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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7/2014 / Sanghwan A. Lee

미국의 거지들

2002년에 도미하여 12년 동안 살면서 여러 종류의 문화 충격을 경험해 보았다. 그 중에 특이한 것 하나를 꼽자면 구걸 문화이다. 미국의 거지들은 한국의 거지들과 사뭇 다르게 구걸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본 거지들을 구걸의 종류별로 나누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동정형 거지: 이들은 자신을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도록 꾸민 후 사람의 감정에 호소한다. 이들은 목발을 집고 꾀 죄죄 하게 서 있거나, “곧 사료가 떨어져요”라고 적힌 종이와 함께 태어난지 얼만 안되는 강아지를 안고 있다. 심지어는 갓 태어난 자녀를 안고서 “젖이 안나오니 우유살 돈이 필요해요”라는 푯대를 옆에 세워두는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 줄 돈이 수중에 없다면 절대 눈을 마주치지 말아라. 눈을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가면 하루 종일 엄청난 죄인이 된 듯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될테니 말이다.

깡패형 거지: 돈을 안주고 그냥 지나치는 자를 향하여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거나 욕지거리를 퍼붓는다. 심지어는 “네가 입고 있는 코드는 백 불이 넘는 것 같은데 나에게 줄 옆전 한 닢도 없냐?”라고 따지기도 한다. 마치 빚쟁이가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듯 말이다. 예전에 신호등 앞에서 신호 대기를 하고 있다가 깡패형 거지를 만난 적이 있다. 유리창 너머로 돈을 달라는 신호를 보내기에 잔돈이 없다고 화답하니 갑자기 차문을 열고 말하기를, “있는 거 다 알아. 왼쪽 주머니에 잔돈 있잖아”. 내 왼쪽 주머니에 잔돈은 없었다. 그대신 자동차와 집 열쇠가 있었다! 너무 놀라서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했던 적이 있다. 이들을 조심하라. 잘 못 걸리면 다 털린다!

교만형 거지: 주려면 주고 싫으면 그냥 지나가라는 태도로 구걸하는 거지들이다. 너 말고도 줄 사람 많으니 귀찮게 하지 말고 빨리 사라지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들은 거지처럼 보이지 않는다. 선글라스에 입에 담배를 물고 구걸을 하기도 한다. 가끔씩 흔들 의자에 앉아서 구걸하기도 하는데, 그 의자를 잘 보면 월마트 표가 아니라 타켓 표이다. 나도 비싸서 못사는 타켓 표 의자에 앉아서 구걸하다니! 고급 의자에 앉아 담배를 꼬나 물고 영화 배우처럼 선글라스를 쓰고 구걸하는 그들을 너무 오랫동안 쳐다 보지 마라. 일에 쫓기는 내 삶이 오히려 비참해 보일테니 말이다.

풍요형 거지: 가끔씩 같은 자리에 몇 달 동안 있던 거지가 몇 주 동안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궁금하여 옆에 있는 친구 거지에게 물어보니 휴가를 갔다고 한다. 어디로 갔냐고 물어보니 칸쿤으로 갔단다. 헉!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꼭 가보고 싶어하는 관광지 칸쿤. 웬만한 봉급쟁이들도 몇 달을 모아야지만 갈 수 있는 칸쿤. 그런 곳을 약 한 달 동안 다녀온다. 내가 열심히 모았다가 준 돈으로 나도 못 가는 여행을 가는 게다. 몇 주 후에 돌아온 그들의 얼굴을 절대 쳐다보지 말라. 남미의 태양에 보기좋게 썬텐이 되어 건강미가 좔좔 넘치는 그들의 얼굴은 내 얼굴을 초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돈 돌리도!

종교형 거지: 목사인 나를 가장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는 거지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삼아 내 주머니를 공략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큰 피켓 위에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들을 적어 놓는다.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마 19:21)” 이들의 특징은 말이 없다. 그대신 매서운 눈초리로 나와 피켓을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눈에 힘을 주고서 말이다. 나는 이들에게 주머니를 털린 적이 많다. 이들은 그 어떤 거지들보다 무섭다.

재능형 거지: 이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십분 활용한다. 직접 그린 그림을 구걸하는 장소에다가 진열해 놓거나, 브레이크 댄스 등의 멋드러진 춤을 추거나, 혹은 하모니카 연주를 한다. 심지어는 빼빼마른 개를 데리고와 “앉아,” “일어서,” “공 물어와”등의 묘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공짜로 네 돈을 가져갈 수는 없으니 내 재능이라도 보고 도와달라는 뜻인 게다. 내게 있어서 이들은 가장 성공하는 거지들이다. 나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돈을 내도록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이틀 전에 재능형 거지에게 십 불을 줬다.

이것이 그동안 내가 본 미국의 구걸 문화이다. 내가 이런 글을 쓴 이유가 있다. 미국의 구걸 문화 속에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우리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습을 한 번 기억해 보자. 우리는 거지였다. 죄로 인해 모든 것을 탕진해 버린 영적인 거지… 그래도 영혼이 소중하다는 것은 알아서 구원을 구걸하지는 않았던가?

누구는 동정형 거지라서 구원을 감정적으로 구걸했었고,
누구는 깡패형 거지라서 구원을 힘으로 착취하려 했으며,
누구는 교만형 거지라서 아무나 구원해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을는지도 모른다.
누구는 풍요형 거지여서 구원을 부의 일종으로 찾았고,
누구는 종교형 거지여서 행위로 구원을 이루려고 했으며,
누구는 재능형 거지여서 자신의 끼로 구원을 취득하려고 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무엇도 우리를 영적 빈곤으로부터 구해주지 못했다. 구원이란 애당초 인간의 구걸로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각각의 거지들에게 찾아오셨다. 그런 후 그들을 각각 만지시 시작하셨다.

동정형 거지들에게는 온 마음으로 따듯하게 해 주셨고,
깡패형 거지들에게는 겉옷까지 다 벗어 주셨으며,
교만형 거지들에게는 종처럼 낮아져 주셨고,
풍요형 거지들에게는 진정한 부가 무엇인지 보여 주셨으며,
종교형 거지들에게는 값없는 은혜를 가르쳐 주셨고,
재능형 거지들에게는 그 재능이 누구로부터 온 은사인지 알려 주셨다.

그리고는 그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영원한 부가 되어 주셨다.

우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거지들을 보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셨다.
우리는 내 마음에 드는 거지들을 선택하여 도와주지만 예수님께서는 구별없이 우리를 도와주셨다.
우리는 어디를 방문하다가 거지를 우연히 만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우리는 거지들에게 동전을 주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는 거지를 돕고 떠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토록 떠나지 않으신다.

이처럼 참 좋으신 그 분 때문에 내가 내가 될 수 있었던 게다. 그렇다. 내게는 일용할 양식이 있다. 마르지 않는 생명수가 있다. 죄를 씻음 받을 보혈도 있고, 도착할 영원한 본향도 있으며, 함께 나아갈 성도들도 있다. 내게는 하늘 아버지도 계시고, 영원한 신랑도 계시며, 참된 위로자도 계신다. 예수님 때문에… 나를 구원해 주신 것 만도 벅찬데 이 모든 부까지도 주신 예수님 때문에 말이다.

이틀 전 나로부터 십 불을 받은 거지는 무척이나 놀라며 나를 쳐다보았다. 일 불을 기대했는데 일자 뒤에 공 하나가 더 붙어 있는 십 불을 받았기 때문이다. 공하나 더 붙은 돈을 받은 거지도 무척이나 놀라며 고맙다는 말을 쉬지 않고 했건만 셀 수 없는 공자가 붙어있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들을 내게 값없이 주신 예수님께 무한히 감사하며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도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오늘 아침…
영적 거지였던 나는 이렇게 고백한다.

“예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정말 예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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