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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1/2014 / Sanghwan A. Lee

예수님의 아내

문제 제기: “예수님의 아내가 존재했었다?” 몇 해 전부터 신학자들의 탁자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주제이다. 하버드 대학의 Karen King 교수의 학자답지 않은 당돌한 행동 때문이었다. 그녀는 작은 콥틱 조각 하나를 알 수 없는 한 사람으로부터 보게 된 후 그 안에 예수님의 아내를 언급하는 것 같은 문구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는 곧바로 “예수의 아내의 복음”이라는 이름을 파편 조각에 붙인 후 세상에 내놓았다. 이로 인한 파장은 커져갔고 21세기의 승리는 자유주의 진영으로 기우는 듯 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콥틱 조각의 내용: 이 작은 콥틱 조각에 대해서 갑론을박을 벌이기 전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부터 알아보자. 아래는 Durham University의 신약학 교수인 Francis Watson의 콥트어 번역을 한국어로 재 번역한 것이며 *표는 손상되거나 찢겨져 나가 판독할 수 없는 단어를 추측하여 적은 것임을 밝혀둔다.

앞

[앞]

1. 아니다… 나.  내 어머니가 나에게 삶*을 주었다.

2. 그 제자들이 예수께 말했다.

3. 부인하라.  마리아는 그럴 가치가 있다.

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했다.  “내 아내”

5. 그녀도 내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6. 죄인들을 증가하게 하라

7. 나는 그녀와 함께 산다

8. 하나의 모습

뒤

[뒤]

1. 내 어머니*

2. 셋

3. …

4. 앞…

5. (판독 불가)

역사적 고찰: 킹 교수는 위의 콥틱 조각의 연대가 4~5세기로 추정되며 2 세기의 헬라어 사본으로부터 번역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고서 검증 가들의 판독 결과와 탄소 연대 측정법의 과학적 분석이 7세기에서 10세기의 것으로 나오자 자신의 주장이 틀렸음을 인정하며 8세기 중반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정정했다.
이 문서가 8세기의 중반에 써졌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을 전달한다. 이 조각에는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인 이슬람적 요소가 스며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선지자 무하마드가 아라비아를 통합한 후 원대한 꿈을 꾸고 건설과 정복 전쟁을 시작한 것은 622년이다. 그 때 부터 이슬람은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이집트와 북 아프리카까지 정복해 갔다. 우리가 알다시피 정복된 민족은 정복한 민족의 종교에 영향을 받는다. 멕시코에 천주교가 많은 이유는 스페인 때문이 아니던가? 이처럼 이슬람에게 정복당한 국가들은 이슬람교의 영향을 시나브로 받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할 것은 이집트 정복이다. 639년에 시작된 이집트 정복은 641년에 알렉산드리아가 함락됨으로 단 2년 만에 끝난다. 당연히 그 때 부터 이집트가 영향을 받게 된 것은 이슬람교이다. 오랫동안 기독교 국가였던 이집트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지 않고 일개의 선지자로 보고, 예수님께서 독신으로 살지 않고 결혼을 했다고 주장하는 이슬람의 신앙을 접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주장들은 이집트의 사람들의 신앙에 흡수되어 들어갔고, 그들의 혼합 신앙은 곧 문자로 기표화 되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배경 속에서 써진 문서가 콥틱 문서이다. 그래서 Edinburgh의 신약학자 Larry Hurtado는 이슬람교가 주장하는 가짜 예수의 모습이 8세기에 쓰인 콥틱 조각에 담겨 있을 가능성을 배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럴 경우 예수님의 아내에 대해서 기록된 파편은 8세기에 만들어진 허구일 뿐이라는 말이다.

논리적 고찰: 진화론의 가장 큰 약점은 종과 종 사이의 진화 과정을 담고 있는 연결 고리가 없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의 말처럼 수억 년 동안 진화가 이루어진 것이라면 원숭이의 꼬리가 조금씩 없어져 사람이 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 화석이 발견되어야 하는데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 물고기가 사람이 되었다면 물고기에 사람의 다리가 조금씩 생기는 과정이 담겨진 화석이 발견되어야 하는데 역시 하나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진화론에 있는 치명적인 논리적 약점이다. 이러한 약점이 위의 콥틱 조각에도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님께서 사셨던 시대는 1세기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콥틱 조각은 8세기 중반에 쓰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글이 쓰인 재료가 8세기의 것이니 글은 그 후에 쓰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가능성을 제외한다 할지라도 역사적 예수님께서 사셨던 시대와 파편 조각 사이에는 약 800년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시간의 격차가 있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예수님의 아내에 대해서 언급하는 검증된 문서들이 있을까? 없다. 단 하나도 없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기간이 채 못 되는 시간동안 발견된 사본의 수를 세자면 헬라어 사본들만 봐도 총 5,745개 이상이고, 라틴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까지 치면 10,000개가 족히 넘으며, 성경 인용문구만 찾아도 1,000,000,000개가 훨씬 넘는다. 이러한 문서들 속에 예수님의 아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오직 8세기에 발견된 콥틱 파편에만 그 이야기가 나온다. 진화론으로 치자면 중간 화석이 없는 셈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이슬람의 혼합교리를 받아들인 8세기의 한 콥틱 사람의 손에 의해 처음으로 써진 것임을 강력히 지지한다.

정황적 고찰: 사본학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 콥틱 문서는 허위, 위조, 날조로 유명하다는 것이다. 당신은 “가롯 유다는 몸이 뚱뚱했다,” “가롯 유다는 몸에 구더기가 들끓었다,” “가롯 유다가 마차를 타려다가 문에 부딪혔는데, 그 때 입은 외상에 의해 몸이 찢어지자 그곳에서 구더기가 쏟아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내용이 어디에 나온 지 아는가? 콥틱 문서들이다. “남자와 여자를 하나로 만들어 남자는 남자가 아니고 여자는 여자가 아닐 때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내가 마리아를 남자로 만들어 천국으로 인도하겠다”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자신을 남성으로 변화 시키는 여성들은 천국에 가리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역시 콥틱 문서들이다. 콥틱 문서들은 지금까지 발견된 사본들 중에서 가장 믿을 수 없으며, 그 종류만 봐도 영지 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것과 여러 개의 종교들을 한데 혼합한 관점에서 쓰인 것, 그리고 이것들과 전혀 일관성 없게 쓰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성서학자들, 특히 원문 비평가들은 콥틱 문서를 번역의 정도나 그 시대의 상황을 추적하는 용도로 사용하지 역사성을 보기 위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버드의 King교수는 이러한 정황들을 일절 생략한 채 마치 콥틱 조각에 기록된 내용이 역사적 신빙성을 담아내고 있다는 듯이 “예수의 아내의 복음”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학자로써 비판받아 마땅한 태도다. 신빙성이 없는 콥틱 조각에 “복음”이라는 말을 붙이다니 말이다.
또 하나를 지적하자면 예수의 아내에 대한 내용이 담긴 콥틱 조각은 말 그대로 조각이라는 것이다. 책도 아니고, 문서도 아니라 조각이다. 이러한 적은 양의 조각에다가 “복음”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다. 이 작은 조각이 “복음”이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충분한 사본의 양과 비교할 수 있는 검증 자료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눈앞에 있는 것은 출처도 알 수 없는 작은 조각 하나이다. 어떻게 이것을 “복음”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문맥적 고찰: 조금 전에도 지적했지만 예수의 아내에 대한 내용이 담긴 것은 조각이다. 그런데 그 조각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조금 묘하다. 위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왼쪽, 오른 쪽, 아래쪽은 뜯겨있지만 윗부분만큼은 반듯하게 잘려져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할 부분은 위쪽이다. 왜 윗부분은 반듯하게 잘려진 것일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잘랐다는 것이다. 사본 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그 이유를 바로 제시할 수 있다. 이것은 고대 문서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쉽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 사람이 고대 문서를 발견했다고 하자. 그 사람은 그 문서를 통째로 팔지 않는다. 그 대신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판다. 그래야 하나를 파는 것 보다 더 많은 돈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논하고 있는 콥틱 조각도 그렇다. 이 문서의 왼 편과 오른 편, 그리고 아래편은 오래 전에 손실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윗부분은 아니다. 윗부분은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잘려졌다. 그러므로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어떤 문맥을 이루고 있는지가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어야만 한다. 즉 위에 잘려나간 부분을 발견하기 전 까지는 아래에 있는 내용을 가지고 어떤 결론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언어의 법칙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들은 콥틱 조각의 윗부분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려는 하지 않는다. 단지 이 작은 조각이 모든 것을 다 이야기 하는 것처럼 생각하여 그 내용을 전체화 하려 한다. 이들이 그렇게 행동한다면 보수진영 쪽에서도 다음과 같이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예로 들어 이 콥틱 조각이 기독교의 진위 문서라고 치자. 그럴 경우 예수님의 아내에 대해서 만들어 질 수 있는 가능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콥틱 조각의 3번째와 4번째 줄을 보면 “마리아는 그럴 가치가 있다”는 문장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했다. ‘내 아내’”라는 문장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예수께서 말한 “아내”는 마리아를 가리킨다고 단정할 수 없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조각의 오른 편이 뜯겨져 나가 있기에 3번째 줄의 끝 단어와 4번째 줄의 첫 단어 사이에는 몇 개의 단어나 문장이 생략되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조각 안의 예수가 말한 “아내”는 정경 안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룩한 신부”인 “교회”로 해석될 가능성도 있다. 즉 문맥적으로 볼 때에 예수님의 아내가 문자적 아내가 아니라 예수님의 비유적 신부인 교회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 하나 만들어 질 수 있는 극단적 해석도 있다. 음모론이다.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이 일부러 저 부분에서 문서를 조각내어 문맥을 떠나 해석될 수 없는 내용을 세상에 내 놓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많은 기독교인들의 믿음을 파산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손실된 콥틱 조각으로는 아무런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자료가 필요하고, 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콥틱 전문가들의 입장: 콥틱 전문가 Leo Depuydt는 이 모든 정황으로 봐서 콥틱 문서 조각이 날조된 것임이 100% 확실하다고 말했고, Malcolm Choat도 이 콥틱 조각의 발견이 내용의 사실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으며, Christian Askeland도 이 문서를 규명하기 위한 모임에 참여한 전문가들 중 2/3는 문서의 신빙성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말했고, 1/3은 가짜로 판명했다는 말로 그의 입장을 밝혔다. 중요한 사실은 Karen King 조차도 이 문서가 허구가 아니라 할지라도 역사적 신빙성을 담고 있지 않을 뿐 더러 자신조차도 역사적 예수님에 대해 그 어떤 것도 발견할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끝으로: 이 작은 콥틱 조각이 예수님의 아내에 대해서 확증하는가? 오직 비논리적인 사람들만이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이 작은 조각은 역사적 예수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아마도 지금 이 콥틱 조각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자유주의 진영의 갈피 없는 행동들은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 파편을 부분적으로 팔아먹은 장사치의 행간에 놀아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페이스 북: https://www.facebook.com/sanghwan.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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