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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9/2014 / Sanghwan A. Lee

시간

시간을 정의하려는 시도는 수 천년 동안이나 이어지고 있다. 철학자와 신학자는 물론 과학자와 심리학자도 그 게임에 참가했고, 특별히 뭐라 규정할 수 없는 분야의 사람들 까지도 합세했다. 그러나 시간은 여전히 정의되어지지 않고 그들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있다. “시간은 화살과 같다”고 누가 그랬던가? 아무래도 시간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오랫동안 내려지지 못할 듯싶다.

그래도 그 동안 이루어진 시도 중 가장 공감되는 것 하나를 꼽자면 단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간의 신인 ‘카이로스’의 모습에 투영된 시간의 정의일 것이다.

카이로스

그림을 보면 아시다시피 그는 특이하게 생겼다. 앞에는 무성한 머리카락이 있고, 뒤에는 대머리다. 한 손에는 천칭이 들려 있고, 또 한 손은 천칭의 빈자리를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등 뒤에는 두 개의 날개가 있다. 이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자명하다.

시간은 풍성한 앞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손을 뻗어 그 머리카락을 잡으려 하면 천칭을 들이대며 값을 주고 자신을 사라고 한다. 값이 생각보다 비싸 우물주물하면 시간은 날개를 펄럭이며 빠른 속도로 자리를 떠난다. ‘아차’싶어 그를 잡으려고 손을 뻗지만 뒷머리가 대머리인지라 잡을 수 없다. 이것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간의 신, 카이로스의 모습 속에 투영된 시간의 의미다. 그래서 카이로스는 “기회”라고 번역이 된다.

에베소서 5:16에도 카이로스가 나오는 것을 아는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세월”이라고 번역된 헬라어(καιρός) 카이로스는 ‘기회’라는 뜻이다. 그리고 “아끼라”고 번역된 헬라어(ἐξαγοραζόμενοι)에는 풍성한 의미가 담겨 있기에 지면을 할애하여 설명해야 한다. “아끼라”는 단어는 접두어 에크(ἐκ)와 동사 아고라조(ἀγοράζω)가 만난 합성어로써 중간태 용법으로 쓰이고 있어 세 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전달한다. (1) 아고라조(ἀγοράζω)는 ‘값을 지불하고 사다’는 뜻이다. 기회는 값을 주고 살 만큼 귀한 것이라는 뜻이다. (2) 접두어 에크(ἐκ)는 뒤에 따라오는 아고라조(ἀγοράζω)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기회를 살 때 우물주물 망설이지 말고 확실하게 사라는 말이다. 망설이다보면 떠나가니 말이다. (3) 중간태 용법으로 쓰인다는 뜻은 재귀적(再歸的)인 의미를 갖고 있어 기회를 사되 ‘나를 위해 사라’는 뜻이다. 타인을 위해서 사지 말고, 나를 위해서 사라는 말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기회를 사나? 그런 낭비는 세상에 없다. 기회를 사되 나를 위해서 사라. 그리고 주를 위하여 쓰라. 세월이 악하기 때문이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았던 것 같다. 그가 20세가 되기 전에 만든 인생에 관한 칠십 개의 결의안(決議案)에는 시간에 대한 조항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았다.

한 순간의 시간이라도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고, 할 수 있는 가장 유익한 방법으로 이용한다 (Never to lose one moment of time, but to improve it in the most profitable way I possibly can.).

그가 예수님을 위하여 그토록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던 것은 값을 주고 기회를 샀기 때문이리라.

오늘도 우리를 방문하는 카이로스가 있다. 그는 긴 머리카락 늘어뜨리며 손에 잡힐 듯 말 듯한 모습으로 온다. 거저 잡을 수 있을 듯 싶어 손을 뻗지만 그는 재빨리 천칭을 들이대며 자신의 값을 말한다. 누구에게는 새벽 잠이 그 값이 될 것이요, 누구에게는 드라마가 그 값이 될 것이며, 누구에게는 컴퓨터 게임이 그 값이 될 것이다.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여 우물주물 망설이지 말라. 카이로스는 날개를 펄럭이며 당신을 빠른 속도로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아차’싶어 뒤를 돌아 손을 뻗어보지만 그 때는 너무 늦었다. 잡을 머리카락이 없으니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하루는 24시간이고, 1440분이며, 86400초다. 똑 같이 주어진 하루의 양이지만 찾아오는 기회를 값을 주고 사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가 “기도할 시간이 없다,” “성경을 읽을 시간이 없다,” “복음을 전할 시간이 없다”고 변명하는 이유는 그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그의 뒷 통수만 보고 늘 한숨을 내뱉는 게다. 글을 쓰면서 떠오르는 찬양이 있다.

한번 가면 안오는 빠른 광음 지날 때 귀한 시간 바쳐서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되게 하소서

오늘은 제 값을 주고 카이로스를 사고야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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