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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3/2014 / Sanghwan A. Lee

나이만 많으면 장땡?

동방예의지국의 소인배: 예부터 우리 나라는 연장자를 향한 공경(恭敬)의 자세 때문 “동방예의지국(東邦禮義之國)”이라 불렸다. 밥상에서 연장자가 첫 수저를 뜨지 않으면 식사가 불가하고, 가장 따끈한 아랫목은 의례껏 양보함이 마땅하며, 명절에는 부복하여 세배함이 당연시 여겨지는 예의범절의 나라. 좁은 골목길을 가던 조선 시대에의 청년이 마주 오는 연장자의 그림자를 밟지 않기 위해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던 이야기는 오늘 날에도 적잖케 들려진다. 그러나 장점을 악용하여 단점으로 만드는 자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 나이를 훈장처럼 여기는 소인배(小人輩)들이 동방예의지국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양반 행세를 하려 한다. “너 몇 살이야?” “너 몇 년 생이야?” “너 무슨 띠야?” 섯다에 삼팔광땡이 장땡이면 이들에게는 나이가 장땡인가 보다.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괴팍한 문화가 들어온 것인고? 몇몇의 사람들은 유학(儒學)을 탓하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유학을 체계화한 공자(孔子)는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가 장땡인 것 마냥 행동하는 자들을 엄하게 훈계했다. 그에게 얽혀 내려오는 세 개의 일화를 들어보자.

삼인행 필유아사: 공자는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고 말했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다 보면 그 중에 내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반드시 있다’는 뜻이다. 한국인에게 이 셋 중에 누가 스승이냐고 묻는다면 의당 나이가 가장 많은 연장자라 답할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틀렸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스승의 조건은 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경험의 양도 아니다. 지혜의 깊이도 아니다. 심지어는 지식의 높이도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들만의 깨우침이 있으니 모두가 다 선생이다. 길을 걷는 세 사람은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서로에게 배울 점이 있기 마련이니 서로에게 겸손히 배우라는 말인게다.

공자와 안회: 이러한 해석은 공자와 그의 제자 안회(顔回)에 얽혀 내려오는 이야기를 통해서도 지지를 받는다. 안회(顔回)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닫는다는 문일지십(聞一知十)의 능력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학습능력으로 봐서 언젠가 스승인 공자를 따라 잡을 것이 분명했다. 만약 공자가 한국사람이었다면 그를 매장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다른 제자 앞에서 “안회는 나보다 훨씬 낫다”고 칭찬하여 자신도 그로부터 배운다는 것을 넌지시 밝혔다. 게다가 안회가 삼십 이세의 나이로 요절할 때에는 더 이상 그로부터 배울 수 없음이 안타깝고 통탄스러워 “하늘이 나를 망치는구나” 외치며 대성통곡을 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공자는 그보다 연소한 제자로부터도 배울 줄 알았던 훌륭한 스승이었던 게다.

공자와 자공: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에 얽혀 내려오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자공은 “공자의 스승이 누구냐”는 위(衛) 나라 공손조(公孫朝)의 질문에 “학무상사(學無常師)”라고 답했다. ‘특별한 선생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공자가 탁월한 선생들 못 만났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모든 사람에게 배웠다는 의미로 한 말이다. 그렇다. 공자는 아무리 연소자라 해도 개인의 삶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지라 그에게도 배울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까지도 특별한 스승으로 여겨 배움의 자세를 갖추었던 것이다. 공자는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여겨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 같다.

사칭 유학: 이처럼 유학(儒學)은 나이를 기준으로 스승과 제자를 가르지 않는다. 그 어디에도 나이가 장땡이라는 가르침은 찾아볼 수 없다. 연장자라도 배움을 멈춘다면 제자가 되야 하고, 연소자라도 배움에 전진한다면 스승의 자리에 섬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이것이 공자가 체계화한 유학이건만 한민족이 사칭(詐稱)하는 유학은 대체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성경 속으로: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성경에도 나이가 장땡이라는 사칭 유학에 젖은 사람들이 나온다. 디모데 전서 4:12이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디모데에게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나고 있다. 에베소 교회의 연장자들이 그가 연소하다고 업신여기고 있는 것이다. “업신여기다”고 번역된 헬라어(καταφρονέω)는 ‘눈을 내려 깔며 무시하다,’ ‘가치 없이 여기며 거절하다’는 뜻이다. 디모데가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이런 취급을 받고 있는 걸로 보아 사칭 유학이 에베소 교회에도 잠시 방문했었나 보다. 공자가 그 옆에 있었다면 디모데의 친구가 되어 줬을 텐데… 그러나 디모데에게는 공자보다 더 탁월한 스승, 바울이 있었으니 다행이다. 바울 선생은 공자도 생각하지 못했던 가르침으로 디모데를 위로한다. 그런데 그 가르침이 좀 묘하다. “디모데야, 조금만 더 참아! 곧 있으면 너도 나이가 드니까 그 때까지만 참아! 아니꼽고 더럽더라도 이 악물고 참아!”가 아니라 “말, 행실, 사랑, 믿음, 정절에 매진하라”는 것이다. 왜? 이것들이야 말로 사람의 성숙함을 측량하는 나이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람의 성숙도는 나이에 있지 않다. 그대신 말과 행실, 사랑과 믿음, 그리고 정절에 있다. 아무리 연장자라고 해도 이런 것들에 부족하다면 나이만 든 연소자인 게다.

잠언 16:31에도 디모데의 이야기와 엮어지는 노인의 백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이 구절을 잘 보면 특이한 부분이 하나 있다. 백발은 “얻는 것”이란다. 이상하기만 하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생기는 것이 백발 아니던가? 내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절로 생기는 것”이 백발이건만 본문 말씀은 “얻는 것”이란다. 이게 도대체 무슨 백발인가? “얻는다”고 번역된 히브리어를 찾아보니 ‘찾아진다’는 뜻이다. 백발은 내가 찾는 것이다. 내가 찾음으로써만 얻어지는 것이다. 나이 들면서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찾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영화의 면류관이다. 오호라! 이제야 알겠구나! 이 백발은 나이의 백발이 아니라 성숙함의 백발이라는 것을! 바로 이 백발을 갖추는 것이 참된 연장자의 모습이리라.

몇 해 전 백 세를 훌쩍 넘기신 백발의 한 목사님과 대면(對面)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칠십 팔 년 생이고 그 분은 십 일년 생이시니 약 칠십세 정도 차이가 난다. 목회에 갓 입문한 검은 머리뿐인 나에게 이런 백발의 대선배님과의 만남은 아주 특별했다. 기회를 놓칠 소냐 목회를 잘 하는 방법에 대해서 여쭈었다. 얼마 간의 침묵이 흐른 후 그 분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나도 아직 멀었어요.” 나는 그 소리를 평생 잊을 수 없다. 백 세가 넘도록 목회하신 분의 입에서 이런 답변이 나오다니… 멋들어진 답을 기대했던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것 같았다. 더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 분의 한 마디 말씀이 하늘로 치켜 오르던 내 교만함의 모가지를 뎅강 내리쳤다. 그 말씀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안다고 생각했을 때가 무엇을 가장 모르는 때”라는 말의 뜻이 이것일까? 그 목사님께서는 안팎으로 백발을 소유하셨던 게다.

벼는 익을 수록 머리를 숙인단다. 쌀이 속에서 통통하게 여물어감에 따라 점점 무거워 지기 때문이다. 사람도 “말, 행실, 사랑, 믿음, 정절”이 속에서 여물 때에 삶의 무게가 나가는게 아닐까? 연장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고개를 쳐들며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연소자를 무시하는 이유는 아직 덜 여물었기 때문이리라.

사칭 유교로 나이가 장땡이라 우겨대는 대한 땅에,
안팎으로 백발이 무성하게 늙는 그리스도인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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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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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진원 / 2월 15 2014 1:19 오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안팍이 다 꽉찬 그리스도인의 본을 몸소 보이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신 예수님 – 그 분을 본받음이 알곡이 되는 지름길이겠지요?
    저도 안팎이 백발이 되고 싶습니다.

    Liked by 1명

    • Sanghwan A. Lee / 2월 15 2014 8:56 오전

      글에서 풍기는 무게가 벌써 그렇게 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샬롬!

      좋아요

  2. Chul Caleb Chang / 9월 29 2014 7:15 오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제 내 스스로도 어리다고 핑계(?)대지 말고 더욱 더 다른 믿는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그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겠군요.

    Liked by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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