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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4/2014 / Sanghwan A. Lee

자기 확신과 믿음

금강경의 정신희유분(正信岢有分)편은 불자(佛子)들이 해탈(解脫)을 위해 갖추어야 할 올바른 믿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친다. 여기에 기록된 부처의 말은 다음과 같다.

한오라기 고요한 믿음만으로도 인간을 변형시키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믿음”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범어 쉬라드하(श्रद्धा)에서 나온 말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이 아니라 ‘자기 확신’이라는 뜻이다. 부처는 아주 적은 ‘자기 확신’만으로 해탈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성경의 에베소서 편에는 불신자(不信者)들이 구원(救援)을 위해 소유되어져야 할 믿음에 대해서 가르친다. 여기에 기록된 바울의 말은 다음과 같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여기에 “믿음”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피스티스(πίστις)로써 ‘예수님 만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이 믿음은 인간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며 ‘자기 불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을 본다.

1. 불교의 믿음은 인간으로부터 나오지만 기독교의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2. 불교의 믿음은 자기 확신에 기초하고 있지만 기독교의 믿음은 철저한 자기 부인에 기초하고 있다.
3. 불교의 믿음은 인본주의(人本主義)의 구심점인 반면 기독교의 믿음은 탈인본주의(脫人本主義)이자 신본주의(神本主義)의 구심점이다.

인간은 하루에도 수 십번 씩 변한다. 오죽하면 “변덕이 죽 끓듯 하다”는 표현과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라는 노래가 지어졌을까?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게 인간이요, 똥 누기 전과 누고 나온 후의 마음이 다른게 인간이기 때문이리라. 내가 짧은 인생을 살면서 점점 깨닫는게 몇 있다. 나는 믿을 놈이 절대 못된다는 것. 나를 믿었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것. 그래서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불변하시는 예수님만을 믿어야 한다는 것. 하루가 지날 수록 나를 향한 믿음은 점점 줄어들고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는 내 주제를 알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가?
변덕이 죽 끓듯 한 당신의 자기 확신에 기대고 있는가,
아니면 영원히 변치 아니하시는 예수님께 기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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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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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진원 / 3월 18 2014 2:59 오후

    사람은 참으로 자기중심적입니다.모든 것을 자신의 잣대로 자신의 경험 안에서 자신의 인식 안에서만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며 오늘도 믿음에 대하여 은혜에 대하여 생각케 해 주심 감사합니다.

    Liked by 1명

    • Sanghwan A. Lee / 3월 23 2014 2:56 오후

      저 역시도 하나님의 시선으로 제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Liked by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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