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s
컨텐츠로 건너뛰기
02/01/2014 / Sanghwan A. Lee

부처의 유언과 예수의 약속

부처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의 일이다.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큰 슬픔에 휩싸여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결국 부처의 수제자인 아난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의 빛인 당신이 떠나고 있습니다. 저는 말할 수 없이 절망스럽습니다. 당신께서 떠나시면 우리는 어쩌란 말입니까?

부처는 대답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나를 믿지 말라고 수 차례 말하지 않았더냐? 지금 너희들이 완전히 허물어지고 있는 것은 나를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영원히 살 수 없느니라.

부처는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게 자신을 믿지 말라고 가르쳤었다. 그는 죽음을 이길 수 없을 뿐 더러 그 후에 제자들을 돌볼 수는 더더욱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반열반경: 부처의 유언 中)

비슷한 일이 다른 지역에서 일어났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얼마 전의 일이다. 그 분을 따르던 제자들은 큰 슬픔에 휩싸여 근심하기 시작했다.

당신께서 떠나신다면 우리는 어떡합니까? 저희는 말할 수 없이 절망스럽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을 끝까지 믿으라고 가르치셨다. 얼마 후 그 분께서는 위에 있는 약속을 지키심으로 당신께서 곧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증거하셨다. (요한복음 14, 20, 21)

 

그렇다.

 

부처는 자신을 믿지 말라고 가르쳤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으라고 가르치셨다.

부처는 자신도 죽음을 이길 수 없는 존재임을 가르쳤고,
예수님께서는 당신만이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생명이심을 가르치셨다.

부처가 죽음으로부터 제자들을 구할 수 없던 평인(平人)이었다면
예수님께서는 죽음으로부터 제자들을 구하신 신인(神人)이시고,

부처가 도(道)를 추구했던 구도자(求道者)였다면
예수님께서는 구도자(求道者)가 찾아야 할 참된 도(道)이시다.

 

어떻게 감히 이 둘을 같은 위치에 놓을 수 있단 말인가?

Advertisements

댓글 16개

댓글 남기기
  1. 익명 / 10월 21 2014 8:17 오후

    수준하곤… 머리는 뒀다 뭐하노?

    Liked by 1명

    • Sanghwan A. Lee / 10월 22 2014 8:07 오전

      안녕하세요. 읽어주시고 생각하시는 바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님께서 생각하시는 바를 나눠주실 수 있으시나요? 배우기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좋아요

  2. 종흔 / 1월 23 2015 7:54 오후

    아함경
    http://www.bupwhasa.com/kjstory_06.htm

    대반열반경
    http://jgs.or.kr/xe/?mid=baeoom&document_srl=86033&listStyle=viewer

    붓다가 일체 기적을 보이지도, 아난이 일체 붓다의 기적을 목격한적도 없다하여 아래에 초기 불교경전중 대반열반경의 내용을 검토하여 신통력에 관계된 부분을 발췌했습니다.
    글의 서두에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로 운을 떼니 아난의 목격담이니 믿을수있는지요? 이마저 못믿는다면 상환님이 믿을 불교경전은 없는듯하니, 만일 어떤 불서를 읽는다면 부처를 모독키위해 위서를 읽은격이 되겠네요.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 1 장 영취산 

     1. 영취산에서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5. 파탈리 마을의 신자들에게

    “세존께서는 그들을 멀리까지 배웅한 다음, 공중을 날아 집으로 드셨다.”

    “세존께서는 사람의 능력을 초월한 청정한 지혜의 눈으로, 천을 헤아릴 정도의 많은 신들이 파탈리 마을을 수호하고 있음을 보셨다.”

    제 2 장 발병(發病)

    2. 나디카 마을에서 – 죽음에 대하여  

    그리고 세존이시여! 이 나디카 마을에서는 이 외에도 카쿠다, 카링가, 니카타, 카티사바, 투타, 산투타, 밧다, 스밧다 등의 재가신자도 죽었사온데, 이들 신자들은 그 뒤 도대체 어떤 세계에 태어나며, 운명은 어떻게 되어 있사옵니까? 반드시 들려주소서.”

    이것에 대해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들이 간 곳은 다음과 같느니라. 먼저 사루하 비구는 살아 있는 동안에 번뇌를 멸진하고, 더럽지 않은 정적(情的), 지적(知的)인 해탈을 스스로 깨닫고 체득하였다. 따라서 이 비구는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 다시는 어리석은 생존을 받지 않느니라. 다음에 아난다여! 난다 비구니는 다섯 가지 번뇌를 멸진하여 좋은 세계에 화생(化生)하였다. 이 비구니는 천계(天界)에서 직접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 다시는 이 세상에 되돌아오지 않느니라(不還).

    “아난다여! 이와 같이 죽은 뒤의 일에 대해 아는 것은, 여래에게 있어서는 별로 불가사의한 일은 아니니라. 그러나 사람이 죽은 후 일일이 여래의 처소에 와 묻는 것은 번쇄하고 번거롭다.”

    “내 가까이에서 시봉하는 이들에게는 여태껏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또 비구들에게는 한 번도 깨달음의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열반에 들어 버린다는 것은 붓다의 행위가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정진(精進)으로 이 병을 극복하고, 유수행(留壽行:생명을 연장하는 행위)을 확립하여 머물도록 하자’라고.”

    “이리하여 세존께서는 정진으로 그 병을 극복하시고 유수행을 확립하시어 지내셨다. 그렇게 하는 동안 세존께서는 병에서 회복되셨다.”

    제 3 장 악마와의 대화  

    “그런데 아난다여! 여래(완전한 인격자)는 이미 그러한 네 가지 초자연적인 능력을 닦고 닦아 통효하고, 일상사가 되고 체험하고 숙지하고 익혔다. 따라서 만약 작정만 한다면, 아난다여! 여래는 1겁 혹은 1겁 이상도 이 세상에 머물 수 있느니라.”

    “악마여! 나는 나의 입멸(入滅)에 대해 더 이상 마음 괴로워 하지 않느니라. 여래는 머지않아 열반에 들 것이니라. 지금으로부터 3개월 후, 여래는 열반에 들 것이니라.”

    “이리하여 세존께서는 차팔라 영지에서 바르게 사념하시고 바르게 의식을 보전하셨던 지금까지의 유수행(생명을 연장하는 행위)을 중지하셨던 것이다.”

    “세존께서 유수행을 버리셨을 때,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것은 너무 무서워서 온 몸에 털이 곧두설 정도였다. 그와 동시에 하늘의 큰 북이 갈갈이 찢어질 정도로 울려퍼졌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그것의 의미를 관찰하시고, 그때 다음과 같은 기쁨의 시를 노래하셨다.

    상응(相應)함도 하지 않음도 
    태어나서 변해가는 그 행위를 
    성자는 버리리, 모두 함께

    견고한 갑옷의 그것처럼 
    몸이 다시 태어남도 
    일찍이 파(破)하니 
    마음 즐겁고 적정한 사람”

    3. 대지진이 일어난 까닭 
    “마지막으로 아난다여! 여래께서 남김없이 완전한 안락함의 세계(無餘依涅槃)에 드실 때, 이 대지는 크게 진동하고 대단히 진동하며, 격심하게 진동하고 격렬하게 진동한다. 이것이 대지진이 일어나는 제8의 직접적 원인, 간접적 원인이니라.”
     
    “그런데 그 시냇물은 이제 막 5백 대의 수레가 지나갔기 때문에 물도 흐리고 또한 출렁이면서 흐르고 있어야만 하는데, 아난다 존자가 갔을 때에는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것을 본 아난다 존자는 그 불가사의함에 내심 놀라워 “얼마나 불가사의한 일인가? 얼마나 경탄할 만한 일인가? 여래의 신통력, 여래의 위력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이 시냇물은 이제 막 수레가 지나갔기 때문에 물도 흐르고 물결도 가라앉지 않아야 하는데, 내가 왔을 때에는 흐림이 사라지고 깨끗하게 맑아져 있다니”하고 경탄했다.”

    “확실히 그럴 것이니라, 아난다여! 여래는 두 가지 경우에만 특별히 여래의 피부색을 하얗고 청정하게 빛나게 하느니라. 아난다여! 그것은 어떤 때인가? 하나는 여래가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때이고, 또 하나는 여래가 남김없이 완전한 열반의 세계에 드는 때이니라.”

    대강 기적위주로 간추려 봤습니다.저도 님덕분에 훓어보았는데 님은 어떤 불경을 위주로 공부하시기에 그렇게 확신에 차서 부처는 죽음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했고 어떤 이적도 제자들에게 보인바 없었다는지요? 부처님은 개개의 근기에 따라 설법하신다 알고있습니다.혹어떤 미혹한자가 물었을때 그자에대한 방편으로 침묵하셨다해서 그것을 모른다 오해한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만,위 기적중 지진에 관한 언급은 예수님의 임종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으니 놀랍지않나요?
    그리고 이런 엄연한 신통력이 일상에서 나타나는데도 신약에서 처럼 부각되지않는 이유는 불교의 사상을 눈여기시면 될것같은데요.무아나 공의 사상으로 무장되어있는 불자에게 세상에서 행해지는 이적이 큰 관심꺼리가 되겠는지요? 저또한 기적을 백을 행하더라도 설법이 신통찮으면 꽝입니다.또한 성경에 대한 의혹들 우튜브등에 상당히 설득력있는 자료들이 널렸지만 기독교도에게 딴지걸지않는것은 예수님의 설교하나로 그분의 깨치심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때문이었습니다.애들처럼 기적으로 종교를 비교치말고 이왕할려면 설법으로 하시던지,어릴때야 장난감 가지고 놀지만 어른되면 달라야지요.위 님의 본문 내용도 어처구니 없습니다만 참겠습니다.아무쪼록 열심히시니 뭔가 성취하겠지만 붓다를 비방할려면 불경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내가 아는 기독교 교리는 예수아니면 적이라는 식인데 그런 사고방식으로 불경을 읽으니 그 오묘한 진리의 말씀이 제대로 전달되겠습니까.그러하니 붓다를 철학자니 어쩌니 하는것이지요.종교는 내가 신이다 해서 그자를 믿는것이 종교가 아니라 우리속의 영성을 일깨워주는 누구나,어디나 성직자가 되고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불경에 신들도 부처의 설법을 듣기위해 모여든다 라든지 여러곳에서 신들을 다스리시는 구절이 나옵니다.님의 생각처럼 붓다가 인간에 족하다면 불가능한 이야기지요.지어내었다는 유치한 말을 하기전에 직접 읽어보시고 옛사람의 이성도 감안하시고 제대로 한번 불교를 느껴보세요.
    감사합니다.

    좋아요

    • Sanghwan A. Lee / 1월 23 2015 10:11 오후

      종흔님께서는 순환논증의 오류와 연대기적 오류를 범하고 계십니다. 지난 번에 순환논증의 오류에 대해서 지적해 드렸으니 이번 글에서는 연대기적 오류에 대해서 지적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인도 불교의 역사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린 후 문제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인도의 불교 역사는 (1) 원시불교(原始佛敎), (2) 부파불교(部派佛敎), (3) 대승불교(大乘佛敎), (4) 밀교(密敎)의 순서로 발전했습니다. 원시불교(原始佛敎)시대는 고타마 시타르타가 제자들과 함께 다니며 설법했던 시대이고, 부파불교(部派佛敎)시대는 전승과 문서를 통하여 내려온 시타르타의 가르침을 교리화했던 시대입니다. 부파불교(部派佛敎) 시대에 일었난던 일 중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은 그 당시의 한 분파인 대중부불교(大衆部佛敎)의 업적입니다. 대중부불교(大衆部佛敎)는 고타마 시타르타의 가르침을 기존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르게 주해한 진보적 종파로써, 시타르타의 철학적 사유를 종교적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때 만들어졌던 주해를 아비달마(阿毘達磨)라고 하는데, 시타르타가 십사무기(十四無記)로 규정하여 함구했던 신, 영원, 사후 세계 등에 종교적 답을 달기까지 했습니다. 철학의 한 분파였던 불교를 종교로 둔갑시키려는 작업이었지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타마 시타르타를 초월적 인간으로 숭경(崇敬)하고 그의 육신에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32상(相) 80종호(好)라는 상호가 있었다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고 했습니다. 이들이 만든 부처, 곧 원시불교(原始佛敎)의 부처와 다른 부처를 산스크리트어로 “로코따라 부따”라 하고, 부처를 신격화 하는 주장을 설출세부(說出世部)라고 합니다. 이처럼 대중부불교(大衆部佛敎)는 부처를 신격화(deification)하여 개인의 구원에 필요한 영원자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신 후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에서 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신 오강남 박사님께서는 이런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대중부도 여러 파에서 다양한 가르침을 주장했지만 불타론을 새롭게 부각시킨 것이 흥미롭다. 초기불교가 부처를 우리에게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준 스승으로 본 것에 비해, 대중부는 부처를 우주적 존재로 보았다. (오강남,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 101)”

      보시다시피 대중부불교(大衆部佛敎)는 일개의 인간이었던 시타르타를 신격화한 것입니다. 도올 김용옥 박사님께서도 위의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부파불교의 수도인들이 지향한 이상적 인간상을 ‘아라한’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아라한이라는 말은 원래 초기불교 집단에서 인간 시타르타를 존경하여 부르던 열 개의 존칭 중의 하나였다. … 사실 이것은 뭐 대단히 특수한 존칭이 아니다. … 그런데 부파불교(部派佛敎)시대에 내려오면서 이런 아라한의 의미가 변질되어 수도원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는 수도인이 도달하는 최고의 성스러운 경지에 해당되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無學位로서 아주 특수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김용옥, 금강경강해, 88-89)”

      불자인 도올 김용옥 박사님께서도 시타르타의 신성(神聖)은 부파불교(部派佛敎) 시대에 고안된 것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이처럼 일개의 철학이었던 불교가 종교로 둔갑한 것은 부파불교(部派佛敎)의 시대입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때부터 불교에 분열이 일어나 200년 만에 20개의 부파가 생기게 되고, 불교는 점점 종교화 됨에 따라 시타르타의 가르침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지요.

      그 후에 불교가 원시불교(原始佛敎)로부터 멀어지는 것에 불만을 품었던 자들이 일어났는데, 그들이 바로 대승불교(大乘佛敎)입니다. 이들은 대중부불교(大衆部佛敎)의 아비달마(阿毘達磨)의 교리적 체계가 원시불교(原始佛敎)의 순수함을 해(害)하는 주된 원인으로 파악해 이를 거부하고, 불교의 초심인 원시불교(原始佛敎)로 돌아가 이기적인 개인주의를 버리고 많은 자들에게 시타르타의 도를 전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대승불교(大乘佛敎)는 원시불교(原始佛敎)로 돌아가려는 개혁에 실패하고, 오히려 대중부불교(大衆部佛敎)의 영원론을 발전시켜 해탈한 자는 극락왕생하여 부처와 함께 영생을 살 수 있다고 주장했고, 신성설을 발전시켜 시타르타가 극락에서 중생들의 해탈을 돕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보살의 길”이라는 불교의 구원론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불교는 종교화 되는데 박차를 가하게 되지요. 바라문교의 여러 신들이 불교의 수호신으로서 받아들여졌고, 토속신앙의 주술적 요소가 불교의 교리에 도입되었으며, 불경에 여러 가지 재앙을 면할 수 있도록 하는 ‘육자대명왕다라니경(六字大明王陀羅尼經)’과 같은 주문까지 들어가게 되었지요.

      종흔님께서 시타르타의 신성(神聖)을 논증하시기 위해서 자주 인용하시는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이 바로 이 때 만들어진 불경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을 인용하여 시타르타의 신성(神聖)을 제게 논증한다 할지라도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지요.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이 묘사하는 신적 시타르타는 원시불교(原始佛敎)때 보이는 시타르타가 아니라 후대에 꾸며지고 만들어진 시타르타니까요. 이것이 바로 종흔님께서 범하시는 연대기적 오류입니다. 후대에 꾸며진 시타르타의 모습으로 그 이전 시대의 시타르타를 이해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제가 몇 달 동안 논쟁하면서 초기불경에 대해서 공부하라고 말씀드린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랍니다.

      결국 불교는 시타르타의 철학적 가르침과 점점 동떨어지다가 밀교(密敎)가 됩니다. 시타르타가 가장 원치 않았던 모습으로 불교가 치닫게 된 것이지요. 도올 김용욕 박사님께서도 불교가 시타르타의 가르침을 버리고 점점 종교화되는 모습에 혀를 차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불교에는 신이 없다. 불교는 신을 믿지 않는다. 불교에는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자가 없는 것이다. 단언하건대 불교는 무신론인 것이다. 무신론이 어떻게 종교가 될 수 있는가? (김용옥, 금강경강해, 23)”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지만 종흔님께서 믿고 계신 시타르타는 부파불교(部派佛敎) 시대를 거처 대승불교(大乘佛敎)때 만들어져 밀교(密敎)시대 때 체계화된 만들어진 신일 뿐입니다. 그러니 ㅇㅇ님의 고백대로 고타마 시타르타를 사랑하신다면 그를 초기불교시대의 철학자로 남겨두심이 어떠신지요? 감사합니다.

      추신: 앞으로 그저 인터넷에서 발췌한 글들을 모아 반증하시는 댓글들에는 답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함께 나눴던 많은 글들에 제 생각이 고스란히 들어 있으니 그것들을 곱씹어 보신후 불교 학자들이 쓴 글들을 인용하여 정직하고 솔직하게 대화를 신청하실 때에만 답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아요

  3. 종흔 / 1월 23 2015 10:28 오후

    이제 해도되지 않으니 불경을 제마음되로 해석한 일인의 주장까지 들이됩니까? 어쩔수없네요.성경을 인터넷에서
    보면 찌라시가 되는지요.당신의 신도들이 앞으로 어떤 상상을 하고 신을 생각할지 심히걱정입니다.이어리석은 님를 예수님이 살아있다면 책임야 할것같네요.

    좋아요

    • Sanghwan A. Lee / 1월 23 2015 10:30 오후

      종흔님, 제발 마음을 여시고 사실과 신앙을 구별하여 사실적인 부분만큼은 바르게 검증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종흔님과 그동안 쌓은 정이 있기 때문에 시간을 쪼개어 긴 글을 써서 드린 것이니 마음으로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아요

  4. 종흔 / 1월 23 2015 10:42 오후

    상환님 제발 정신 차리세요.님의 직업상 님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까지 영향 받을까해서 신통력까지 찾는 해프닝을 벌인것입니다.다시금 본문을 상기하시고 님이 얼마나 맹목적으로 한길을 가시는지 깨닫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님이 부처님을 욕보인다면 영을 욕보이는거고 성경에도 가장 큰죄가 영을 훼방하는 죄이지요.구원받는 금방에라도 가신다면 제말을 이해 하실것입니다.더이상 글쓰지않을것입니다. 이정도에서도 못알아차리면 불능 이지요.열심히 사세요.

    좋아요

  5. 종흔 / 1월 26 2015 2:16 오후

    도올 김용옥 “예수 하나님 독생자 아니다”

    저서 ‘도마복음 한글역주 2·3’ 기독교 통설에 도전
    http://m.breaknews.com/a.html?uid=133091&section=sc2&section2=%EC%82%AC%ED%9A%8C%EC%9D%BC%EB%B0%98

    도올 김용옥이 본 기독교!

    도올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AN26&articleno=17738103

    당신의 비뚤어진 신앙관에 큰 영향을 끼친자의 실체.
    도대체 뭘알고 한국 사상계의 쓰레기를 자기주장의 구원병으로 내세우나? 성경의 감옥에 갇혀 판단력이 마비된 외골수 병아리 목회자의 병적집착이 아니라면 있을수없는일! 일말의 정으로 남기니 각성하세요.

    좋아요

    • Sanghwan A. Lee / 1월 26 2015 2:24 오후

      종흔님, 이렇게 빨리 찾아오실지 몰랐습니다. 게다가 저와 정까지 들었다고 말씀해 주시니 무척 반갑기도 합니다. 저만 정들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봅니다.

      링크로 걸어주신 글들 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생각을 바꾸는 경우도 있을테니 차차 서로의 생각을 나누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더러 병아리 목회자라고 하셨는데, 저는 목회에만 병아리인 것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도 병아리랍니다. 깃털이 언제 날른지 모르지만 어느정도 성숙하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요. 종흔님께서도 혹시라도 생각이 바뀌시면 언제든지 찾아오셔서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좋아요

  6. 종흔 / 1월 28 2015 9:33 오전

    “종흔님 께서 시타르타의 신성(神聖)을 논증하시기 위해서 자주 인용하시는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이 바로 이 때 만들어진 불경입니다.”

    님의 ‘이 때 만들어진 불경’이라는 의미가 불경의 문자화를 의미한다면 님이 해석하는 시간이 맞을것입니다.그러나 초기불경이 결집에의해 공인된 부처님 언행을 구전으로 전하다 후대에 문자로 기록한 사실을 염두했다면 님같은 황당한 실수는 저지르지 않을 것입니다.(성경이 문서로 남겨진 시간보다도 몇백년 전임을 기억하세요) http://hgc9395.egloos.com/m/7632588
    이렇듯 제1결집 이후 암송의 형식으로 구전되어 오던 경전들은 B·C 1C 중반 경부터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했는데, 이 언어를 팔리어라고 하며 인도 서부지방(王舍城을 중심으로 한 마갈타지방)의 서민들이 쓰던 문자가 없는 구전언어였지만, 결집을 계기로 각지방의 문자형식을 빌어 패엽에 기록되게 된 것입니다.)
    님은 부파나 대승불교가 출현한 시기에 불경이 문자로 최초 기록되었다하여 초기경전을 부파나 대승학자들이 만들었다 우기고 있는것이죠.
    님의 식이라면 세계의 역사연표를 다시써야 합니다.문자이전 시대의 연대는 모조리 문자로 기록한 당시의 연대로 고쳐야하고 심지어 조상대대로 구전되어온 아리랑 같은경우도 교과서에 실린 연도를 기준으로 작곡되었고 작곡한 사람도 교과서에 실은사람으로 해야겠죠.그러면 왜 님이 이렇게 어이없는 실수를 하냐면 상대방입장에서 보지않았기때문입니다.지금도 힌두나 이슬람에는 경을 통째로 외우는이가 있다는데 이런 지역적이고 문화적 시대 상황을 무시한채 오로지 원하는 목적만 달성키위해 자료를 아전인수격으로 수집하니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하는것이죠.만일 님의 주장되로 후대에 불경을 문자로 옮길때 입맛에 맞게 편집했다 한다면 그들 또한 암송되는 초기경전을 토대로 편집했을터, 불교의 파가 대승만 있는것이 아님은 삼척동자도 다아는 사실인데 유독 대승등의 특정파만 책으로 엮었다 억지를 부리는 격입니다.엄연히 대승 소승등 공히 니까야와 아함으로 불리는 초기경전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고작 님의 한갖 신통력에대한 과민
    반응으로 아난과 오백이 넘는 아라한과 수많은 불자들을 욕보이는 것이지요.인간의 이기심이 어떤식으로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지요. 수백억의 인류가 부처님 행적과 설법을 사실로 자연스럽게게 받아들이고 있고 그 근원에는 초기 불교경전이 자리하며 초기불교 경전은 5니까야경( 대반열반경은 5니까야중 디가 니까야에 포함)인것을 세상이 인정하는 역사를 집요하게 아니라 물고 늘어집니다.님뿐만아니라 몇몇 이방의 못난 종교인에의해.

    http://www.baklimsa.com/bbs/board.php?bo_table=study1&wr_id=63
    예를 들어 디가 니까야의 《대반열반경(Maha-parinibba-nasutta)》11)을 읽을 때에 독자들은 부처님의 최후의 생애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전제되어 있다는 인상 없이는 읽을 수가 없다. 
    이러한 느낌은 신격화된 부처님의 생애를 묘사하고 있는 대승의 《보요경(普耀經:Lalitavistara)》이나 《불소행찬(佛所行讚)》 같은 경전과는 완전히 대조가 된다. 

    위의 2권이 님이 오매불망 찾고있던 경전인듯하니 참고하시라 올렸습니다.상환님이 일반인에게 일주일 잠을 안자고 철야 기도를 했다하면 어떤이는 거짓말이라하고 심지어 조작이라는 자까지 등장할것입니다.어째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합니까? 바로 일반인은 종교의 힘을 모르기 때문이죠.지금 상환님의 시각과 다를바없습니다.근세의 선승들이 몇년 몇십년 장좌불와 했다면 거짓이고 조작이라고 떠들겠죠.바로 불교를 모르는 이들의 망언입니다.깨침을 안다면 신통이 일상의 일에 불과한것을 이방 종교인이 기적이라하고 신만이 가능한 일이라 하며 경까지 조작되었다 합니다.이 얼마나 한심하고 시간 낭비하는 짓거리입니까? 심오한 진리의 말씀을 나누어도 부족할판에 신통을 신성으로 혼자서 착각하여 믿고있는 종교의 위상을 지키려 발버둥치려는 초보 목회자의 땡강에 불과한 꼴을 보이고 있는게 아닌가요.
    이해하시겠습니까?
    이해 했다치고 궁금한것은 만일 대반열반경이 부처님 행적을 과감없이 기록한 초기경전으로 인정한다면 그렇다면 불제자가 되시려는지요.님이 그렇게 강조하는 신성?이 증거 되었으니 당연히 제가 예수를 인정하듯 님이 부처도 인정해야 그동안 이성이란 명목하에 검토하자던 님의 말에 책임을 지는 것인데, 물론 못하겠죠.그이상의 부처의 능력이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님은 절대 예수 유일신의 맹신을 버리지않을것입니다.여기서 님이 말한 과학과 이성이 얼마나 이중적인지 드러납니다. 과학과이성의 사유속에서 검증하자는 말은 밝혀지면 서로 인정한다는 전제가 포함되는건데 님은 애시당초 그럴마음이 전혀없고 님의 결론은 불변이고 상대의 틀린점만 확인한다는 내심인데 어찌 과학과 이성으로 서로의 오류를 판별하자는 제안을 할수있습니까? 다 말장난이죠.
    설혹 진지하게 과학적으로 접근한데도 시간의 한계에 부딪히고마는것을,현대 첨단 과학으로도 15년만 지나도 증거 확인의 어려움 때문에 범죄의 시효도 만료 시키는데 하물며 2500년전의 일을 과학으로 밝히자는 자의 본심 또한 뻔한것 아닙니까? 더군다나 수백억 이성을 가진 인간에의해 인정되어진 성스러움은 일절 무시한채 일개 논사들의 추측을 과학으로 들먹이는 그런사람이 내세우는 이성을 어찌 신뢰할수있겠습니까? 제가 님이 근거로 내세우는 과학과 이성에 일일이 대꾸하지 않은 이유였습니다.언뜻 생각하니 예수 당시에도 불법은 서방으로 광범위하게 퍼졌는데 예수같은 분이 불법의 세나 교리를 모를리 없었겠고,그런데도 일절 부처나 법에 대해 훼방 한적없는데 어찌 후대의 신자에 불과한 자들이 스승도 삼가하던 일을 혈안이되어 덤빈단 말인가?정녕 말세가 가까이 온건가?(님 만을 꼬짚는게 아닙니다)
    그리고 부탁인데 아무리 궁해도 김용옥같은 인간 말종은 빌리지 않았으면 합니다.젊은날 김용옥의 “여자는××다”책이후 그는 한번도 날 실망시키지않코 꾸준히 망발을 계속 지껄였지요.급기야 늙어 정권에 빌붙어 종북사상까지 공개적으로 퍼뜨린 자를 님과의 종교토론에서 님의 주장의 후견인으로 등장하니 나와 님의 관계를 떠나 김용옥과 전생에 악연이 있었나 의문이 덜 정도였습니다.님은 한국정서를 잘모르고 TV에 나올정도면 대단하다 싶겠지만 지금 한국사회는 사상계는 물론이고 전 분야에서 님의 상상이상으로 타락 했습니다.하옇튼 본론에 관계없는 얘기라 자세히 말씀 못드리지만 적어도 사이비 김용옥은 그의 요설로 인해 글만으로도 충분히 판단할수 있는데..
    다시 당부하는 것은 맡은 님의 사명만 열심히 수행하셨으면 합니다.하나님의 의를 구함이 무엇보다 급한것 같은데 쓸데없이 남의 종교 비방에 귀한 시간을 버리내요.혹 진리에 대한 탐구중 부득불 타종교를 접해야 한다면 그종교에서 권위있고 존경받는 자의 이론을 연구하는 현명함을 보이시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인간적인 면이야 누군들 악함이 있겠습니까? 험한말 써는것도 무지와 맹목을 겨냥 한것이지 인격을 흠집낼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점 이해 하셨으면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아요

    • Sanghwan A. Lee / 1월 28 2015 9:53 오전

      제가 예전부터 드렸던 댓글들을 읽어보시라고 권면을 드렸는데 읽지 않으신 듯 합니다. 위의 댓글을 읽어보니 종흔님께서 간과히시는 중요한 포인트 몇 개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님은 부파나 대승불교가 출현한 시기에 불경이 문자로 최초 기록되었다하여 초기경전을 부파나 대승학자들이 만들었다 우기고 있는것이죠. ” 틀렸습니다. 그 때 시타르타의 신성이 고안되었다고 말했지 그 때 모든 불경들이 쓰여졌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위에 언급했지만 시타르타의 신성이 이 때 고안된 것이라는 점은 불교학계의 저명한 인사들도 인정하는 것입니다. 종흔님께서 도올 김용옥 박사와 오강남 박사의 논리를 상쇄하시기 전까지는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김용옥 박사님의 모든 사상을 제가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분의 요한복음 강해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불교학계에 공헌하신 업적은 높이 평가합니다. 그분을 불교학계의 전문가로써는 인정한다는 것이지요. 예컨대 저는 기독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칼 바르트를 인용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다 틀린 것도 아니고 맞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맞는다고 사료되는 부분은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

      “B•C 1C 중반 경부터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했는데, 이 언어를 팔리어라고 하며 인도 서부지방(王舍城을 중심으로 한 마갈타지방)의 서민들이 쓰던 문자가 없는 구전언어였지만, 결집을 계기로 각지방의 문자형식을 빌어 패엽에 기록되게 된 것입니다.) ” 맞습니다. 그러나 부처의 입적시기로부터 약 600년이 지난 후에 쓰여진 것이지요. 게다가 아난다는 스스로 영감을 부인하는 말을 많이 남김으로써 그가 쓴 말에 절대적 권위가 없다고 솔직히 말했습니다. 또한 내용이 일치하는 사본도 없고 지나치게 중구난방하여 불교계에서도 무엇이 참된 시타르타의 말인지 알 수 없다고 고백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뿌리가 일관되지 못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종흔님께서는 여전히 순전히 신앙으로 우리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저더러는 신앙적으로 기독교에 접근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종흔님께서는 신앙적으로 불교에 접근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시나요?

      “엄연히 대승 소승등 공히 니까야와 아함으로 불리는 초기경전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고작 님의 한갖 신통력에대한 과민 반응으로 아난과 오백이 넘는 아라한과 수많은 불자들을 욕보이는 것이지요.인간의 이기심이 어떤식으로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지요.” 순환논증의 오류랍니다.

      “성경이 문서로 남겨진 시간보다도 몇백년 전임을 기억하세요” 아니랍니다. 제 블로그에서 사본에 얽힌 글들을 찾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길게 쓴 것들이 있으니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불교의 파가 대승만 있는것이 아님은 삼척동자도 다아는 사실인데 유독 대승등의 특정파만 책으로 엮었다 억지를 부리는 격입니다.” 모든 종교에는 뿌리가 있지요. 제가 댓글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인도불교의 역사라고 했습니다. 인도불교의 역사를 예로 든 이유는 그곳이 뿌리이기 때문이지요. 다른 곳에서 어떻게 적용이 되었는가는 제게 별로 중요하지 않답니다.

      “급기야 늙어 정권에 빌붙어 종북사상까지 공개적으로 퍼뜨린 자를 님과의 종교토론에서 님의 주장의 후견인으로 등장하니 나와 님의 관계를 떠나 김용옥과 전생에 악연이 있었나 의문이 덜 정도였습니다.” 하하하… 이 부분은 참 재미있습니다. 심각하게 글을 읽다가 크게 웃었네요. 우리가 종북사상에 반대한다는 점은 일치하니 즐겁기도 합니다.

      “이해 했다치고 궁금한것은 만일 대반열반경이 부처님 행적을 과감없이 기록한 초기경전으로 인정한다면 그렇다면 불제자가 되시려는지요.” 하하.. 역시 아니라고 답을 드려야 할 듯 합니다. 대반열반경에서 보여지는 시타르타와 그의 제자들의 기적은 철학적으로 신적 기반이 약합니다. 혹시 이 부분에 대해서 나누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제가 책 두권을 좀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1) http://www.ivpress.com/cgi-ivpress/book.pl/code=2274
      (2) http://www.amazon.com/The-Text-New-Testament-Transmission/dp/019516122X

      한 번 읽어보시면 좋으실 듯 합니다. 또 뵙겠습니다.

      좋아요

  7. 종흔 / 1월 28 2015 5:45 오후

    ‘아함’이란 산스크리트어의 아가마(āgama)의 음역(音譯)으로 법장(法藏) 또는 전교(傳敎)라고 번역(飜譯)된다. ‘전승(傳承)된 가르침’이란 뜻으로서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는 성전(聖典)을 가리킨다. 실제로는 부처와 그 제자들의 언행록이며,원시 불교 연구의 근본 자료이다. 

    경은 반드시 문자로 기록해야 인정된다는 님의 편견을 버리지 않는한 진전이 없습니다.인간의 능력을 과소 평가 하는데 2000년전 발달되지않은 문자와 도구보다 직접 전승되는 말씀이 법의 기록을 온전히 전한다 왜 생각못하세요.몇백년후 칩이 기록을 대신할때 종이 문서로 남겨진 성경을 인정 않는다면 님은 과연 어떤 느낌이겠습니까?
    그리고 님과 신앙,신성,신의 개념에 너무 차이가 납니다.님은 신성이 고안되었다는 의미가 신통력을 지칭하는것이라 이미 언급했었고 그러한 까닭에 대반열반경 또한 후대의 조작이라 믿지못한다 강변하지 않았나요? 어쨌던 신통력으로 신을 가늠하는 불자는 기독교와같은 기복신앙으로 불교를 믿는 신도외는 특히 없다는 점을 강조드리고,
    오강남이나 김용옥을 상쇄하라는 말은 그들 궤변의 배경이된 자료를 분석해야지 터무니없는 주장에 대꾸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님이나 불경을 부정하는 논사들은 변방임을 다시한번 명심하셨으면합니다.적어도 불교학 중원에 흔적이나 낼려면 누구나 인증할수있는 자료는 물론이고 하다못해 대단한 인물을 내세워도 아득한데 한갖 돌팔이 들을 들이대니 말할 기운이 빠지데요.
    그리고 님이 예수 유일신의 교리에 타격을 주는 어떠한 이론도 인정할수없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있는이상 더이상 역사적 자료들도 님앞에는 무의미할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좋아요

    • Sanghwan A. Lee / 1월 28 2015 5:56 오후

      종흔님, 부탁 좀 하나 드려도 될까요? 종흔님께서 인정하시는 불교학계의 학자들 좀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책이나 논문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이니 댓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아요

      • 종흔 / 1월 28 2015 6:08 오후

        인터넷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예요.내 생각에는 일단 불경 번역책을 출간한 스님이나 학자가 아무래도 권위있을테고 이미 링커올린 전재성님등.그리고 마음 작용을 세세하게 밝힌 의연스님이 대단한 분이신것같고,아무래도 제 추천 보다는 직접 스님들의 글을 읽고 판단 하시는게 좋을듯합니다.아시다시피 저는 깨달음 하나에 도움되는 모든 방편를 수용하기에 님에게 혼란을 줄수도 있을것 같아서요.

        좋아요

      • Sanghwan A. Lee / 1월 28 2015 6:13 오후

        감사합니다. 종흔님께서도 제가 추천드린 책, 무엇보다 성경을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

        좋아요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