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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8/2014 / Sanghwan A. Lee

큰 그릇 vs. 깨끗한 그릇

예부터 사람을 비유하기 위해 줄곧 사용되는 도구가 있다. 그릇이다. 예컨대 인품이 깊은 사람에게는 “그릇이 크다”고 말하고,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사람에게는 “그릇이 작다”고 말한다. 행여나 상대방이 기대했던 것에 못 미치는 행동을 할 때에는 “그릇이 그것밖에 되지 않느냐” 말하기도 하고, 기대 이상으로 행동했을 때에는 “생각보다 그릇이 크네” 말하기도 한다. 어디 이뿐인가? “자고로 사람은 그릇이 커야 하는 법이다”는 말은 명절 날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시는 덕담 일 번지다. 이런 그릇 비유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쓰이는 건 아니다. 논어 팔일(論語 八佾)에는 춘추전국시대의 제나라 관중(管仲)을 가리켜 그릇이 작다고 평가한 공자의 이야기가 들어있고, 삼국지에는 제갈량(諸葛亮)에게 황태자 유선(劉禪)의 됨됨이를 그릇에 비유하여 말한 유비(劉備)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게다가 그릇 “기(器)”자를 넣어 만들어진 표현도 적잖다. 도량이 탁월한 사람을 가리켜 “기량(器量)이 풍부하다” 말하고, 언젠가 크게 성공할 사람을 가리켜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고 한다. 이처럼 그릇은 사람을 비유하기 위해 줄곧 사용된다.

성경에도 사람을 그릇에 빗대어 말하는 구절들이 있다. 헌데 위에 언급한 세상이 지향하는 비유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릇의 크기에만 관심이 있는 세상 비유들과는 달리 성경은 그릇의 청결도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릇의 크기에는 관심없다. 재질도 관심없다. 심지어 모양도 관심없다. 오직 깨끗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딤후 2:20~21을 보자.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위의 구절을 잘 보면 네 종류의 그릇이 나온다: (1) 금 그릇, (2) 은 그릇, (3) 나무 그릇, (4) 질그릇.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대로 금 그릇이라고 귀하게 쓰이고 질그릇이라고 천하게 쓰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깨끗한 그릇만이 귀하게 쓰인다. 여기에 “깨끗하게 하다”라고 번역된 헬라어(ἐκκαθαίρω)는 ‘더러운 것을 꺼내 냄으로써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행동’을 말한다. 죄라는 먼지가 풀풀 일어나는 세상에 덩그러니 놓인 그릇들은 나도 모르게 들어오는 먼지를 밖으로 밀어낼 때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다는 게다. 세상의 관심이 ‘넓힘’이라면 성경의 관심은 ‘씻음’이다.

우리 집에는 그릇들이 제법 있다. 유리 그릇, 사기 그릇, 청동 그릇, 노란 그릇, 녹색 그릇, 예쁜 그릇, 못 생긴 그릇, 세련된 그릇, 투박한 그릇, 큰 그릇, 작은 그릇… (금 그릇과 은 그릇은 없다.) 아내는 각각 용도대로 그 그릇들을 다 사용한다. 무 말랭이를 올릴 때에는 투박한 사기그릇을 사용하고, 단무지를 올릴 때에는 하얀 유리 그릇을 사용한다. 소바 면을 올릴 때에는 자주색 플라스틱 그릇을 사용하고, 스테이크를 올릴 때에는 고풍스런 녹색 그릇을 사용하며, 수육을 올릴 때에는 편편한 나무 그릇을 사용한다. 내가 식단을 조절하기 전에는 큰 그릇에 밥을 담아 줬고, 조절하기 시작한 후에는 작은 그릇을 사용한다. 심지어 깨어진 그릇은 개 밥그릇으로 사용한다. 이처럼 아내는 여러 가지 종류의 그릇을 적시적소에 잘 활용한다. 그러나 그녀가 어떤 경우에도 절대 사용하지 않는 그릇이 하나 있다. 더러운 그릇이다. 더러운 그릇은 아무리 예쁘고 세련되었어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을 깨끗하게 씻을 때까지 말이다. 이것이 딤후 2:20~21의 가르침이다.

거품이 점점 늘어나는 이 세상은 예부터 그릇의 크기에만 관심이 있어왔다. 그 결과 깨끗함은 오직 바보들만 주장할 수 있는 전유물이 되어버렸고, 보다 큰 그릇이 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사람이 지혜로운 군자라 여겨지고 있다. 뱁새에게 황새가 되어야만 한다고 강요한 후 뱁새의 가랑이를 찢어 놓는 이 세상에 왜 대대익선(大大益善)이란 사자성어는 없는지 희한할 정도다. 이 좁은 땅덩이를 대한민국(大韓民國) 이름 짓고 동분서주 좌충우돌 경쟁하는 사회 낳아 한민족들 관심들이 크기에만 몰린것 같다. 학생들은 대(大)학가야 장땡이요, 회사원들은 대(大)기업 취직해야 장땡이요, 공무원들은 대(大)통령 되야 장땡이요, 목사들은 대(大)형 교회 시무해야 장땡이다. 이처럼 잘못 돌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니 대(大)박이란 말이 유행할만 하다. 이런 세상 속에서 믿는 자들 만큼은 쪽박을 찰지라도 거룩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함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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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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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익명 / 2월 8 2014 4:53 오후

    깨끗한 그릇으로 살기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에서 견딜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매순간 자신를 돌아보는 겸손뿐이라는 샹각이 듭니다. 참으로 도전되는 말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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