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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2014 / Sanghwan A. Lee

“예수님의 아내 복음”에 대한 근황(近況) 업데이트

서론: 지난번에 “예수님의 아내”에 대한 글을 쓴 이후로 몇 주가 지났다. 그 사이에 보수나 자유 진영에서 사본에 대한 연구는 쉬지 않고 이루어졌고 사본의 진위 여부에 대한 갑론을박은 점점 종착역에 도달하고 있다. 내가 “예수님의 아내”에 대한 글을 올렸던 날짜가 4월 11일 이니 딱 2주가 흘렀다. 그 동안 이루어진 사본학자들의 연구를 종합하여 업데이트 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되어 이곳을 통해 나누도록 한다.

본론: “예수님의 아내의 복음” 조각은 6세기 이전에 완전히 사라져버린 콥틱 방언 리코폴리탄어로 쓰였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의 아내의 복음” 조각이 6세기 이전에 쓰인 문서 조각인 것 처럼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해 아래 완전 범죄는 없는 법. “예수님의 아내의 복음” 조각을 쓴 사람이 저지른 몇 가지 치명적인 실수가 발견되었다.

(1) 8세기의 도구와 6세기에 사라진 언어: 어떻게 8세기의 도구 위에 200년 전에 완전히 사라진 리코폴리탄어가 사용될 수 있을까? 200년 만에 사라졌던 언어가 갑자기 부활한 것일까? 혹은 한 사람이 아무도 몰래 자손들에게 전수했는데 우연히도 그 자손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의 아내의 복음”을 기록한 후 언어 전수를 멈춘 것일까? 물론 확률적인 가능성을 따지자면 그럴 수도 있기에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희박하다 못해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8세기의 도구 위에 200년 전에 사라진 리코폴리탄어가 사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가지 논리적 가능성이 있다. 1945년에 발견된 콥틱 도마 복음이나 Herbert Thompson에 의해 1924에 출판된 요한복음 콥틱 코덱스를 모방하여 날조했다면 가능하다.

(2) 콥틱 “요한복음” 조각의 등장: Dr. King이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예수님의 아내의 복음” 조각을 구입할 때에 또 하나의 콥틱 조각을 구입했다. 콥틱 “요한복음” 조각이다. 지금까지 가려져 있던 이 조각이 2주전에 공개되었다. 

콥틱 요한 복음 조각

헌데 이게 웬걸? 이 콥틱 조각도 리코폴리탄어로 쓰여 있는 것이 아닌가? 우연의 일치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설명하겠다.
리코폴리탄 언어로 쓰인 요한복음 코덱스는 두개가 있다. 그 중에 하나는 Flinders Petrie가 이집트의 쿠아에서 발견한 것으로써 Herbert Thompson에 의해 1924년에 편집되어 출판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사실은 “예수님의 아내의 복음”과 함께 구입된 콥틱 “요한복음” 조각이 쿠아 코덱스와 모든 줄의 시작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쿠아 코덱스에 있는 두 줄이 한 줄로 병합된 부분도 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될 수 없다. 당신이 이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한다면 원숭이가 아무렇게나 타자를 쳤더니 허균의 홍길동전이 완성되었다는 소리와 일반이다. 물론 확률적인 가능성을 따지자면 그럴 수도 있기에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논리적 타당성을 본다면 역시 희박하다 못해 불가능에 가깝다. 

비교 1비교 2

(3) 두 지방 사투리의 불일치적 조합: 미국 사람이 경상도와 전라도의 사투리를 구별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만약 이 사투리가 완전히 없어져 단 몇개의 글 조각으로만 남게 되었을 경우에는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구별하기는 거의 불가능이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고 콥틱 “요한복음” 조각을 보면 한 가지 유치한 문법적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 리코폴리탄어에 사히딕어가 맞지 않는 형태로 들어간 것이다. 두 지방의 방언을 잘 알지 못한채 교묘하게 섞어 쓰려던 현대 아마추어 날조자가 실수한 것이다. 콥틱 전문가들은 이러한 모든 정황으로 봐서 Dr. King이 구입한 콥틱 “요한복음” 조각은 1924년에 출판된 요한복음 콥틱 코덱스로부터 복제된 100% 날조품이라고 만장일치 판단했다.

오류

(4) 콥틱 “요한복음” 조각과 필체와 잉크, 글을 쓴 도구가 일치하는 “예수님의 아내의 복음” 조각: 자신의 필체를 숨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아무리 속이기 위해 노력을 해도 손에 배인 습관을 머리가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수가 “예수님의 아내의 복음”에도 발견되었다. 콥틱 전문가인 Dr. Choat와 Dr. Schwendner는 두 조각들을 면밀히 검사해 본 후 두 조각은 동일한 사람에 의해 동일한 붓과 동일한 잉크로 쓰인 것이라고 판단했다. 

비교

이성에의 호소: 우리는 여기에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위에 언급했듯이 “예수님의 아내 복음”과 함께 구입된 콥틱 “요한복음” 조각은 가짜임이 판명되었다. 그런 가짜를 쓴 사람이 “예수님의 아내 복음”도 썼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 위에 남은 것은 이제 “예수님의 아내의 복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바라보겠는가?

결론: 완벽한 범죄는 없다. 인간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2,000년 동안 수많은 적들로부터 가지각색의 모함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 때 마다 모든 역경을 헤치고 오늘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진리를 추구하고 그를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성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들은 오늘도 사본학과 같은 세련된 접근법으로 기독교를 파산시키려 노력하지만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치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골방에 들어가 사본을 연구하는 이름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있기에 기독교는 여전히 아름답다. 그렇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진리추구를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희생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성도들이 있는한 기독교는 변개 될 수도 변질 될 수도 없다.

추신: Dr. Askeland, Dr. Choat, Dr. Schwendner, Dr. Suciu, Dr. Wallace와 같은 사람들께 깊은 경의와 존경을 표하며 그들의 노고에 기립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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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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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정훈 / 4월 25 2014 1:22 오후

    잘 정리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시간이 무척이나 많이 든 작업인게 보여요. 힘드시더라도 저같은 자를 위해서 계속 글 올려주세요. 신앙에 큰 도움을 받습니다.

    Liked by 1명

    • Sanghwan A. Lee / 4월 25 2014 2:10 오후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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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정자 / 4월 25 2014 6:10 오후

        ^^*너무 무지하여 읽어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고개를 끄덕이며 거짓이 거짓임을 알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Liked by 1명

      • Sanghwan A. Lee / 4월 25 2014 6:24 오후

        어렵게 써서 죄송합니다. 위에 내용들 다 기억하실 필요 없어요. 그냥 “예수님의 아내의 복음” 조각이 가짜라고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하… 🙂

        Liked by 1명

  2. Monica / 1월 29 2016 3:49 오후

    윗 글들과 더불어 차근차근 잘 보고있습니다. 결론에 도달할 때 즘 언제나 뜨거운 감사와 아멘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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