언제인가? 대한민국을 마음에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 적이 언제인가? 대한민국을 심장에 품고 금식한 적이 언제인가? 당신이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목사라면 담벼락에 욕지거리나, 비방의 글이나, 정치적 선동의 글을 쓰기 이전에 이것들부터 해야 함이 옳지 않은가? 당신은 우파(右派)나 좌파(左派)이기 이전에 신파(神派)여야 하지 않은가? 당신이 평소에 거들떠 보지도 않던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 12:15b)”는 구절을 사용하기 원한다면 바로 그 위에 있는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 12:14)”는 구절도 함께 사용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우는 자들로 함께 울고 싶다면 울어라. 지금껏 한 번도 울어보지 못했던 사람처럼 실컷 울어라. 그러나 선동질은 하지 말아라.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목사가 하려고 할 때 추해진다.”는 말이 있다. 목사가 세상을 바꾸려 할 때 목사는 추해진다는 것이다. 목사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제아무리 사람들을 선동하여 무리를 짓고 한 목소리를 낸다 할지라도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세상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바뀌는 것이지 목사의 선동질을 통하여 바뀌는 것이 아니다. 목사는, 정말 목사는 담대히 예수님을 선포하고 묵묵히 나라와 통치자와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며 잠잠히 말씀 따라 살아감으로 세상과 싸워야 하는 직분인 게다.

왕을 존대하라: 끝으로 베드로 전서 2:17d를 보자.  “왕을 존대하라”는 구절이 있다.  “존대”라고 번역된 헬라어(φοβεῖσθε)는 현재형 중간태 명령어로써 격언적 용법으로 분류된다.  격언적 용법이란 남녀노소, 동서고금,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언제나, 어디에서나 지켜야 하는 일을 나타낸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던지 왕을 존대해야 함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사실이 무엇인지 아는가?  베드로가 “왕을 존대하라”는 말을 했을 때는 종교적 핍박이 있던 시대였다는 것이다.  정확히 어떤 왕이 통치하고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나 분명한 것은 산헤드린과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한 종교 핍박을 베드로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왕을 존대하라”고 말한 것이다.  잠깐…  베드로가 정신이 나간 것인가?  열심당원들을 모아 쿠데타를 일으켜야 할 이 판국에 왕을 존대하라니!  베드로가 단단히 미친 것인가?  아니다.  그는 미치지 않았다.  아니.  미쳤다.  단단히 미쳤다.  무력으로 나라를 탈환하지 아니하시고, 권력으로 당을 지어 궐기하지 아니하시며, 능력으로 열 두 영이 더 되는 천사들을 모아 땅을 뒤엎지 아니하신 그 분, 예수 그리스도에게 단단히 미쳤다.  그래서 대대적인 기독교 핍박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왕이나 나라를 향해 대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대신 쏟아지는 환란과 핍박과 고통 속에서도 왕을 위해서 기도했다.  목 앞에 시퍼런 칼날이 놓이고, 굶주린 사자가 문 바로 뒤에서 으르렁 대며, 사지를 찢어 죽일 사형도구가 눈 앞에 있다 할지라도 왕을 존대했다.  그 왕이 좋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이 생명보다 사랑하는 예수님의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하는 자가 목사이건만 그들이 정치적 최전선에서 나라를 향한 비난과 힐난을 선동질 하는 것은 개탄할 노릇이 아닌가?

목사가 할 일: 목사인 우리는

선동은 정치인들에게 맡기고 눈물과 콧물로 기도해야 한다.
함께 울며 불며 나라와 대통령과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함께 금식하며 고통 받고 상처받은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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