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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2013 / Sanghwan A. Lee

착한 식당, 착한 교회

아는 사람의 권유로 “이영돈 PD의 먹거리 X 파일”이라는 방송을 봤습니다. 방송의 취지는 손님을 위해 신선한 재료를 선정하고, 깨끗한 도구를 사용하며, 화학 조미료가 아닌 천연 재료를 쓰는 소위 “착한 식당”을 찾는 것이더군요. 방송을 청취하면서 ‘정말 그런 식당이 있을까?’ 자문했지만, 가뭄에서 콩 나듯이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발견되는 식당이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그러나 저를 정말 놀래킨 것은 다음과 같은 씁쓸한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착한 식당에는 적은 수의 손님만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왠지 아세요?  화학 조미료에 입맛이 길들여진 대다수의 사람들이 착한 식당에서 만드는 음식들을 “맛 없는 음식”이라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주인이 얼마나 신선한 재료를 쓰는지가 아닙니다. 얼마나 주방이 깨끗한지도 아니고, 천연 재료가 들어가는지도 아닙니다. 그저 화학조미료에 길들여진 그들의 입맛을 충족시켜주는 꾸며진 맛, 곧 가짜 맛이었습니다!  손님 중에는 음식을 먹다 말고 주방장을 찾아가 다음에는 화학 조미료를 첨가해 달라고 말하기까지 한다니 말 다했죠… 대다수의 사람들이 음식의 꾸며진 맛에 음식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저를 더 놀래킨 사실이 있습니다. 착한 식당의 주인들은 이러한 손님들의 반응에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그들의 음식 철학을 고수하더라는 것입니다. 손님이 끊기고, 떨어져 나가도 절대 타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단 한 명이라도 그들의 식당을 찾아주면 갈 때까지 갈 것이라는 마음으로 운영합니다.  당황한 PD가 주인에게 묻더군요.

지금처럼 영업하면 돈을 많이 벌지 못하지 않습니까? 화학 조미료를 쓴다고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도 없을 텐데…

그러자 주방장이 말했습니다.

저… 돈 벌려고 식당 하는 것 아닙니다. 그것이 목적이었다면 벌써부터 값싼 재료에 화학 조미료 뿌려가며 요리했겠지요. 그러나 제가 식당을 운영하는 이유는 제 식당을 찾는 손님들에게, 비록 적다 할지라도,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식당 철학은 일반 식당 주인의 철학과는 달랐던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에 비유합니다.  그리고 목사들은 그 음식을 차리는 주방장으로 비유합니다.  목사들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먹여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성경은 여기에 하나를 더해 목사들이 영의 양식을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도 계시합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지 않(고후 4:1~2)”게 요리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혼잡”이라고 번역된 헬라어(δολόω)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1) 과일 장수들이 보기 좋은 과일을 맨 위에 놓고 작은 과일들을 아래에 숨겨 넣는 행위
(2) 포도주에 물을 탐으로 원래의 농도를 희석시키는 행위

이게 무슨 뜻이지요?  목사들이 성도에게 먹일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 할 때에 그들의 가려운 귀를 긁어주고 듣기에 좋아할 만한 내용만 고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복이나, 상급이나, 천국이야기만 위에다 늘어놓고, 죄나 지옥이나 심판에 대한 이야기는 살짝 가리며 전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할 때에 세상의 유행, 풍습, 문화 따위의 화학 조미료를 첨가하여 말씀의 참 맛을 희석시키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풀어 있는 그대로 전함으로 성도에게 말씀 자체를 먹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도가 적게 모이고, 눈에 보이는 가시적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렇게 먹이는 것이 목사들의 의무인 것입니다.

그러나 21세기의 많은 목사들은 이러한 요리법을 버린것 같습니다.  더 많은 손님을 교회라고 불리는 식당으로 끌기 위한 야심과 야욕때문입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방법대로 전했다가는 요즘 잘나가는 대형교회와도 같은 양적 “부흥”은 일어날 수 없던 것을 직시했던지라, 하나님의 말씀을 골고루 전하지도 않고, 그 안에 화학 조미료까지 풀어 혼잡하게 전합니다.  그들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저 많이만 모이면 된다는 심보로 말이죠.  일개의 식당 주인도 가슴 찡한 식당 철학을 고수하여 찾아오는 손님들의 육적 건강을 생각하건만, 사람들의 영적 건강을 위하여 음식을 해야 하는 목사들은 왜 이러한 사실을 무시할까요?

이 뿐만이 아닙니다.  더 개탄스러운 사실은 이러한 목사들을 찾는 성도들의 상태입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않던가요?  이들은 세상의 유행, 문화, 풍습에 찌들대로 찌들어 있는지라 말씀을 혼잡하지 않게 전하는 목사들을 “싱겁고, 맛이 없으며, 어딘가 모르게 아쉽”게 말씀을 전하는 목사라고 판단하여 혼잡한 말씀을 전하는 목사의 교회를 고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도와 목사가 만나 “담이 낮은 교회,” “열린 교회”라는 식의 세상적 교회가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 눈에 보이는 현실입니다.  이것이 제가 물든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추구했었던 목회였기도 합니다.

사도 행전에 나오는 베드로의 설교를 봤습니다. 그의 설교는 정말 투박하기 짝이 없습니다. 수사학적이지도, 매끄럽지도, 멋들어지지도 않습니다.  일반 국문학자들이 보면 C-정도 주었을 짜임새입니다.  그러나! 그의 설교를 자세히 보면!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보면! 숨을 가다듬고, 옷깃을 여미고 다시 보면! 정말 놀라운 것들이 보입니다.

(1) 구약과 신약을 정확하게 연결하는 모형론적 성서해석과
(2) 구약에 흐르는 복음을 치밀하게 파헤치는 석의학적 해석,
(3)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만 귀결되는 정확한 조직신학적 해석

그의 설교는 가장 좋은 재료에, 가장 좋은 도구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죠?  비록 듣는 사람들이 쓰고 맛없게 들었지만, 몇 천명의 죄인들이 회심을 했습니다.  베드로가 전한 투박한 음식을 통하여 영혼이 소생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설교는 C-정도의 세상적 가치를 갖고 있었을지는 몰라도, 단 번에 몇 천명을 회심시키는 A+의 영적 가치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의 설교를 통하여 진리의 맛을 본 자들이 함께 모이게 되어 초대교회가 탄생했던 것입니다.

제가 “이영돈 PD의 먹거리 X 파일”을 통하여 크게 배운 것은 이것입니다.  착한 식당이 있기 위해서는 착한 주인이 있어야 하고, 착한 식당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착한 손님들도 있어야 한다는 것.  또 이처럼 착한 교회가 있기 위해서는 착한 목사도 있어야 하고, 착한 교회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착한 성도도 있어야 한다는 것.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예수님만 높이고 예수님만 전하여 예수님의 말씀만을 가르치는 착한 목사와 그러한 가르침이 꿀 송이보다 더 달게 느껴져 자꾸 찾아오는 착한 성도가 만날 때…

예수님의 착한 교회는 번영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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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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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진원 / 3월 20 2014 1:20 오전

    얼마전 현미생식하시는 분 이야기를 들었는데 첨엔 먹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꼭꼭 씹어서 먹다 보니 씹을수록 단맛이 느껴지고 고유의 맛이 느껴진다고 했던 게 생각납니다. 말씀도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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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kim0hun / 10월 13 2014 11:31 오전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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