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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2013 / Sanghwan A. Lee

“구원(救援)”이란 단어의 성서적 쓰임새


문제 제기: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이 있다.  고정관념을 갖고 성경을 읽는 태도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성경에 나오는 “구원”을 무작정 “영혼 구원”으로만 생각하고 구절을 푸는 태도일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성경에 사용된 ‘구원’은 전부 ‘영혼 구원’을 나타낸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지는데, 비판 받아 마땅하다.  성경은 “구원”이라는 단어의 쓰임새를 “영혼 구원”에만 국한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의 취지는 성경에 사용되는 “구원”이라는 단어의 쓰임새를 면밀히 살펴 오용되고 있는 구원의 의미를 바로잡는 것이다.  이 작업을 위하여 “구원”의 어원적 의미부터 알아보자.

 

어원적 의미: “구원”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יְשׁוּעָה, יֵ֫שַׁע, תְּשׁוּעָה, ישׁע, 헬라어는 σωτηρία, σωτήριος, σῴζω등으로써 “위험에서 건짐을 받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위험으로 부터의 건짐인가?  그것은 단어 속에 들어있지 않다.  육적 위험이던 영적 위험이던 상관없이 위험한 상황 속에서 건짐 받는게 구원의 의미이다.  예컨데,

 

  1. 집에 불이 났다고 치자.  그 불속에 있던 사람이 건짐을 받을 때에도 “구원”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2. 홍수의 위험이 있다고 치자.  그 물속에 있던 사람이 건짐을 받을 때에도 “구원”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3. 육적인 질병으로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이 의학의 도움으로 질병으로부터 건짐을 받을 때에도 “구원”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4. 그리고 죄로인해 지옥의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지옥의 불구덩이로부터 건짐을 받을 때에도 “구원”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것이다.

 

비(非) 영혼 구원의 예: 지금 부터 성경에 사용된 “비(非) 영혼 구원”의 예를 들어보겠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출 14:10~14)

여기에 사용된 “구원”은 영혼의 구원이 아니다.  애굽 사람들로부터의 구원이다.  이 구절을 영혼 구원으로 해석하면 안된다.  육적인 구원으로만 해석해야 한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출 15:1~2)

여기에 사용된 “구원”도 영혼 구원이 아니다.  역시 애굽 사람들로부터의 구원이다.  이 구절을 영혼 구원으로 해석하면 안된다.  이를 영혼 구원으로 해석할 경우 나중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땅에 의해 삼킴을 당한 고라 자손은 영혼 구원을 받았다가 잃어 버린 사례가 된다.  성경은 이러한 해석을 철저히 금한다.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창 19:15~19)

여기에 사용된 “구원”은 어떤 구원일까?  그렇다.  불과 유황으로 부터의 구원이지 영혼 구원이 아니다.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창 37:18~21)

여기에 사용된 “구원”도 영혼 구원이 아니다.  형들의 음모로 인한 육적 죽음으로 부터의 구원일 뿐이다.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행 23:27)

여기에 사용된 “구원”도 영혼 구원이 아니다.  유대인들의 음모로 인해 처하게 된 육적 죽음으로 부터의 구원이다.

 

영혼 구원의 예:  지금 부터는 영혼 구원의 예를 찾아보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행 2:21)

이 구절에 사용된 “구원”은 영혼 구원이지 육적 위험으로 부터의 구원이 아니다.  문맥이 이를 확실히 한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2)

여기에 사용된 “구원”도 영혼 구원이다.  문맥이 육적 위험으로 부터의 구원이 아님을 확실히 명시한다.

 

두 종류의 구원: 이러한 성경의 계시는 이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두 종류의 구원이 있음을 천명한다: (1) 신자와 불신자에게 차별없이 임하는 구원, (2) 신자에게만 차별적으로 임하는 구원이다.  신자와 불신자에게 차별없이 임하는 구원은 육적인 구원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에 의거되는 일반 계시적 구원이다.  그러나 신자에게만 차별적으로 임하는 구원은 육적, 영적 구원으로써 하나님의 예정에 의거되는 특별 계시적 구원이다.  이를 도표화 하자면 다음과 같다.

 구원론 (1)

도표 1

 

일반 계시적 구원의 예:  보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 막 4:35~39로 가보자.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막 4:35~39)

이 구절 속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1) 구원으로 예정받은 자들, (2) 그렇지 못한 자들 (가롯 유다).  그리고 두 종류의 사람들이 광풍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다들 육적 죽음의 위협을 만난 것이다.  어떻게 되었나?  예수님께서 광풍을 잠재워 버리셨다.  그럼으로써 두 종류의 사람들이 광풍으로부터 구원을 받게된 것이다.  여기에 사용된 “구원”은 영적 구원이 아니다.  육적 구원일 뿐이다.  이처럼 일반 계시적 구원은 신자와 불신자를 떠나 모든 인간들에게 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육적 구원이다.

 

일반 계시적 구원의 한계:  이제는 일반 계시적 구원의 한계에 대해서 살펴보자.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유 1:3)

이 구절 속에는 “구원”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 단어의 쓰임새는 영적 구원일까 육적 구원일까?  당연히 육적 구원이다.  문맥은 애굽인들로부터 건짐받는 육적 구원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은 지금부터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히브리 민족들을 애굽으로부터 일단 “구원하여 내”셨지만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다고 증거한다.  이 얼마나 충격적인 계시인가?  구원하신 후에 멸망시키셨다는 말이다.  이것이 일반 계시적 구원의 한계이다.  육신에게만 임하는 일반 계시적 구원은 영혼 구원을 의미하는 특별 계시적 구원과 동격이 아니다.  일반 계시적 구원을 받았다고 특별 계시적 구원까지 함께 받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러한 차이를 무시하고 둘을 동격화 시키는 순간 우리는 미궁에 빠져 버린다.  몇몇의 성경 해석자들이 유 1:3을 근거로 “한 번 구원을 받았어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게 미궁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 1:3에 사용된 일반 계시적 “구원”의 의미를 특별 계시적 구원의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위와 같은 오류적 발언을 주장하는 것이다.

 

일반 계시적 구원과 특별 계시적 구원의 상관관계: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자에게 일반 계시적 구원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뭘까?  성경의 답은 자명하다.  그들이 일반 계시적 구원을 통하여 특별 계시적 구원에 이르기를 소망하시기 때문이다.  구약과 신약의 계시는 다음과 같은 연대기적 도표를 그린다.

 구원론 (2)

도표 2-1

구원론 (3)

도표 2-2

구원론 (4)

도표 2-3

정말 그렇지 않은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위에 있는 색대로 연대기적 포물선을 그린다.

 

  1. 초록칸: 하나님께서 히브리 민족들을 자연과 적군들로부터 구해주셨다.
  2. 주황칸: 하나님께서 히브리 민족들의 생명을 연장시키시면서 돌이킬 기회를 주셨다.
  3. 붉은칸: 하나님께서 돌이키지 않았던 히브리 민족들을 징벌하셨다.

 

  1. 초록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수 많은 원수들의 침략으로부터 구해주셨다.
  2. 주황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사 회개케 하셨다.
  3. 붉은칸: 하나님께서 돌아서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셨다.

 

  1. 초록칸: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사 우리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셨다.
  2. 주황칸: 하나님께서 복음들고 산을 넘는 자들을 각처로 보내사 우리를 회개케 하신다.
  3. 붉은칸: 하나님께서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을 불로 심판하실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일반 계시적 구원을 모든 자에게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특별 계시적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도표 3을 보라.

구원론 (5)

도표 3-1

구원론 (6)

도표 3-2

구원론 (7)

도표 3-3

필자는 초록색 칸을 일반 계시적 구원이라 부르고, 주황색 칸을 특별 계시적 구원으로의 초대라고 부르며, 붉은색 칸을 일반 계시적 구원의 한계라고 부른다.

 

정리하기: 이처럼 “구원”이라는 단어는 “영혼 구원”만을 나타내는 고유 명사가 아니다.  “위험에서 건짐을 받다”는 뜻의 일반 명사일 뿐, 더도 덜도 아니다.  그럼으로 성경을 읽다가 “구원”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무작정 “영혼 구원”으로 해석하지 말고, 문맥을 살펴 어떠한 구원을 의미하는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맺으며: 여러분들이 얼마나 이해했는지를 알고 싶다면 아래에 있는 구절들에 들어있는 “구원”이 일반 계시적 구원인지, 특별 계시적 구원인지 찾아보라.

 

  • 문제 1: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히 11:7)
  • 문제 2: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벧전 3:20)
  • 문제 3: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약 5:15)
  • 문제 4: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마 1:21)
  • 문제 5: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거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약 5:20)
  • 문제 6: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10)
  • 문제 7: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리라 (행 2:40)
  • 문제 8: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롬 5:9)

 

페이스 북: https://www.facebook.com/sanghwan.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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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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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익명 / 11월 15 2013 12:10 오전

    성경의 모든 구원이라는 단어가 육적/영적 이분법으로 분리가 되는지요? 예를 들어 문제 3번의 야고보서 5:15말씀의 구원은 병에서 구원, 죄에서 구원 두 가지를 모두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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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nghwan A. Lee / 11월 15 2013 2:45 오전

      안녕하세요. 질문에 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야고보서 5:15에는 구원의 동작과 구원의 대상이 σώσει τὸν κάμνοντα로 계시되어 있습니다. 구원의 동작인 σώσει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미래형 동사이고, 구원의 대상인 τὸν κάμνοντα는 직접 목적격으로 “병든 사람들”입니다. 즉 병든 사람들이 아직 구원을 받지는 못했지만 미래에 받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무슨 구원을 말하는 것일까요? 육적 구원일까요, 영적 구원일까요? 이 질문의 열쇠는 이들이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받는가를 찾는 것입니다. 답은 14절에 나와 있습니다. 14절을 보면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바로 “병”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15절에도 구원을 받아야 할 대상이 “병든 자”라고 명시되어 있지요? 이 “병”은 문맥적으로 영혼의 병이 아니라 육신의 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1) 구원의 대상은 병든 사람들이고, (2) 구원 받아야 할 대상은 육적 질병이며, (3) 구원의 종류는 육적 구원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야고보서 5:15에 등장하는 구원은 육적 구원으로만 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뒤에 있는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는 부분과 연결하여 영적 구원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병”이라는 단어는 “구원(σώσει)”이라는 동사가 받지만 “죄”라는 단어는 “사하심”이라는 동사(ἀφεθήσεται)가 받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두 문장 사이에는 접속사 καὶ가 아닌 κἂν이 있어서 이 둘을 같은 현상으로 볼 수 없습니다. 🙂

      추신 1: 성경에 나오는 모든 구원을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추신 2: 제 글의 취지는 성경에 나오는 “구원”이라는 단어의 쓰임새를 찾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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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 11월 17 2013 12:44 오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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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소연 / 1월 2 2014 10:01 오전

    목사님 안녕하세요~ ^^
    죄송하지만 히브리어, 헬라어 쓰실때 한국어로 발음을 써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새해에도 목사님 말씀사역과 가정에
    주님께서 항상 이끄시고 동행하시는 한해가 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아… ^^;; 원죄.. 조만간 시간이 허락되실때 해주실거죠….? ㅎㅎ~~
    기쁜 맘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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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nghwan A. Lee / 1월 3 2014 11:59 오전

      구원의 히브리어 명사형은 예수아, 예사로 불리고, 헬라어 명사형은 소테리아로 불립니다. 원죄에 대해서는 아직 쓸 시간이 없네요. 이번 가을까지 책 한 권을 탈고할 예정입니다. 그 때 까지 블로그 활동은 좀 천천히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자매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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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익명 / 2월 7 2017 1:48 오후

    구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이런 식으로 영혼 육적 구원을 설명한 경우를 보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원하면 영혼 구원만을 말합니다.
    마치 육신의 구원을 말하면 수준이 낮은 것으로,
    영혼의 구원만을 말해야 수준이 높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영혼구원이란 보고 만질 수 있는 육신적, 육체적인 부분은 모두 속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치유하시면서 “구원받았다” “죄사함 받았다” 하셨습니다.
    여기서 구원은 영혼을 치유한 것이 아니라, 소경, 절름발이, 귀머거리 등의 육적인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한 말씀입니다.
    치유하시고 하신 말씀이 “구원”과 “죄사함”이란 단어까지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구원과 죄사함 받은 자는 질병에서 해방됨을 의미합니다.
    육신적인 부분도 구원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성경적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음의 결국 영혼의 구원”이라는 구절을 사용하며
    육신적인 질병 등의 구원을 말하면 비성경적인 구원이라 합니다.
    보고 만질 수 있는 개념을 말하면 아니라 합니다.

    그럼 몇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육적으로 부활한 사건(신령한 몸)”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생전에 모습이 아닌 변화된 신령한 몸이지만, 이 역시 보고 만질 수 있으니 육적인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생각합니다.
    2. 오직 우리의 싸움은 영적 싸움이라면 왜 쓸데없이 육신은 만든 것일까요?인간의 신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육신적인 부분은 구원의 범주에 속하지 않고 영적인 싸움이라면 왜 육신은 쓸데없이 만든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육적 영적인 부분 모두 구원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둘의 관계를 전인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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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도르 / 2월 12 2017 10:17 오전

      성경적인 구원은 죄사함입니다. 하지만 고통의 해방없는 죄사함은 가치없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사망에서 해방되야 합니다. 여기서 사망은 육신적 영적 모두를 포함한다고 봅니다. 육신적이라면 예수님처럼 부활한 신령한 몸으로 다시는 죽음을 경험하지 아니하고, 영적이라면 죄성(원죄)의 소멸이라 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육신적 구원이 아니라 영적인 구원이라고만 합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구원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은 추상적으로만 답합니다.

      약1년 전부터 하나님의 표적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작년에만 각종 치유집회에 다녀보았습니다. 다녀본 결과, 핵심은 병도 못고치고, 치유되었다 하는 질병 종류는 대부분이 심인성 질환입니다. 외과적 질환(휠체어 환자, 암, 절름발이 등) 치유되었다는 의사소견서가 있는 간증이 없습니다. 휠체어에 앉은 자를 일으키는데 치유가 아니라 강제로 일으키는 모습입니다. 이런 집회의 계통이 신사도, 오순절 계통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징은 거룩한 웃음, 비성경적인 이상한 방언, 밀어 쓰러트리고 이불 덮기, 장풍 날리기 등 온갖 무당행위가 난무합니다. 예수님이 “즉시” “어떠한 질병도” “완벽하게 온전하게” 치유한 모습과는 극반대입니다. 사단의 능력도 없는 한편의 쑈입니다.

      오늘날은 표적이 중단된 시대일까요?
      은사 중지론과 지속론의 주장이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지속론이라 봅니다. 하지만 현실은 중지론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현실에서 “초림 사도 시대”와 같은 표적들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육적인 소경, 귀머거리, 중풍, 혈루병, 절름발이, 문둥병, 대제사장 종의 절단된 귀 재생, 죽어서 썩은 나사로의 부활 등 육적인 표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능력이 없으니 육적이 아닌 영적인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 비틀어 해석을 합니다. 아니, 어떠한 성경적인 근거도 없이 갑자기 영적인 것이라 합니다. 성경과 오늘날의 현실과 부조리하면 영적이란 단어로 합리화합니다.
      육적인 것은 아니고 영적인 것만 구원이라 합니다.
      소경, 귀머거리, 절름발이, 문둥병, 중풍 등의 각종 질병으로 고통스러운데 도대체 무슨 구원을 받았다는 것일까요? 고통 속에서 입으로만 구원입니다. 무언가에 세뇌당한 사람처럼 말입니다.

      제가 오랜 심한 질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받고 싶다는 생각을 약1년동안 계속 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표적 경험이 아닙니다. 재림과 부활에 대한 확신을 위해서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믿기 어려운 표적을 경험한다면 부활도 믿을 수 있다는 제 생각입니다. 정리하자면 믿기 어렵기에 믿기 어려운 표적을 경험하면 확신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오랜 질병도 치유받고 부활에 대한 확신도 갖는다면 전화위복입니다.

      말씀과 능력이 있는 곳…
      사단도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해석을 잘못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잘못 전하는 거짓 선지자라는 의미입니다. 그 거짓 선지자의 능력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사단의 능력일 것입니다. 한치의 성경해석의 오류도 없으면서 능력도 있는 목자는 없을까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 하지만 극반대의 모습입니다. 아무도 이러한 것을 찾지 않고, 저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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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nghwan A. Lee / 2월 13 2017 8:13 오후

        좋은 글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신유에 대해서 더 기도해 보고 연구해 보겠습니다. 아울러 님의 질병에 하나님의 치료하심이 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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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 2월 14 2017 12:10 오후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응답을 하지 않으십니다.
        절단환자가 신체가 재생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오늘날은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때 같습니다.
        다리 없는 자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다리가 생겨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여기 오게 된 것도 신유 구원에 관해 공부하다가 공감되어서 오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믿는 자에게 다르는 표적”, “고전12장의 병고침의 은사”, “표적과 함께 복음을 전해야 확실한 복음이라 하는데 현실은 아닙니다. 그러하니 성경을 비틀어 해석을 합니다.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을 말한다.” 은사는 성경기록 완성을 위한 것이므로 사도시대 후로 중단되었다. 그렇다면 고전12장은 오늘날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도 일부 우리에게 적용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성령 훼방죄 아닌가?

        솔직히 성경처럼 즉각적으로 치유되는 기적을 경험하고 싶은데 그게 어렵습니다.
        꿈만 꾸고 소망에 차는 느낌입니다.
        실질적인 구원을 얻는 자가 아닌 신학공부하는 자만 됩니다.ㅠㅠ 이건 아닌데 말입니다.

        저는 기도를 잘 안하다 신유를 위해 잠깐씩 기도합니다.
        하지만 주위에서 열심히 기도해도 치유가 안되는 자들을 보면 “이거, 기도해야 될까” 하는 생각입니다. 성경에도 주위에서 일어나는 기적들을 보고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고 믿는 자들도 나옵니다.

        구원의 의미가 원어로 “위험에서 나오다” 구원에 대한 본질을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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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익명 / 2월 18 2017 9:59 오전

    목사님 설교를 듣다가 의문점이 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가 나오는데, 이 목사는 신사도 운동가 아닌가요? 예수 이외에도 구원이 있다 한 것으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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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nghwan A. Lee / 2월 21 2017 12:34 오후

      빌리 그래함 목사에 대해서 연구해 보지 못해서 그분의 신학적 자세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에 제게 없는듯 합니다. 만약 위에 말씀하신대로 예수님 이외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했다면 그분은 기독교의 진영에서 있는 것이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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