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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7/2014 / Sanghwan A. Lee

벙어리통

조선 시대의 청렴(淸廉)한 선비들은 “벙어리통”이라는 물건을 사랑방 상좌에 보관하고 있었다. 벙어리통이란 집안에 벙어리가 태어날 것을 방지하기 위한 주술적 도구였다. 그러나 선비들은 이런 본래적 의미와는 정 반대로 벙어리통을 사용했다. 벙어리가 될 상황에서는 벙어리가 되는 게 더 낫다는 의미로 말이다. 예컨대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주인은 벙어리통을 꺼내어 손님 앞에 슬쩍 내민다. 타인을 흉보거나, 왕을 욕하거나, 나라 법에 저촉되는 이야기 등은 아예 꺼내지도 말자는 뜻으로 말이다. 이를 본 손님은 고개를 넌지시 끄덕임으로 주인의 제안에 암묵적 동의를 하고, 그 때부터 불필요한 이야기 거리에는 함구(緘口)하는 벙어리 아닌 벙어리가 된다. 그렇게 둘은 스스로의 청렴함을 지켰던 것이다.

목회를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일을 겪는다. 그 중에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은 말(言)로 인한 문제다. 예컨대 사람 서, 넛이 모이면 늘 하는 일이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헐뜯는 것이다. 헐뜯긴 자는 낮 말을 들은 새와 밤 말을 들은 쥐를 통하여 그 사실을 전해 듣고, 헐뜯은 자들과의 대대적 전쟁을 선포한다. 그 때부터 교회는 아수라 장이 된다. 예부터 한민족들은 엿은 울릉도 호박엿이요, 구경은 불구경이며, 이야기는 남 이야기라고 했다. 민족의 얼이란 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어서 그런지 다수의 한국 교인들은 모였다 하면 남 이야기로 시작하여 남 이야기로 끝난다. 게다가 입은 어찌나 가벼운지 하루도 못 되어 타인을 만나 그 이야기를 전달하니 싸움이 멈출 날이 없다. 그 자리에 조선 시대의 선비가 있었다면 벙어리통으로 한 대씩 쥐어 박았을 노릇이다. 어디 이 뿐인가? 설상가상으로 발 없이 천리를 가는 말(言)이 이제는 LTE 사회에 발맞추어 구만 리를 가니 싸움도 초 광속으로 일어난다. 내일 저녁 즈음에나 들어갔을 법한 이야기가 카카오 톡이나 라인 등의 문자 전송수단을 통하여 그 즉시 전달되어 내일 저녁에나 일어났을 법한 싸움이 오늘 바로 일어난다. 정말 웃지 못할 일이다. 하루는 네 명의 여인들이 모여 그 자리에 없는 한 여인을 헐뜯고 있었다. 그런데 5 분도 채 안 돼서 그 여인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너무 신기하여 전화를 받았더니 왜 없는 데서 자기 이야기를 하느냐고 따져 물었단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그 여인이 이를 어찌 알았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헐뜯은 네 명의 여인 중 한 사람은 알 것이다.

secret-

성경에는 말조심에 연관되어 사용되는 단어가 몇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칼리나고게오(χαλιναγωγέω)다. 이 단어는 “고삐”라는 뜻의 ‘칼리노스(χαλινός)’와 “이끌다”는 뜻의 ‘아고(ἄγω)’의 합성어로써, 말을 할 때마다 입에 고삐를 매고 실언(失言)이나 망언(妄言) 따위가 나오지 않도록 스스로를 이끌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분위기에 휩쓸리다보면 깜빡하는 사이에 하지 말아야 할 소리들을 남발하고 있는 게 사람인지라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화에 참여하라는 말이다. 야고보서 1:26은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χαλιναγωγέω)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고 말함으로 신앙과 말조심의 비례 관계를 계시한다. 참된 신앙인이라면 성령의 끈을 고삐삼아 입에 묶어 둠으로 할 말, 안 할 말을 가려가며 함이 옳다는 뜻이다. 야고보서 3:2도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χαλιναγωγέω) 씌우리라

고 말함으로 실수 중에 가장 큰 실수가 말실수임을 계시한다. 물론 이 세상에 말실수가 없는 사람은 없다. 시타르타도, 공자도, 크리슈나도 말에 실수가 있었다. 예수님이 아니고서야 누가 말에 실수가 없겠는가?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을 정당화 할 수는 없는 노릇. 예수님의 모든 것을 닮아야 함이 마땅한 성도들은 말까지도 그 분을 닮아야 함이 옳은 게다.

교회에 일어나는 문제 중 적어도 8할 이상은 잘못된 입 놀림 때문이란다. 그래서 말 때문에 상처 받고, 말 때문에 울고, 말 때문에 싸우고, 말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그 만큼 많은 것 같다. 말로 인한 좋지 못한 소리 소문이 점점 무성해 지는 요즘, 예수님을 닮는 우리 만큼은 조선 시대 선비들의 먼지묻은 벙어리통 정신을 다시 꺼집어 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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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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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진원 / 2월 22 2014 1:39 오후

    귀가 두개이고 입이 하나인 까닭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더 잘 하라는 뜻이라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이 말이기에 제 입에 파수꾼을 세워야겠습니다. 벙어리통 .. 처음 듣는 것이지만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고 갑니다.

    Liked by 1명

    • Sanghwan A. Lee / 2월 25 2014 8:38 오후

      우리 선조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참 지혜롭고 아름다운 유산들을 많이 남기셨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감사하지요.

      Liked by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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