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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2013 / Sanghwan A. Lee

예수님의 신성(神聖)에 관하여 (9) – 태어난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문제 제기: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세상에 나오셨다”는 성경의 증언을 이용하여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려는 자들이 있다.  인간이 엄마의 자궁 속에서 “피조(קנה)”되고 “조직(סכך)”된다는 시 139:13의 말씀을 예수님의 탄생에도 적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용납될 수 없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의 탄생과 전혀 다른 것이라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구절들을 통하여 그 다름을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이 글의 취지는 많은 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어학적 접근을 통하여 인간과 예수님 탄생의 다름을 논증하는 것이다.

게나스따이 vs. 기네스따이: 헬라어 성경에는 “태어나다”의 의미로 쓰이는 단어가 크게 두 개있다.  게나스따이(γεννάσθαι)와 기네스따이(γίνεσθαι)이다.  게나스따이는 게나오(γεννάω)의 현재형 중간태 부정사이고, 기네스따이는 기노마이(γίνομαι)의 현재형 중간태 부정사이다.  헌데 중요한 사실은 사도 바울은 게나스따이와 기네스따이를 구별해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의 글에 나타나는 단어 사용법을 분석하자면 게나스따이는 사람들의 탄생을 나타내기 위해 쓰이지만 예수님의 탄생에는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오직 기네스따이만 쓰였다.  왜?  바울은 기네스따이는 게나스따이에는 없는 뜻을 강조하려 했기 때문이다:  게나스따이는 아이가 “태어나다”는 뜻이지만 기네스따이는 게나스따이에 있는 발생학적(發生學的) 뜻 외에 “~이 되다”는 뜻이 있다.

이러한 차이는 기네스따이가 게나스따이를 포함하고 있음을 명시한다.  “~이 되다”는 뜻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아이가 태어나 존재가 되다”는 뜻 이외에 “A라는 직분을 갖고 있던 사람이 B라는 직분을 가진 사람이 되다”는 의미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예컨데 과장이 사장이 되었다고 치다.  이러한 경우에는 게나스따이가 사용될 수 없다.  과장이 사장이 되는 것은 존재하지 않던 사람이 태어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네스따이는 이 문장에 사용될 수 있다.

이처럼 발생학적 의미만 담고 있는 게나스따이는 “존재하지 않았던 아이가 태어나 존재가 되다”는 포함하지만 “A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B라는 직분을 가진 사람이 되다”는 포함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과일”은 “사과”를 포함하지만 “사과”는 “과일”을 포함할 수 없기에 “사과는 과일이다”는 표현은 성립되지만 “과일은 사과다”는 표현은 성립될 수 없는 것 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수학적으로 말하자면 게나스따이는 기네스따이를 포함하는 관계가 아니지만 기네스따이는 게나스따이를 포함하는 관계(기네스따이⊃게나스따이)이고, 논리학적으로 말하자면 게나스따이는 기네스따이의 하위 개념(下位槪念)이고 기네스따이는 게나스따이의 상위 개념(上位槪念)이다.  도표를 보라

12예수님의 신성 (9)-3

성경의 증언: 이처럼 기네스따이에는 게나스따이가 포함할 수 없는 개념이 있다는 것을 유념하고 성경을 보자.  헬라어에 능숙했던 사도 바울은 이 단어의 차이점을 가려가며 파피러스위에 붓을 흘렸음을 알 수 있다.[1]  그는 ‘출생(出生)’의 의미만 나타내는 게나스따이가 아니라 ‘존재의 선유무(先有無)에 관계없이 무엇이 되었는가’의 의미까지 담겨있는 기네스따이의 어원인 기노마이(γίνομαι)의 중간태 동사만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탄생을 묘사했다.  바울의 글을 보라.

롬 1:3이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γενομένου)

예수님께서 다윗 왕가의 출신이라는 의미다.  이 단어가 기네스따이로 되어있다면 존재하지 않던 예수가 다윗을 혈통으로 태어나 존재하기 시작되었다는 의미로 해석 될 수 있지만 게나스따이로 되어있기에 예전에 다윗의 하나님으로 존재하셨던 예수님께서 다윗의 혈통이 되셨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갈 4:4의 증언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γενόμενον)…

이 단어가 게나스따이로 되어있다면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예수가 여자에게 남으로써 존재하기 시작되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기네스따이로 되어있기에 전에 여인을 창조하셨던 예수님께서 여자의 아들이 되셨다는 의미로 해석이 될 수 있다.

빌 2:7의 증언이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γενόμενος)…

이 단어가 게나스따이로 되어있다면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예수가 태어나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기네스따이로 되어있기에 전부터 말씀으로 존재하시던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의미로 해석 될 수 있다.  바울은 이러한 단어적 차이를 놓치지 않고 붓을 흘렸던 것이다.

한 가지 더: 글에 담긴 내용의 명료성을 위해 “낳다”는 단어로 번역된 게나스따이와 기네스따이의 차이점을 도표화 한 후 한 가지만 더 설명하겠다.

4

바울적 신학에 따르면 당신과 내가 태어난 것을 묘사할 때에는 게나스따이와 기네스따이가 다 쓰일 수 있다. 게나스따이가 쓰이면 “발생학에 기초한 생물학적 출생”을 의미하고, 기네스따이가 쓰이면 (1) 발생학에 기초한 생물학적 출생을 전체로 한 (2) 무(無)에서 유(有)로써의 인간이 되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것은 게나스따이로 쓰일 수 없고 오직 기네스따이로만 쓰여 (1) 발생학에 기초한 생물학적 출생이 아닌 (2) 유(有)이신 하나님께서 유(有)로써의 인간이 되셨다는 뜻이 된다. 즉 “예수님께서 태어 나셨다”는 문장은 도표 2에 있는 파란 칸의 흐름대로만 이해되야만 하는 것이다.

맺으며: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탄생을 가르켜
성육신(成肉身)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1]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의 유기적 영감설[有機的 靈感說]

추신: 마태복음 1:16b에 게나오가 쓰였다는 이유로 예수님의 성육신을 반증하는 자들을 향한 반증은 (https://sanghwanlee.com/2014/03/27/마태복음-116b과-성육신/)에서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신성(神聖)에 관하여 (1) –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구절이 없다?
예수님의 신성(神聖)에 관하여 (2) – 콘스탄틴이 예수의 신성을 고안했는가?
예수님의 신성(神聖)에 관하여 (3) – θεὸς만 하나님을 지칭하는가?
예수님의 신성(神聖)에 관하여 (4) – 예수는 피조물(被造物)인가?
예수님의 신성(神聖)에 관하여 (5) – 요 1:1의 빛 아래에서…
예수님의 신성(神聖)에 관하여 (6) – 무지(無知)한 예수인가, 부정직(不正直)한 예수인가?
예수님의 신성(神聖)에 관하여 (7) – 하나님께 빌었던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예수님의 신성(神聖)에 관하여 (8) –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요구한 예수가 하나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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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3개

댓글 남기기
  1. John Park / 10월 15 2013 6:10 오후

    이렇게 좋은 글을 써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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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anghwan A. Lee / 10월 15 2013 8:20 오후

    도움이 되신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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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mikeungp / 12월 14 2013 8:24 오후

    목사님,

    “빌 2:7의 증언이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γενόμενος)…
    이 단어가 게나스따이로 되어있다면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예수가 태어나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게나스따이로 되어있기에 전부터 말씀으로 존재하시던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바울은 이러한 단어적 차이를 놓치지 않고 붓을 흘렸던 것이다.”에서
    두번째 ‘게나스따이’는 ‘기네스따이’ 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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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nghwan A. Lee / 12월 14 2013 8:49 오후

      네, 맞습니다. 두 번째 있던 ‘게나스따이’는 오타입니다.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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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최정자 / 12월 20 2013 11:10 오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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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nghwan A. Lee / 12월 20 2013 12:12 오후

      감사합니다, 자매님. 페북에서 뵙다가 이 곳에서 뵈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주 안에서 승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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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Sanghwan A. Lee / 3월 26 2014 1:30 오후

    안녕하세요, 반증을 나눠 주심에 감사합니다.

    CHK님께서는 헬라어의 syntax에서 잠시 혼동하신 듯 합니다. 본글을 반증하시기 위해 사용하신 마 1:16, 마 2:1, 그리고 요일 5:1에 사용된 “낳다”는 γεννάω의 현재형 중간태 부정사가 아닙니다. 마 1:16은 γεννάω의 과거형 수동태 동사이고, 마 2:1은 과거형 수동태 분사입니다. 게다가 요일 5:1은 γεννάω의 완료형 수동태 동사일 뿐 아니라 예수님이 아닌 예수님을 믿어 중생한 사람들을 수식하지요. 동사는 문법 안에서 시제와 태를 따라 변화되고, 갖가지 다양한 의미를 전달하게 됩니다. 저는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여 현재형 중간태 부정사인 γεννάσθαι와 γίνεσθαι를 비교한 후에 로마서 1:3, 갈라디아서 4:4, 그리고 빌립보서 2:7을 새롭게 바라본 것입니다.

    신학자 Cranfield도 사도 바울이 로마서 1:3에 γεννᾶσθαι 대신 γίνεσθαι를 사용했다는 것은 그가 동정녀의 탄생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강력히 주장한다고 말했고, 신학자 Turner도 사도 바울이 로마서 1:3, 갈라디아서 4:4, 그리고 빌립보서 2:7에서γεννᾶσθαι 대신 γίνεσθαι를 사용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육적 아버지인 요셉의 씨앗으로 오지 않았다는 초대 교회의 믿음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함과 동시에 예수님의 탄생과는 단 한 번도 연결되어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했답니다. 그러므로 님께서 “낳다”의 어원이 γεννάω라는 이유로 시도하신 본글 반증은 syntax적 의미에서 받아들일 수 없겠습니다.

    님의 진리를 향한 여정을 위해 몇 가지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공유하겠습니다. γεννᾶσθαι 와 γίνεσθαι의 차이점을 통하여 성육신을 접근한 사례를 보기 원하신다면 (1) U. Luz, Das Evangelium nach Matthäus 1, Zurich. Einsiedeln, Cologne, Neukirchen-Vluyn, 1985, p. 102., (2) J. M. Lochman, The Faith We Confess, Philadelphia, 1984; Edinburgh, 1986, p. 110, (3) C. E. B. Cranfield, On Romans: And Other New Testament Essays (Edinburgh: T&T Clark, 1998), 153., (4) H. E. W. Turner, ‘Expository Problems: The Virgin Birth’, in ET 68 (1956–7), p. 12.을 보시고, 신학적 접근을 보기 원하신다면 (1) G. H. Box, The Virgin Birth of Jesus, London, 1916, (2) V. Taylor, The Historical Evidence for the Virgin Birth, Oxford, 1920, (3) J. G. Machen, The Virgin Birth of Christ, London, 1930, (4) M. Dibelius, Jungfrauensohn und Krippenkind, Heidelberg, 1932, (5) K. L. Schmidt, ‘Die jungfräuliche Geburt Jesu Christi’, in TB 14 (1935). cols. 289–97, (6) D. A. Edwards, The Virgin Birth in History and Faith, London, 1943, (7) T. D. Boslooper, The Virgin Birth, London, 1962, (8) R. E. Brown, The Virginal Conception and Bodily Resurrection of Jesus, Paramus, N. J., 1973, (9) J. McHugh, The Mother of Jesus in the New Testament, London, 1975, (10) C. Cranfield, in SJT 41 (1988), pp. 177–89.을 보세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님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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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Shinnam Lee / 5월 12 2015 5:44 오후

    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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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 7월 29 2015 10:16 오후

    시편 2장 7절에 나온 `낳았도다` 또한 기네스따이 인지요?
    시편 2장을 쭉 읽어보면 아들은 예수님을 칭하는것 같은데 제가 잘못이해한것 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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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nghwan A. Lee / 7월 30 2015 12:28 오전

      1. 시편은 헬라어가 아닌 히브리어로 쓰였답니다.

      2. 본글은 사도 바울의 글을 분석하여 만들어진 바울의 글쓰기 특성이랍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쓴 사람들마다 단어 사용법이 다르다는 것을 기초하여 이루어진 연구라고 생각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제가 본글에 쓴 부분을 발췌합니다: 헌데 중요한 사실은 사도 바울은 게나스따이와 기네스따이를 구별해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의 글에 나타나는 단어 사용법을 분석하자면 게나스따이는 사람들의 탄생을 나타내기 위해 쓰이지만 예수님의 탄생에는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오직 기네스따이만 쓰였다. 왜? 바울은 기네스따이는 게나스따이에는 없는 뜻을 강조하려 했기 때문이다: 게나스따이는 ‘남자와 여자의 성적 결합으로 인해 아이가 태어나다’는 뜻이지만 기네스따이는 게나스따이에 있는 발생학적(發生學的) 뜻 외에 “~이 되다”는 뜻도 있다.

      3. 시편 2장은 메시아를 예표하는 구절이라고 많은 신학자들이 입을 모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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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7월 30 2015 1:07 오전

        아!! 구약이엿네요 착각했군요

        그런데 시편2편이 메시아를 나타내는부분인데 `나다`가 아닌 `낳았다`고 서술되었는데 낳았다는 무에서 유로 창조 되었다는 뜻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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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nghwan A. Lee / 7월 30 2015 2:55 오전

        히브리어를 연구한 구약학자들의 해석을 요약해서 정리해 드릴께요.

        1. 제가 다른 글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낳다(ילד)”는 단어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을 의미하기 위해서라면 “창조”라는 단어를 사용했겠지요. 그러므로 “낳다”는 단어가 있다고 해서 “무에서 유로 창조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지요.

        2. 성부께서 성자의 인성을 만드셨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시기전 인성은 없었습니다. 오직 신성만 있었지요. 아시다시피 성부와 성령께는 인성이 없으십니다. 오직 성육신 하셨던 예수님께만 있지요. 예수님의 인성은 신성과 별개의 것으로 신성과는 다른 것입니다.

        3.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제한적인 예를 들자면 발생학적으로 사람으로부터는 사람이 나오고, 개로부터는 개가 나오며, 하나님으로부터는 하나님이 나오지요.

        4. “내가 너를 낳았도다”는 표현은 은유법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표현을 들어 하나님의 성품, 사역등을 묘사합니다. 자크 데리다가 말했듯이 비형이상학적인 것을 들어 형이상학적인 것을 말할 수 밖에 없는 언어의 특성 때문이지요. 칼빈은 이 부분을 은유법으로 봤습니다.

        5. “낳았다”는 표현은 “너의 아버지가 되다”는 의미입니다. 이럴경우 “낳았다”는 의미는 퇴색되고 관계적인 의미가 부각되지요. 신약성경을 보면 아버지가 아들을 낳았다는 구도가 많이 보입니다. 아시다시피 아버지가 아들을 낳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낳지요. 그러나 유대인들은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아버지가 아들을 낳았다는 표현을 쓴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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